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시조시인, 수필가, 본지논설위원)

민족의 명절, 추석이 지나간 후 여자들이 말하는 명절 후유증이 만만찮다. 고향을 지키고 문중을 지키는 사람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서 해주는 밥 사먹으며 꽃구경을 다니는 것도 피곤한 나이인데 멀리 있던 친지들이 모이는 행사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뒷정리를 하는 일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명절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까. 모이는 사람들이 혈육이라는 이유로, 또는 친지라는 이유로 불평도 못하고 묵묵히 연례행사를 수십 년간 해 온 사람에게는 명절 밑에 명절공포증이 먼저 찾아오고 명절 후에는 한 사흘 몸살을 앓는 일이 다반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날을 명절이라고 말하지만 맏며느리의 대부분에게는 마음도 상하고 몸도 상하는 날이다. 이다지 여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명절은 제사를 모시는 가정에서는 더 큰 소용돌이가 있게 마련인데 이는 남자들과 맏며느리가 아닌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제사는 고대 이래 제천 행사 부터가 기원이지만 우리나라가 조상에 대해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부터였다. 그것도 신분에 따랐고 아무 문중에나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곧 제사를 모시는 가문은 선택된 가문이었기 때문에 그 우월성이 대단했다. 제사가 유교를 숭상한 조선 시대로 넘어 오면서 모시는 가문도 늘어나고 공자시대에도 모시지 않던 4대 봉사를 하며 제상의 규모도 점점 커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렇듯 제사를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했으니 조상들이 세워 온 제사 풍습을 후손들이 감히 왈가왈부하지 못하고 일체 함구하며 받들어 와서 제례의식은 가문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제상의 규모가 문중의 대결이 되고 집안의 대결이 되며, 종손과 종부들의 안목의 높이로 평가 받고 재력의 과시로 까지 보이게 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이처럼 숙명으로 생각하고 답습해 온 데는 기복사상이 있었음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농경사회에서 오래도록 잘 이어져 왔으나 현대부터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명절과 제사에 심신이 지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딸들은 맏며느리가 되는 혼처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종손이 결혼을 못하는 종가집도 생겨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종부될 사람이 관혼상제의 간소화를 조건으로 내걸더라는 소문도 있다.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쯤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자. 따지고 보면 조상을 위한 제사의 역사는 500년 남짓이라는 말이고 고려중기시대만 해도 조상에 대한 제사는 없던 풍습이었다. 그것도 꼭 중국에서 들여온 예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송 대(宋代)의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영향을 받은 것은 틀림없다. 문제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나라, 중국에서도 오늘날 제사는 없으며 한문문화권 내에서도 우리나라만 제사를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500여 년 이상 이어온 우리의 제례풍습은 조상을 기리는 우리만의 풍습으로 미풍양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풍양속은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미풍양속을 이어가야 할 주체들인 젊은이들이 상기(上記)와 같이 많이 달라졌다. 농사나 지으며 가풍 이어받기만 하던 옛날의 젊은이가 아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가정도 일구고 나라도 움직여야하며 세계도 넘보아야 한다. 여기에 남녀가 구별이 없다.

제사나 차례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의 시작은 지금처럼 번거롭지 않았다. 특히 차례(茶禮)는 어린 차나무의 잎으로 달인 차를 조상들에게 올리는 검소한 제사이니 애초부터 차례란 조상들을 기리는 정성을 중시할 뿐, 간소하고 소박하게 할 것을 암시했던 것이다. 인간의 경쟁심과 신분상승을 추구하는 허영심으로 잘못 전래된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볼 때라고 생각한다. 조상에 대한 숭배의 마음은 그대로 간직하되 예식은 과감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어 가가예문(家家禮文)이라는 말로 덮을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계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마침, 이황 선생 종가를 비롯한 안동의 여러 종가에서도 추석 차례는 생략하고 성리학자 명재 윤증선생의 종가인 명재고택에서도 3만 원 미만으로 차례 상을 차린다니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맏이가 장가를 못 들거나, 제사를 기피하거나, 소홀히 하여 분쟁이 일어나면 그 가정의 아들은 불효자가 되지만 시대에 맞게 과감하게 개선된 제례 풍습을 물려 준 가정은 불효자를 만들지 않게 된다. 효자도 부모가 만들고 불효자도 부모가 만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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