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향숙 의원 초청특강 '청소년들이여 비전을 가져라' 강연요지

동산여전고가 지난 10일 오전 9시30분 대강당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1번으로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던 지역출신 장향숙 국회의원 초청특강을 열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열린 이날 강연은 '청소년들이여 비전을 가져라!'란 주제로 장 의원이 살아온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1시간 30여분 동안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동산여전고는 매년 전교생을 대상으로 유명인사 초청강연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80년대 신군부 삼청교육대 명단 제출 거부로 유명한 경남 거창고 도재원 교장을 비롯, 사랑의 울타리 원장인 서울정보통신대학원 정창덕 교수, 친절강사로 유명한 김세환 교수 등이 다녀갔다.

이번에 초청한 장향숙 의원은 평은면 지곡리 출신으로 태어나자마자 소아마비를 앓아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1만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우진용 교장이 장향숙 의원의 이력을 소개하면서 시작한 이날의 강연은 장 의원이 고향의 후배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형식이었는데 청중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다음은 그 강연의 요지이다. <김우출 본지 논설위원.영주고 교사>

평생 여성장애인 인권운동으로 살아온 삶

여러분! 반갑습니다. 방금 교장 선생님께서 소개한 장향숙입니다. 옆에서 저의 이력을 소개하는 것을 들어보니 저도 제 경력이 그렇게 긴 줄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학력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줄이면 여성 장애인 인권운동을 열심히 했다는 것뿐입니다. 그동안 저 나름대로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위해 굉장히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 동산여전고 전교생을 대상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지역출신 장향숙 국회의원
저는 국회의원이 그렇게 바쁜 직업인 줄 모르고 시작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자료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무척 힘이 듭니다. 그런데 제가 이 자리에서 한 시간 반 동안 말로 무언가 메시지를 던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국회의원의 일보다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는 경북 영주시 평은면 지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생년월일이 1961년 2월 3일로 되어 있습니다만 사실은 1958년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마흔 일곱이지요. 여러분이 보기에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죠? 사실은 더 젊어 보였는데 최근에 많이 삭았습니다. (웃음) 호적이 잘못 되어 있는 것도 처음에 살아날 것 같지 않으니까 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가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니까 그제서야 올린 것입니다.

저는 16세까지 고향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그 시절에 그런 시골에서 태어난 여성 장애인이라면 저 뿐 아니라 대개가 학교는커녕 문밖에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평생 동안 글을 읽지 못하고 늙어 가는 사람도 많지요. 제가 문맹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집안이 증조부 때부터 기독교인이어서 부모님께서 저를 데리고 성경책으로 가정예배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정상인으로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 여러분들은 공부가 하기 싫고 놀고 싶겠지만 저처럼 학교에도 갈 수 없고 다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장애인들은 학교에도 가고 싶고 공부가 하고 싶답니다. 여러분들도 가만히 내 가슴속을 들여다보면 무엇인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뭔가를 더 알고 싶었습니다. 네 발로 걸어서 나가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듯이 무슨 책이든지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성경책으로 깨친 한글...세상이 알고 싶어 1만 권 이상 독서

제가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이 된 후에 기자들이 '무학이라면서요?'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무학은 아니고 무학력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책을 대략 1만 권 이상은 읽은 것 같다고 했더니 책을 추천해 달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있습니다. 저도 정상인들처럼 학교에 갈 수 있었다면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도 있고 웃고 이야기하고 선생님 잔소리 듣고 하느라고 이렇게 많은 책을 읽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 장 의원은 강연 내내 학생들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가 여기에 들어올 때 건장한 남성 세 사람이 제가 휠체어를 탄 채로 이 자리로 들어올렸습니다. 이 학교 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있는 대부분의 학교가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어렵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는 22세 때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고 시장에 나가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동물원 원숭이를 쳐다보듯이 했습니다. 저를 보는 시선은 심하게 말하면 혐오스럽다는 눈길이었습니다.

저는 안으로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누구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께서 자주 싸우신다거나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깨달은 것은 단 하나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으면 절대 내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장애인들의 겉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상인들도 눈에 보이는 외모로 먼저 평가받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을 오래 사귀다보면 마음을 볼 수 있고 익숙해집니다. 더 많은 장애인들이 세상에 나와서 정상인과 교감을 나눌 수 있다면 익숙해질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 일을 해왔습니다. 평생 돈 안 되는 장애인 인권운동만 해오다가 국회의원이 되고 보니 세비를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여의도 근처에 월세 오피스텔 얻어 의정활동 시작

여의도 근처에 월세 60만원으로 15평 짜리 오피스텔 하나를 얻었습니다. 대한민국 그것도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남성들은 가부장적 문화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제 동생은 목사이고 결혼해서 두 아들이 있는데 저는 제 조카들에게 어머니만 쳐다보고 있지 말고 밥하고 빨래하는 집안 일을 하라고 합니다. 이번 방학 동안 서울에 와서 조카가 해주는 밥을 먹고 살아보자고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용돈을 잘 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웃음)

▲ 강연을 듣고 있는 동산여전고 학생들
저는 휠체어 아니고는 나갈 수가 없지만 중증이 아니어서 목발을 짚고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연애나 결혼이나 취직이 어렵답니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자기를 비하(卑下)하는 고정관념입니다. 내가 시시하면 당연히 자기존중감이 없지요. 사람은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 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다만 잘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람이지요.

남성보다 여성장애인이 살아가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저는 1998년부터 집중적으로 여성장애인 인권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까지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여성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보건복지위원에 소속되었습니다. 결혼하고 안하고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저는 연애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여성장애인들의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 도와주어야 합니다. 부산에서 전국 최초로 여성장애인연대를 만들었습니다.

전국 여성장애인연대에도 앞장섰습니다. 폭력과 학대, 성폭력 전문 상담소를 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 인권운동에 관한 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전국에서 처음으로 무학력으로도 여성정책자문위원이 되었습니다.(박수)

방바닥을 기고 휠체어 타고 여기까지 왔다...'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

장향숙이라는 한 여성장애인이 누가 오라는 사람이 없다고 평생 방안에서만 세월을 보냈다면 오늘날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누가 나에게 어떤 시선을 주더라도 내 인생에 어떤 필름을 감을 것인가는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걸어다니는 것은 잘 모릅니다.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방바닥에서 기어서부터 휠체어를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러분! 다른 것은 다 잊더라도 이것만은 꼭 기억하십시오. 내가 내 인생을 만들어간다고 믿고 꿈과 희망을 가지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습니다. 제가 되고 싶은 것은 꿈과 희망의 전도사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 우주의 소중한 여자요, 딸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십시오.

제가 가장 영향을 받은 책은 역시 성경입니다. 문자를 깨친 것도 성경을 통해서였지만 훌륭한 사람들의 좋은 말도 결국 성경에 있는 말이 많기 때문입니다. 앙드레 모아 라는 사람은 '태초에 행복이 있었다'라고 말했는데 성경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가 있고 프랑스의 고고학자 벨리아르는 '변화의 차원은 내 자신 속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이미 성경에서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라는 말을 찾을 수 있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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