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서울중앙지법 형사 25부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 특파원의 명예훼손 사건에 개입해서 직권남용혐의로 기소된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산케이신문>은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산케이신문> 서울특파원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했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당시 서울지방법원 형사부장판사가 청와대의 의중을 전달받고 담당판사에게 이리이리 판결해 줄 것을 지시하고 판결문 요약본을 고치게 했다는 혐의다.

이는 대놓고 재판에 개입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부장판사의 집권남용 재판에서 서울지방법원 형사 25부는 ‘재판에 개입해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감독 권한이 없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애초에 재판에 관여할 직권이 없는 자가 재판에 개입했기에 직권을 남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관들은 이것을 법리라 하지만 상식의 눈으로 보면 궤변이다.

헌법은 위반했지만 형법에는 처벌할 조항이 없다는 것이고 죄는 지었지만 법리상으로는 무죄라는 것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법 적용이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판결을 해서 비판을 받기도 했던 과거의 어느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 판결 후에 한때 네티즌들은 이 말을 패러디해서 때리긴 했지만 폭행한 것은 아니다, 빨간 불일 때 건넜지만 신호 위반은 아니다, 얼굴이 바뀐 건 맞지만 성형은 아니다 등의 말로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법관들은 이를 법리라고 부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궤변이라 할 수밖에 없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궤변론자가 철학자로 대접받은 적이 있지만 그건 옛날이야기다. 우리는 궤변을 말장난이라고 하고 법관들은 법리라고 한다. 법은 상식을 넘지 못한다. 우리가 아는 상식은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죄를 지었음에도 무죄라고 하는 것이 법리라면 우리는 그런 법리를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오랜 세월 법관이 법리라고 하는 말에 주눅이 들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법관을 조선조 과거에 급제한 것과 동일시해서 젊은 검사를 영감님이라 부르기도 했다. 아직도 법관은 영감님인 샘이다. 법관이 상식에 못 미치는 판결을 해도 수긍했다. 법관이나 요리사나 다 같은 전문직이다. 요리사의 음식이 맛이 없으면 맛이 없다고 하듯이 법관의 판결도 그르면 그르다고 해야 민주시민이다.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서 법관들이 줄줄이 무죄가 선고되는 것을 보면서 더는 법관의 권위를 인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 사건도 무죄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들의 법리대로라면 양승태도 법관을 관리할 권한이 없는데 관리했으니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이 시민에게는 가혹하고 법관에게만은 너그럽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법이 늘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지강헌의 말이 시민의 공감을 얻은 것도 법에 대한 불신을 말해준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법관이라는 이름의 권위 때문에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그러나 법의 오만함이 임계점에 도달한 것 같다. 법리라는 이름의 궤변이 설득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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