영주시 승격 40주년 기념 언택트 포럼[4] 영주의 미래를 들여다 보다

우리고장 영주시가 올해 시승격 40주년을 맞았습니다. 본지는 시승격 40주년을 맞아 지난 4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보는 언택트(비대면) 포럼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포럼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에 맞춰 시승격 40주년, 영주의 미래를 들여다 보다라는 주제로 지역오피니언 리더들이 각 분야의 의견을 7차례에 걸쳐 지면에 연재하는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오피니언 리더들의 연재가 끝나면 게재된 내용을 토대로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온라인(유튜브) 포럼도 진행 될 예정입니다. 만남을 통해 직접 소통하지는 못하지만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함께 의견을 공유하고 고민할 수 있는 이번 언택트 포럼에 지역민 여러분들의 많은 호응 바랍니다.

<온라인 언택트 포럼>
일시 : 202012월 중(추후 결정)
장소 : 영주시청 강당
내용 : 7차례에 걸쳐 지면에 게재된 내용을 토대로 라이브 진행
토론 : 각 분야별 오피니언 리더, 영주시장

연재 순서
[1] 프롤로그-영주시 승격 40년의 성과, 그리고 미래
[2]경제&산업 분야-영주발전을 이끈 산업과 미래 성장 동력은
[3]농업 분야-영주농업의 40, 지역경제의 기반이 되다 
[4]교육&문화분야-선비인재 양성, 그리고 시대를 주도하는 문화활동
[5]관광 분야-문화유산과 관광, 지역 경제를 떠받치다
[6]복지&시민생활 분야-다함께 잘사는 영주, ‘복지안전특별시의 꿈
[7]에필로그-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시민과 함께라면 성공할 수 있다


1906년 경북 최초 순흥에 소흥학교 설립
시 승격 이후 영주교육의 양적, 질적 성장 거듭

민간주도 문화활동 활발’... 문화인재도 풍성
사회 트렌드 수용, 시민 문화활동 선도해 나가야

<영주의 교육>

배용호(전 영주교육장)
배용호(전 영주교육장)

영주는 교육도시이다. 그래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 1906년 경북 최초로 순흥에 소흥학교가 설립되고, 활발한 사립중등학교의 설립이 있었기에 신학문의 유입도 빠르게 전개되었다. 영주교육은 시 승격 이후에도 양적, 질적 성장을 거듭하였다. 특히, 영주의 고등학교는 대학입시에서 한때 서울의 강남 8학군과 견주는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유치원 교육
1960년대에는 지역 교회재단이 설립한 1~2개 유치원이 있기는 했으나 수용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자 종교단체는 물론 일반인이 설립한 사립유치원이 크게 늘어나고, 35개의 초등학교에 무더기로 병설 유치원이 만들어지면서 누구나가 유치원을 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더욱이 유아교육진흥법까지 제정되면서 어린이집이라는 조기교육기관이 40여 개소나 더 증설되면서 조기교육 발전에도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이에 따라 1960년대 초 50~60명에 불과했던 전체 원아가,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1000명을 훌쩍 넘기는 기록적인 성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초등교육
1996년부터는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때의 교육과정은 미래에 적응하는 인간성을 양성하는 소위 열린교육에 주안점을 두었다. 또한, 교육자치제가 부활 되는 등 내부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인구의 이촌, 저출산 등으로 학생 수가 급격히 줄면서 절반 이상의 학교가 폐교되었다. 더구나 학생 수는 전성기의 1/4 이하로 떨어졌다. 특히, 영주초등학교는 도심공동화현상까지 겹치면서 한때 3000명을 헤아리던 전국적인 규모가 이제는 전교생 100명을 밑도는 소규모 학교로 전락하고 있다. 동창회를 중심으로 추진하던 가흥동 이전 계획마저 실패로 돌아가 스스로의 운명이 자초되고 있다. 이는 영주댐 수몰로 폐교 위기에 몰렸던 평은초등학교가 학교살리기운동을 적극 추진하여 옛 영은초 부지로 이전 부활한 사례와는 대조가 된다.

·중등교육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중등교육이라 한다. 영주 시내 공립학교는 영주향교에서 출발한 영주농업학교에서 비롯된다. 여기에서 영주중, 영주여중, 영주여고가 분리 독립하였다. 시내 사립 중등학교는 중 4, 7교로 공립 중등학교 수를 능가하기에 영주가 전통적인 사학 중심 도시가 되고, 중학교 보다 고등학교 수가 훨씬 많은 도시가 되었다. 그래서 고등학교의 학생 유치는 전국적으로 치열한 곳에 속한다.

전문계 고등학교의 몸부림도 크게 눈에 띈다. 위기에 몰렸던 풍기고등학교가 경북항공고등학교로 변신하여 위기 탈출의 성공사례가 되었고, 선영여자고등학교가 한국국제조리고등학교로 개칭하면서 좋은 반응을 주고 있어 주위의 학교에 자극이 되고 있다.

·고등교육
대학급에 해당하는 교육을 고등교육이라 한다. 1972년 설립된 영주전문학교경북전문대학으로 개칭되고, 4년제 대학인 동양대학교가 신설되면서 영주도 드디어 고등교육기관을 품은 지자체가 되었다. 그러나 지방대학의 한계를 안고 고민하던 동양대학교가 동두천에 분교를 내어 위기를 탈출하고자 몸부림을 치는 동안, 지역민들은 동양대가 통째로 동두천으로 옮겨가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평생교육의 등장
1996교육개혁안이 발효되면서 열린교육사회를 지향하는 평생학습시대가 개막되었다. 특히 2001평생교육법이 제정되면서 영주시평생학습센터를 비롯한 50여 개소가 넘는 평생학습기관이 설립되어 평생학습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특히, 경북도립영주공공도서관과 영주시립도서관이 발전적으로 합병한 영주선비도서관은 평생학습기관으로서의 주도적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2015년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도 우리 지역의 3향교와 소수서원을 비롯한 서원, 서당 등에 본 역할을 재촉하고 있다.

·영주교육의 미래
1970년대에 정점을 찍은 영주의 학생 수는 이후 이촌향도 현상으로 1980년대부터 점차 감소 곡선을 그리더니 2000년대 이후에는 전성기의 1/3내지, 1/4 정도로 급격히 감소되어 교육공동화를 초래하였고, ·초등 학교의 폐교 수는 이제 남은 학교 수를 앞지르는 기현상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전국 최초로 관내 초·중학교가 재량시간(연간 5시간)을 통해 선비인성교육을 실시하게 된 것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후반 영주시가 글로벌인재양성특구로 지정되면서 영어체험센터를 설립하는 등 교육투자는 더욱 폭넓어졌고, 의욕적으로 실시하는 <인재육성장학금>은 영주 인재를 양성하는 확실한 밑바탕이 될 것으로 믿는다.
 

2000 풍기인삼대제 모습
2000 풍기인삼대제 모습

<영주의 문화>
영주는 문화의 고장이라고 한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유네스코가 보증하는 세계유산이 되었다. 소백산이 품어낸 작품이라고 한다. 이에 따른 문화 인재도 풍성하기만 하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다라는 예측은 진작부터 예견된 바이며, 실제로 1980년 시 승격 이후 괄목할만한 문화활동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민간주도의 문화활동이 현격해졌다는 점은 유의할만하다.

 

한국선비문화축제
한국선비문화축제
1991년 소백장승제
1991년 소백장승제

·행정주도적 문화활동
1972년 출범한 ()영주문화원은 1972년 출범하여 초창기 문화활동에 적지 않은 기틀과 방향을 제시했다. 1980년부터 시작한 <지역사회 문화 연구>, <향토사 연구>, <문화학교 운영> 등이 그것이다. 각종 저술활동에서도 우리고장의 전통문화, 영주금석문집, 영주의 문화재, 사진으로 보는 영주100년사등이 편찬되었다. 이런 탄력은 새천년에도 이어져 2003<회헌탄생 76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황준량, 박승임, 김륵, 정운경, 김담, 황유정, 안축, 안보, 정도전, 주세붕, 이덕홍, 김개국으로 이어진 지역의 <역사인물 학술대회>가 눈길을 끌었고, 2007년부터 4년간에 걸친 4000여 쪽 분량의 영주시사편찬이 그 백미였다고 할 수 있다.

각종 문화축제의 발달도 이때부터이다. 1983<소백산철쭉제>, 1987<소백문화제>, 2008<선비문화축제>, 1998<풍기인삼축제>가 창안된 이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있으며, 특히 풍기인삼축제는 2021<세계인삼엑스포>를 앞두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2000년 들어서도 <순흥초군청민속축제>, <영주사과축제>, <무섬외나무다리축제>가 연속적으로 연륜을 더해가고 있다.
 

향토 시인들의 시집 발간
향토 시인들의 시집 발간

·민간 주도의 문화활동
1990년 창립한 영주문화연구회<소백(죽령)장승제>, <계간 영주문화> 창간, <새천년해맞이눈꽃축제> 등으로 눈길을 끌더니 2000년 급기야 경북 북부지역 최초의 법인체로 발전되면서, <초청강연회>, <고을나들이>, <죽령옛길걷기> 등으로 그 영역을 넓혀나갔다. , 2009년에는 <소백산자락길>을 개척하여 한국관광의 별에까지 등극시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영주문화유산보존회또한 <향교·서원의 제례>, <소백산>, <영주의 기문>, <유계일기> 편찬 등 굵직한 작업과 아울러 <영주문화의 향기>를 시리즈로 발간하면서 지역문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예술계는 19945개 분과(문학, 미술, 음악, 국악, 연극) 예술지부를 아울러 지역을 망라한 <한국예총영주지회>가 결성되면서 획기적인 전기를 보여주었고, 이때부터 시작된 <소백예술제>는 지역문화 수준을 한 단계 높인 활동으로 분석되고 있다. 예총영주지부 활동과는 별개로 1959년 전국 최초로 결성된 <아동문학 소백동인회>는 전국 아동문학의 성지가 되고 있고, 1990년대에 들어 <주부독서회>, <영철문학회>, <죽계구곡문학회> 등이 결성되면서 문예활동의 르네상스를 만들고 있다. 문예에서는 특히 개별활동이 돋보이는데, 1985년 김순한 시인의 <희방사 가는 길>을 필두로 <눈물 반응>, <해직일기>, <숯을 굽는 마음> ‘1시인 1시집시대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 외 <영주미술작가회>, <미사모>, <진사조공>, <영은회> 등의 미술활동과 <극단 소백무대>, <극단 영주> 등 연극 단체도 40년에 가까운 연륜으로 영주의 문화활동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소남한시회가 중심이 되어 <전국한시백일장>을 석권하다시피 하여 갈채를 받았다.

·개미군단의 화려한 등장
<영주사진관>은 한국 사진의 발원지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다고 한다. 이를 배경으로 1960년대에 이미 사진 클럽이 결성된 바 있고, 1980년대에는 <영주사우회>, <영주영상회>, <예맥사진동우회>, <한빛사우회>가 속속 결성되어 사진 황금기를 누린 바 있다. 또한, 영주 서예는 일찍부터 묵직한 비중을 유지해, 1976<영주서도회> 창립 이후 <사군자동호회(여성)>, <유묵회>, <묵연회>, <소백연서회>, <소백한국화회> 등 서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음악 부문에서는 1987년의 <개나리여성합창단>을 필두로, <영주심포니오케스트라>, <마하합창당>, <영주문화예술단>, <시민합창단>, <소백팝스오케스트라>, <은빛소리플롯앙상블>, <소백섹소폰앙상블> 등의 활동이 두드러져 과히 시민문화를 주도하는 양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더구나 <선비>, <정도전>, <죽계별곡>, <덴동어미> 등 최근 몇 개의 굵직한 뮤지컬과 마당극이 시민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다. 국악 분야의 <풍물패 매구>, <한소리국악원>, <소백민요연구원>, <소백풍물>, <경서도민요연구원> 등의 활동과 <이혜란두레무용단>, <소백춤타래> 등 무용 활동도 문화의 다양화에 역할을 해 왔으며, 소위 있는 사람들의 취미활동이라는 별칭이 붙었던 수석, 분재, 국화, 야생화연구회 그리고 예다회, 공예가협회 등의 활동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송지향 선생 신문기사
송지향 선생 신문기사

·저명한 문화예술인
영주의 문화예술계는 인물을 빌리지 않아도 될 만큼 인적 자원이 풍성하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송지영은 조선일보 편집국장 및 KBS이사장을 지냈고, 순흥 태생 박양균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었으며, 영주사진관 출생의 화가 이두식은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낸 세계적인 화가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을 지낸 김태균, 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을 총연출한 극단 미추의 손진책 등도 손꼽히는 한국의 걸출한 문화인이다. 또한 <영주영풍향토지>, <안동향토지>를 편찬한 송지향 선생 또한 빠트릴 수 없는 영주의 문화 인물이다.

 

각 신문의 창간호 표제
각 신문의 창간호 표제

·언론 및 문화예술시설물
우리 지역 향토신문의 효시는 1989년의 <소백신문>이다. 이후 <영주저널>, <생활뉴스>, <영주신문>, <영주시민신문>으로 이어졌다. 잡지로는 <소백춘추>, <계간 영주문화>가 있고, 인쇄 문화로는 <영주인쇄소>, <성신인쇄소>에서 출발해 지금은 <도서출판 서림>, <시대출판사>, <프롤로그출판사>, <느티나무> 등과 함께 20개 인쇄소가 나름대로 색깔있는 인쇄 및 책자를 출간하고 있다. 블로그 등을 통한 온라인 문화활동도 색다른 볼거리이다. 문화활동의 고정 시설물로는 <영주시민회관>, <소수박물관>, <영주시평생학습센터>, <영주선비도서관>, <영주선비촌>, <한국선비문화수련원> 등이 있고, 국내 유수 규모를 자랑하는 <선비세상>이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영주 문화활동의 미래 전망과 과제
앞으로는 모든 활동이 주제 중심의 소규모 활동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이런 사회 트렌드를 수용하여, 축제나 평생교육 등에 적극 수용하여, 모든 시민이 문화활동에 참여하는 국민문화 시대를 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제안 7조소를 제시해 본다.
비교우위의 문화예술을 집중적 개발하여 문화활동 자체가 관광자원이 되도록 한다.
문화복지는 민간의 전문성 토대 위에 지역 문화예술 진흥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지역의 농·축협, 금융권부터 시작하는 <기업 메세나운동>으로 문화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시설 그 자체가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문화시설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다양한 계층의 문화 수요를 수용하여야 한다.(종합도서관의 탁아소 기능 등)
시정의 제반정책에 모두 문화를 접목시켜야 한다.(청사의 예술화, 들판의 조형화 등)
문화주도적 경제, 정치가 되어야 한다.(문화 기본권 설정)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