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시 승격 40주년 기념 언택트 포럼] 영주의 미래를 들여다 보다

우리고장 영주시가 올해 시승격 40주년을 맞았습니다. 본지는 시승격 40주년을 맞아 지난 4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보는 언택트(비대면) 포럼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포럼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에 맞춰 시승격 40주년, 영주의 미래를 들여다 보다라는 주제로 지역오피니언 리더들이 각 분야의 의견을 7차례에 걸쳐 지면에 연재하는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오피니언 리더들의 연재가 끝나면 게재된 내용을 토대로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온라인(유튜브) 포럼도 진행 될 예정입니다.

만남을 통해 직접 소통하지는 못하지만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함께 의견을 공유하고 고민할 수 있는 이번 언택트 포럼에 지역민 여러분들의 많은 호응 바랍니다.

<온라인 언택트 포럼>
일시 : 202012월 중(추후 결정)
장소 : 영주시청 강당
내용 : 7차례에 걸쳐 지면에 게재된 내용을 토대로 라이브 진행
토론 : 각 분야별 오피니언 리더, 영주시장

 

연재 순서
[1] 프롤로그-영주시 승격 40년의 성과, 그리고 미래
[2] 경제&산업 분야-영주발전을 이끈 산업과 미래 성장 동력은
[3] 농업 분야-영주농업의 40, 지역경제의 기반이 되다
[4] 교육&문화분야-선비인재 양성, 그리고 시대를 주도하는 문화활동
[5] 관광 분야-문화유산과 관광, 지역 경제를 떠받치다
[6] 복지&시민생활 분야-다함께 잘사는 영주, ‘복지안전특별시의 꿈
[7] 에필로그-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시민과 함께라면 성공할 수 있다

 

1980년 영주시청 개청
1980년 영주시청 개청
1980년 영주시 승격 시청사 개청식
1980년 영주시 승격 시청사 개청식

침체된 철도 위기 극복, 재도약 기반 마련
40년 사이 신영주, 가흥신도시 ‘도시확장’
90년대 지방자치시대 이후 도시변화 ‘뚜렷’

올해로 영주시가 시로 승격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1431일 영천군·순흥군·풍기군을 통합해 영주군이 개설되고, 1940111일 영주면이 영주읍으로 승격된 지 꼭 40년 만이다. 그리고 또다시 꼭 40년 뒤인 1980412개읍 9개면을 관할하던 영주군이 영주시로 승격됐다. 동시에 19개면을 행정구역으로 하는 영풍군이 탄생한 것도 바로 이 때다.

영주면이 영주읍으로 승격이 될 때만해도 인구가 2만 명이었지만 경경선(중앙선)과 영암선(영동선)이 개통되면서 급성장을 이뤘고, 1979년 인구가 8만 명에 이르러 이듬해 4월 시()로 승격된 것이다.

같은 해에 승격된 곳은 동해, 제천, 창원이 있고 그 다음 해에 승격된 곳은 동두천, 광명, 송탄, 태백, 영천, 김해, 남원, 정읍, 서귀포 등이 있다. 상주와 점촌은 1989년이다.

199511, 영주시·영풍군이 분리된 지 15년 만에 다시 1913동을 행정구역으로 하는 통합영주시가 출범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20년 영주시가지 전경
2020년 영주시가지 전경

시승격 40, 바뀐 것들
시로 승격된 지 ‘40이라는 시간은 우리지역의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다. 시가지 복판을 관통하던 원당천은 수해의 염려도 있었지만 도시를 두 동강이를 내는 형국이었다. 1982년 경일미래타운과 덕산빌라 사이를 잇던 산허리를 끊고 4.26의 물길을 뚫어 원당천을 산 너머 외곽으로 돌렸다. 시 승격 후 첫 번째 대역사(大役事)인 셈이다.

이로 인해 수해에 대한 불안 해소, 동서로 양분됐던 시가지의 연결, 남북을 잇는 큰길에 새로운 상권 형성, 그리고 새로 낸 원당천 옆으로 외곽도로를 만들어 시내의 교통 혼잡을 해소하게 하는 등 일석사조(一石四鳥)의 효과를 올린다.

시 승격 이후 영주시는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미래를 위한 기획에 매진한다. 영주시민회관(1984)과 영주시민운동장(1986) 건설이 바로 그 성과물이다.
 

2020년 선비세상 전경
2020년 선비세상 전경

새로운 도약, 지방자치시대
1991년 도의원, 1995년 시의원과 단체장을 뽑으며 시작한 지방자치시대는 특색있는 영주 가꾸기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된다. 서천둔치 조성, 영주교 개설, 선비촌 선비문화수련원 건립, 가흥신도시 개발, 국립산림치유원 유치, 한문화테마파크(선비세상)와 베어링산업단지 조성 등은 본격적인 지자체 시대가 열린 이후에 추진한 주요한 업적이다.

이중 선비촌은 1997년 착공해 2004년에 준공됐으며, 2012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됐다. 그리고 이를 더 확대해 현재 선비세상 조성사업이 내년 개장을 목표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96974, 즉 축구장 116개 크기로 용인 민속촌의 2배이다. 소수서원에서부터 선비촌, 선비문화수련원과 연결돼 있어 종합전통문화단지로는 한국 최초이며 최대 규모이다. 어떤 컨텐츠를 확보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다.

영주시를 통과하는 중앙고속도로는 24.32로 왕복 4차로이다. 1999년 서안동~영주, 2000년 영주~풍기, 2001년 풍기~제천 구간이 개통됐고 20011214일 소백산 죽령터널의 공사가 완료되면서 대구에서 춘천 간 전 구간이 개통됐다.

2018년 부석사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대표적 사찰로, 2019년 소수서원은 한국의 서원의 대표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로써 영주는 유불문화의 보고로서 한국선비문화 고양의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위치에 서 있다. 향후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도시의 확장... 신영주 그리고 가흥신도시
1963년 영주남부초등학교 개교, 1964년 철도국이 안동에서 영주로의 이전과 1974년 영주지방철도청 업무 시작, 1970년 영주연초제조창 준공, 1971년 영주전문학교(경북전문대학교) 설립, 1973년 영주역 이전 등에 이어 1980년 영주시 승격과 시청사 준공은 도시 확장의 신호탄이자 새로운 영주를 알리는 역사(役事)였다.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신영주가 영주역과 영주시청, 경북전문대를 중심으로 발달하면서 도시규모가 크게 확대됐고 구도심 중심의 경제활동이 신영주 중심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됐다.

특히 2010년 초반까지 허허벌판에 풀만 무성했던 가흥택지가 많은 주택과 다양한 업체가 들어서면서 신도시로 새롭게 변모했다. 90년대 후반에 시작된 가흥1,2지구에 대한 토지구획정리사업은 한동안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했지만 2011년에 마무리되면서 주요관문을 잇는 도로개설까지 이어졌다.

특히 선비도서관 등 공공시설물과 영주경찰서, 영주교육청 등의 주요 관공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영주시외버스터미널, 영주적십자병원 등이 속속 들어서면서 상권 중심이 신영주에서 다시 가흥신도시로 옮겨가고 있다. 늘어나는 차량으로 인한 부족한 주차공간 확보가 향후 해결해야 될 과제다.
 

원도심의 변신은 무죄, 도시재생사업
영주시는 2009년부터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했다. 공공건축물을 시작으로 후생시장, 중앙시장, 구성마을 및 연계지역 선도사업을 진행해 마을기업 및 협동조합을 만들어 지속가능한 재생사업을 위해 노력했다.

이와 함께 주거지 중 낙후지역인 효자지구(곱작골)와 관사골에 새뜰마을사업을, 1970년대 영주역 이전으로 만들어진 도심과 주거지역에 뉴딜사업 등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지역 정체성을 반영한 영주 역사 신축과 영주역과 휴천동을 연결하는 선상보도육교 건설, 영주역 앞 역세권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추진 중이어서 안락하고 활기찬 도시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09년 전국 최초로 도입한 공공건축가제도를 통해 구성한 도시건축관리단은 정부의 획일적인 공공건축 정책을 바꾸는 등 전국 지자체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영주시노인복지관, 장애인종합복지관, 선비도서관, 실내수영장 건립 등이 도시건축관리단이 추진한 성과로 생활밀착형SOC(사회간접자본)디자인 개선 혁신사례로 높이 평가받았다.

2018년엔 근대 시기 우리고장 영주의 구도심 형성과 발전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두서길·광복로 일원/26,377)’가 근대문화유산의 입체적 보존과 활용 촉진을 위해 문화재청이 도입한 선(()단위 등록문화재로 최초 등록됐다. 이를 기반으로 침체된 구도심의 활성화를 위해 원도심 관광 프로그램개발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1981년 영주역, 영주철도청, 영주시청
1981년 영주역, 영주철도청, 영주시청

철도와 함께 해온 영주역사
영주의 역사에서 철도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영주는 중앙선, 경북선, 영동선 철도가 교차하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서 예천, 봉화 등 경북북부지방은 물론 충북 단양, 강원 태백까지 같은 생활권을 형성하게 됐다.

특히 1960년대 철도가 인적, 물적 수송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가운데 전국 철도의 여객과 화물수송량 중에서도 중앙선 철도가 상당한 부분의 수송량을 담당하면서 지역 및 도시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함으로써 영주시가 대표적인 철도도시로 우뚝 설 수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도로, 고속도로와 함께 다양한 운송수단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철도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침체기를 맞게 된다.

1943년도 안동철도사무소로 시작해 1974년도에 전국 5대 지방철도청 중 하나인 영주지방철도청으로 승격했고 2009914일에 한국철도공사 경북본부로 개편 후 최근 대구본부를 통합해 한국철도공사 대구경북본부로 확대 개편됐다. 기존 조직인원이 1300여명에서 3천여 명으로 인원이 대폭 확대된 것이다.

현재 시험운행 중인 중앙선 복선전철이 완전 개통되고 중부권 동서내륙철도가 본격 추진되면 우리고장 영주는 다시 한 번 과거에 누렸던 철도 르네상스를 꿈꿀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교통이 그만큼 편리해지는 만큼 인구의 외부유출은 막고 유입은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한 대목이다.
 

교육기반 확충, 선비인재 양성
1972520, 영주전문학교를 개교한 현암교육재단은 지역의 찬란했던 유·(儒彿)문화의 전통을 이을 더 큰 인재를 양성한다는 건학이념으로 94년 풍기읍 교촌리에 동양대학교를 설립, 지역의 미래에 대한 꿈을 만들어 가고 있다.

1980년 유아교육진흥법에 따라 198131일 처음으로 영주서부초, 영주동부초, 영일초에 병설유치원이 개원했고, 면단위에서도 병설유치원이 개원했다. 1980년대 들어 주거환경의 변화 및 인구 증가로 198532일 남산초등학교가 개교해 시내지역에 초등학교가 영주, 동부, 중앙, 남부, 서부, 영일, 남산 등 7개로 늘어났다. 그 후 가흥 신도시 개발로 2017년 가흥초등학교가 개교했다.

중등교육의 경우 19733월 영주고 개교, 1973년 동산고 개교, 19753월 영주중앙고 개교, 19753월 부석고 개교, 19783월 단산중 개교, 1982년 대영고 개교, 19823월 선영여고 개교 등 중등 교육기관이 많이 설립됐다. 2016년 제14회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에 영주여고와 영주제일고가 선정됐으며, 2015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결과 대영고등학교가 보통이상 학력 학생비율 100%달성, 전국 중3 학업성취도 도내 1위 등 성과를 나타냈다.

영주시는 영주교육청과 영주선비 인재양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도내 최초로 초등학교 창의적 체험활동과 중학교 자유학기제에 인성·향토사 교육프로그램을 정규교과 과정에 포함해 지역정체성인 선비정신을 이어가는 교육목표를 실천하고 있다.
 

1995년 통합영주시 발족
1995년 통합영주시 발족

민간문화활동을 촉진시킨 시승격
영주지역의 문화활동은 시로 승격한 1980년을 기점으로 나뉜다. 이전이 관주도였다면 이후는 민간중심의 문화활동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1972년 출범한 ()영주문화원을 중심으로 지역문화 및 향토사 연구, 문화학교 운영 등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90년대 들어서는 지역관련 각종 저술활동이 줄을 잇게 된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지역인물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활발하게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지역전반을 총망라한 영주시사를 편찬하기도 했다.

각종 축제도 소백산철쭉제(1983), 소백문화제(1987), 풍기인삼축제(1998), 선비문화축제(2008)등 각종 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고 내년에는 2021세계풍기인삼엑스포를 준비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서는 순흥초군청민속축제’, ‘영주사과축제’, ‘무섬외나무다리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특히 민간문화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영주문화연구회(1991)와 영주예총(1994), 영주문화유산보존회(1996) 등의 활동이다. 영주문화연구회는 한국 관광의 별 소백산자락길을 개척했고 영주예총은 소백예술제를 통해 지역문화의 격을 높여주고 있다. 영주문화유산보존회는 향토사와 향토문화와 관련해 굵직굵직한 저술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1년 중앙고속도로 개통
2001년 중앙고속도로 개통

천혜의 자연조건, 브랜드가 답하다
영주농축산업은 크게 인삼과 사과, 한우로 축약된다. 인삼산업은 90년대 후반 홍삼가공산업이 발전하면서 전문기업들이 속속 생겨났다. 19967월 정부만 홍삼을 제조할 수 있도록 한 홍삼전매법이 폐지되면서 누구나 일정 제조시설을 갖추면 홍삼을 제조할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영주사과는 1922년 우리지역에 최초로 사과나무가 심겨진 이후 기후변화에 따라 대구에서 옮겨오면서 80년대 이후 품질 개량과 재배기술 변화에 따라 전국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품목으로 자리잡게 된다.

영주한우 또한 배합사료 위주로 사육환경이 변화되면서 사육두수가 계속 늘었고 2000년대 들어 영주한우라는 브랜드 개발과 쇠고기 이력 추적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전국최고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모두 소백산과 높은 일교차, 풍부한 양분의 토질 등의 천혜의 자연조건이 다른 지역과 차별화시켜 맛있는 농축산물을 생산해 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개로 나눠져 있는 농특산물 브랜드의 통합과 지역 농특산물의 효과적인 대도시 홍보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2020년 일진베어링아트공장
2020년 일진베어링아트공장

대기업 유치...이젠 첨단산업도시로
지역경제를 떠받치던 철도가 침체기를 맞으면서 지난 40년 동안 영주경제를 떠받친 것은 지역기업들이다. 대표적인 기업들로는 SK머티리얼즈와 KT&G영주제조창, 노벨리스코리아 영주공장, 일진베어링아트 영주공장 등이 있다. 산업화에 따라 이들 기업을 중심으로 5개의 일반 산업단지와 6개의 농공단지가 조성됐고 이곳에 입주해 있는 기업만도 129개에 총 종업원 수가 4천명에 이른다.

철도교통의 요충지로 발전을 거듭하다 1980년대 말부터 긴 정체기에 접어든 영주시가 최근들어 첨단베어링산업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정부가 2017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과 100대 국정과제에 영주시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첨단베어링클러스트를 지역공약으로 포함했기 때문이다.

영주 첨단베어링산업 클러스터 조성사업은 베어링산업의 구조를 대대적으로 바꾸어놓을 대규모 프로젝트로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 베어링 제조기술센터 건립 등 기반구축과 연구개발(R&D), 사업화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다.

첨단베어링 산업단지가 성공적으로 조성되면 직·간접 고용 5천여 명과 연간 835억원 경제유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첨단 베어링 클러스트 조성 사업은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얼마만큼 이끌어 내느냐에 따라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고장이 인구가 제일 많았던 시기는 1974년으로 ‘175444이었다. 시로 승격할 당시만 해도 ‘163485이었다. 하지만 철도가 쇠락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점점 줄어들어 2020년 현재 104천명으로 10만 명 선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올해 들어서는 정부정책연구기관들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해 놓고 있어 스스로 살아 남기위한 자구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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