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프랑스의 문예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그의 저서 ‘촛불의 미학’에서 촛불과 아궁이불을 비교하고 있다. 아궁이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려면 아궁이 앞에 앉아 땔감이 타면 다시 넣어야 한다. 손을 움직여 나무를 보충하는 노동을 요구한다. 촛불은 그런 동작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바슐라르는 아궁이불은 사람으로 하여금 노동을 하게 하지만 촛불은 생각하게 한다고 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이후 인간은 불을 이용해서 다른 동물들이 누리지 못한 문명을 누리기 시작했다. 불에는 열과 빛이 있다. 열을 이용해서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위의 부담을 덜어 수명을 연장하고 추위를 몰아내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빛을 이용해서 어둠을 밀어내고 밤 시간도 일을 하거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불을 이용할 줄 모르는 동물은 불을 두려워한다. 밤중에 산길을 걸을 때 주머니에 작은 성냥만 넣고 가면 맹수를 물리칠 수 있다. 호랑이가 나타나도 성냥을 그어대며 “털에 불을 확 싸지를까 보다” 하면 꼬리를 내리고 간다고 한다. 불은 폭력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때 지주의 횡포와 수탈에 시달리던 소작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주인을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르는 것으로 끝나는 소설이 많다. 실제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2016년 6월부터 2017년 4월까지 광화문에서는 23차에 걸쳐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적폐청산과 평화를 갈망하는 시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주최 측 추산 연인원 1천600만 명이다. 외신 기자들은 이 평화적인 촛불문화제를 경이로운 일이라고 전 세계에 타전했다. 이로 인해 국정농단의 중심에 있던 대통령이 탄핵되고, 선거에 의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되었다. 정권을 바꾼 사건이기에 이를 촛불혁명이라 하기도 한다.

이들은 왜 촛불을 들었을까? 물리적인 힘은 화염병이나 횃불이 더 강하지만 촛불시민들은 바람에도 꺼질 수 있는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4.19 혁명을 비롯한 민주화를 요구하는 크고 작은 시민행동은 수차례 있어 왔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최후로 선택한 것이 촛불이었다. 촛불은 폭력이 아니라 평화이며 물리적 행동이 아니라 사색이요 명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이 무를 이긴 것이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 것이다.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노라면 우리의 근대사가 오롯이 떠오른다. 일제강점기 동안 수많은 독립투사가 고문당하고 죽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했지만 우리민족의 염원과는 상관없이 외세와 나쁜 정치가들에 의해 한반도는 다시 분단의 비극을 맞게 되었다. 급기야 한반도는 남과 북 그리고 외국 용병들이 싸우는 세계의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한반도 남쪽의 주류세력은 친일파를 기반으로 하는 부도덕한 정치세력이었다. 그들은 북의 적화통일을 분쇄한다며 민주주의와 정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좌파라고 규정하고 고문하고 죽이는 억압을 계속하여 그들의 권력을 유지해 왔다.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는 천만 개의 촛불이 고요히 타올랐다. 올해가 촛불혁명 4주기가 되는 해다. 아직 촛불혁명은 미완이다. 한반도가 정의롭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기 전에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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