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시인·문학박사)

우리선비들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가까이 했다. 매화는 설중매(雪中梅)를 가리키는데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난초는 척박한 벼랑 끝에서 비와 이슬을 먹고 자라니 그 기품이 고고하다. 겉으로 보기엔 연약하나 그 뜻이 굳어(外柔內剛) 군자의 기품을 지녔다. 국화는 가을 서리 속에서 꽃을 피우니(傲霜孤節) 또한 선비의 기상을 지녔다. 대나무는 곧고 굳세니 그 지조와 절개가 군자라 할 만하다.

우리 선비들은 이 네 가지의 사물을 사군자(四君子)라 하여 가까이 두고 그 굴하지 않는 태도를 사모하고 본받으려 했다. 사군자는 겉모습이 장미나 벚꽃만큼 화려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비들이 어느 꽃보다 가까이 하려한 까닭은 무엇인가. 선비들이 사랑했던 것은 사군자의 겉모습이 아니라 사군자가 지닌 내면이었을 것이다. 사군자가 지닌 공통점 가운데 하나만 고르라면 그것은 의(義)일 것이다.

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니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충성스런 신하가 임금의 옳지 못함에 대해 목숨을 걸고 비판했던 것은 의 때문이었다. 의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것이 우리 선비들의 지조(志操)요 절개(節槪)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어떤 사람의 인품을 이야기할 때 외유내강이라는 말을 한다. 겉으로 드러난 외형은 난초처럼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내면에 불의에 굴하지 않은 성품을 지녔기 때문이다. 타인을 대할 때는 따뜻하고 부드러우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추호의 잘못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을 외유내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외유내강이 현대에 오면서 왜곡되어 쓰이는 경향이 있다. 우리 아버지들은 언제부터인가 밖에서 남을 대할 때는 친절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집안에 들어오면 부인이나 자녀들에게 엄격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외유내강인 것으로 여기셨던 같다. 왜 우리의 아버지들은 이렇게 변했을까?

이는 우리의 근현대사와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인다. 사람이 막다른 지점에 처하게 되면 적에게 굴하거나 목숨을 걸고 대항하거나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조선왕조가 저물고 망국의 지경에 다다랐을 때 우리민족의 처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어떤 신하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역적이 되어 나라를 일본에 바쳤다. 어떤 선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조를 지키기도 하고 의병이 되어 싸우다 죽어갔다.

그렇게 꽃다이 죽어간 선비들은 역사에 묻히고 강자에 굴하여 살아남은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누렸다. 그래서 사람들의 살아남기 위한 태도가 자기도 모르게 외유내강을 왜곡시켰을 것이리라. 나서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싫어도 좋은 척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아라. 우리 어버이들이 입에 달고 살아오신 말들이다. 강자에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했다.

우리 한반도의 처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에는 유하고 우리민족끼리는 모질게 싸운다. 미국은 북에 대해 입만 열면 제재라 하고, 남에 대해서도 미군 주둔비용을 더 내라, 일본과 맺은 지소미아를 중단하지 말라고 압박한다. 일본도 우리에게 무역제재를 가하고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 한다. 이 모든 외세의 제재와 압박에 대해서는 부드럽고 우리민족끼리만 죽기 살기로 싸운다. 이런 모습이 오늘의 외유내강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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