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더스트밴드 셸에서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노인- 홍승경

'스타더스트밴드 셸' 무대 위에 말끔히 수트를 차려입은 노인이 굽은 등을 보이며 행복에 겨워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당신은 날 사랑하게 만들었어요
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당신은 날 사랑하게 만들었어요
언제나 그걸 알았죠
언제나 그걸 알았죠

노인의 눈은 천국에라도 닿을 듯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나는 스물 여덟에 천국을 경험하긴 싫지만, 노인과 천국의 비밀은 나누고 싶어 단숨에 여기에 오고 말았다. 대상포진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에디 할아버지와 질병 분류 기호 L28을 받아 든 나는 상처를 덮고 있는 반창고의 가장자리가 검게 변해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에디는 반창고 밑에 스며든 마거릿을 떠올리고, 나는 알러지 분류 체계를 흩트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에디가 먼저 입을 뗀다. 그가 '나의 다섯 명 중의 하나'는 아니라고 잘라 말하곤 에디가 천국에서 조우한 다섯 명의 인연에 대해 긴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나는 어느샌가 알러지에 대해 잠시 잊고 에디와 천국을 날아 오른다.

에디는 놀이동산 '루비피어'의 정비공으로 평생을 보냈다. 그의 아파트 부엌창을 통해 회전목마가 보이고, 그 옆으로 묵묵히 일을 하는 에디 메인트넌스. 에디는 젊은 시절 태피사탕을 함께 먹던 마거릿과 결혼했고 죽음을 맞은 지금도 그녀와 교감한다. 마거릿은 네 번째 사람으로 에디를 한번 더 사랑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을 에디는 '찾았다'. 마거릿은 불임이었고, 입양문제로 부부가 힘들어하자 짓궂은 소년들의 장난으로 마거릿은 병상에 눕는다. 그리곤 얼마간의 뇌종양. 하지만 그들은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서로를 보듬는 사랑,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사랑을 하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에디의 이야기 내내 마거릿과 태피사탕을 상상했다. 어떤 종류의 씁쓸함과 달콤함을 가진 여자일까? 나도 누군가와 태피사탕을 함께 먹게 될까?

에디에게 처음 찾아온 사랑은 파란사내였다. 그는 '타인이란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일 뿐' 우린 모두 한 사연으로 얽혀있음을 강조한다. 어린 시절 장기 복용한 신경안정제인 질산은에 중독되어 피부가 파랗게 질린 사연과 루비피어에서 파리한 생을 살다 타인에 의해 죽은 파란사내는 어떻게 에디의 멱살을 쥐지 않았을까. 파란사내는 에디를 찾아오기 전 그의 다섯 명의 인연에게서 어떤 얘기를 들었을지 짐작이 되었다.

에디는 젊은 시절 징병되어 전쟁도 맛보았다. 나는 전쟁은 한 인간을 광기로 얼룩지게 할 수 있는 모든 덕목을 갖춘 서바이벌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그 전쟁이 에디에게 미친 영향은 장난감 총 따위의 편린이 아니다. 그럼에도 에디는 담담하게 걸어온 것이다. 그 전쟁에서 그를 구해 주었던 소중한 사랑을 잊은 채 살아왔지만 천국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두 번째 사랑인 대위는 에디가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와 부끄러운 원망의 눈물을 쏟아내게 한다. 대위의 희생, 대위의 약속. 그것의 진실.

루비피어는 놀이공원 이름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 이름이 여성스럽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여자, 어머니와 같은 모성으로 모든 것을 감싸안아 줄 것만 같은 이름. 루비피어는 세 번째 사람이었다. 그녀가 들려주는 에디 아버지의 이야기, 에디의 아버지와 에디. 나는 이 대목에서 할 말이 많아진다. 아니, 사실은 말수가 줄어들었다. '부모는 자식을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자식이 부모를 놓아버린다. 자식들은 부모를 벗어나고 떠나버린다.' 그러나 에디처럼 나는 아직 부모를 놓지 않았다.

부모가 내게 준 상처가 진한 멍을 만들지언정 나는 당신들을 등질 수가 없다. 에디의 아버지는 맨 처음 무관심으로 에디를 확대했다. 나는 나의 아버지의 과잉보호를 맨 처음 학대라고 느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반항하지 않았고 착한아이 컴플렉스인 채로 지금껏 당신과 살을 부비며 산다. 몇 몇 순간 울컥한 감정을 억누르는 것으로 부모에 대한 나의 사랑 자체를 부정할 수가 없다. 나와 맺은 인연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실 분들이 결국 그들이란 걸 나는 수긍하는 것이다.

에디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아직은 함께 해 주시는 아버지를 마주하고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를 먼저 천국에 보내드리고 담담해 지고 싶다. 그리고 아버지와 천국에서 내가 조우할 다섯 사랑 중 한 사람이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처음 에디는 자신이 죽음을 맞이한 순간, 에이미 인지 애미 인지 하는 소녀를 구하였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 의문은 다섯 번째 찾아온 탈라에 의해 밝혀진다. 탈라는 그러니까 에디가 전쟁의 광기로 흥분해 있을 때 그가 구원받고자 했던 소녀였다.

결국 에디는 구원받지 못했고 탈라는 앞서 찾아온 그들처럼 다시 한번 에디에게 손을 내민다. 에디는 탈라의 주문대로 돌멩이를 들어 그녀의 상처를 치유하고 애미의 생명을 느낀다.

에디는 말한다. 부엌창으로 보이던 루비피어의 회전목마는 내가 여기 있는 이유였다고. 회전목마가 보이는 이곳은 평생 지켜봐 왔지만 내가 있어도 되는 자리일까 의심했다고. 평생을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면서도 놀이공원을 늘 배회한 느낌이었다고.

그러나 천국은 에디에게 말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디,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루비피어에요."
에디는 이야기를 끝내며 내게 메모지 한 장을 건넨다.
"집"
에디는 상처를 덮고 있던 반창고를 가장자리부터 조심스레 떼어낸 후 다시 스타더스트밴드 셸 위에서 노래한다. 나는 에디가 건넨 '집'을 한참 들여다본다. 집이라니... 사랑하는 마거릿이 따끈한 스프를 데우는 부엌과 무관심하던 아버지가 돌아누워 있는 침실과 에디의 생일케익이 올여지던 식탁이 있는 공간, 집... 에디가 나에게 무언가 더 말해주었으면 하고 그를 올려다본다.

잠시 후 나는 에디의 나지막한 노래를 뒤로하고 놀이동산을 빠져 나왔다. 나는 아직 반창고를 떼어내지 않는다. 가장자리가 이전보다 더러워졌지만 아직은 그럴 순간이 내겐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건드려 온 인연들을 떠올린다. 물론, 가족과 친구들을 먼저 떠올린다. 그들이 나로 인해 아팠을까. 나는 그들 때문에 힘이 들었나. 우리는 얼마나 더 질긴 인연으로 으르렁거리다가 헤어질까...... 반창고를 떼지 않은 채 나는 '자신과의 화해'를 이곳에서 이끌어 내고 싶다.

"왜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진지한 질문을 던졌으니, 앞으로 나는 그 답을 수 차례 번복해 가면서 식은땀을 흘릴 것이다.

[당선소감]책을 통해 '말랑말랑한 기분을 느껴보라'

나는 주기적 인간형이다. 나에게 국한된 형태이다.
나는 두 달 전 문득 책이 마구 읽고 싶었다.
매달 사 모으는 잡지가 아니라 단행본을 탐독하고 싶었다.

어느 날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책을 펴 보았는데
슈테판이 이르길 여러 각도로 모색된 창작 욕구가
한 권의 책을 탄생시키며 그것이 금전에 대한 욕심이든
허영이면 뭐 어떠한가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나는 공교롭게도 그 날 오후 신문에 난 공고를 보았고
다음 날 한 권의 책을 읽었고, 그 다음 날 글을 썼다.

당선 소식을 듣고 나서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형편없다, 부끄럽다.
나는 나의 미니 홈피에 게시해 두었던 글을 숨겨버리고
덩달아 나머지 글들까지도 숨겨버렸다.
나를 엿보았을 타인들의 눈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곤 글쓰는 즐거움이 퇴색되던 며칠동안 힘들었다.
나를 들킨 느낌.
무엇을 보여줬기에 나는 부끄러워하는가.

물음이 많은 나는 공상가이다.
치기 어린 마음으로 못된 일기를 빽빽하게 쓰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달변가는 아닌 것을 보면 나는 그리 똑똑하지도 못하다.
항상 겸손한 나를 보았다. 나는 '나'란 물음으로 세상을 산다.
그렇지만 나는 솔직했다. 글은 진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이것은 기록이다.
기록은 더 나은 점수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의 나의 느낌에 충실한 글일 뿐이다.

나는 며칠 동안 묻어 두었던 글에 대한 사랑을 다시 꺼낸다.
나의 글이 수준 낮은 동화라고 비웃는 그들을 향해
더욱 강도 높은 상상으로 유치해지고 싶어졌다.
갈팡질팡하는 나의 마음을 글 속에 가둬두고
나는 둥둥 떠다니며 살 것이다.

한 사람이 변해 가는 과정을 우리는 책에서 보지 않았던가.
상상은 우리에게 특효를 선사한다.
나는 지금 현실을 도피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꿈 같은 책의 이야기를 팍팍한 현실로 끌어들여
말랑말랑한 기분을 느껴보라는 말이다.

나는 그 책을 읽고 엄청난 변화를 맛보고 있진 않으나
이렇게 당선소감을 쓰고 있다.

끝으로 저의 글을 택해 주신 심사위원 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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