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영주 톺아보기 우리마을 탐방
예전에 놋그릇을 만드는 공방(工房)이 있다하여 놋점(鍮店)우리마을탐방[261] 순흥면 청구2리 놋점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8.30 10:54
  • 호수 730
  • 댓글 0

동구에 선사인(先史人) 숨결 깃든 ‘청구리 입석(立石)’
고려 말 순흥부 때부터 놋그릇 만들어 부(府)에 공급

놋점마을 전경
청구리 마을회관
놋점 가는 길

순흥면 놋점 가는 길
순흥면사무소에서 소수서원 방향으로 간다. 선비촌에서 단산방향 1km 지점 ‘삼막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과수원길 200m가량 들어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여근동이고, 우회전하면 놋점마을이다. 마을 바로 앞에 유서 깊은 ‘청구리 입석’이 있고, 연이어 마을회관이 나타난다. 지난 21일 놋점마을에 갔다. 이날 이흥제 이장, 금동희 노인회장, 이이자 부녀회장, 강신국 어르신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역사 속의 놋점마을
순흥은 고구려 때 급벌산군(及伐山郡), 통일신라 때 급산군(급山郡)이라 했다. 고려 때는 흥주(興州)-순정(順政)-순안(順安)이라 불렀고, 고려 말 충렬왕의 태(胎)를 순흥땅에 묻고 흥령현령(興寧縣令), 충숙왕의 태를 또 묻고 지흥주사(知興州事), 연이어 충목왕의 태를 묻고 순흥부(順興府)로 승격됐다. 조선 초 1413년(태종13년) 전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순흥은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로 승격됐다. 1457년 정축지변(금성대군사건)으로 폐부되어 풍기군에 붙었다가 1683년 순흥부로 회복됐다. 1700년경 부(府)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놋점마을은 순흥도호부 내죽면(內竹面) 옥계리(玉溪里)가 되고, 조선말 1896년 전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순흥군으로 격하되어 순흥군 내죽면 옥계리가 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 순흥면 청구리(靑邱里)에 속했다가 1980년 영풍군 순흥면 청구2리, 1995년 통합 영주시 순흥면 청구2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신국(84) 어르신은 “놋점마을은 김해김씨가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그다음은 연안송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면서 “선인들은 척박한 산지를 개발하여 옥토(沃土)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놋점·옥계·청구 지명유래
청구리 놋점마을은 조선 때 내죽면 ‘옥계리’였다. 행정구역 상 ‘옥계리’이고, 속칭 ‘놋점’이다. 고려 말 순흥부일 때 놋그릇을 만들어 부(府)에 공급하는 공방이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놋점을 한자로 쓰면 유점(鍮店)이다. 유점은 놋쇠 유(鍮)자에 가게 점(店)자를 쓴다.

예전 사람들은 놋쇠 유(鍮)에서 ‘놋’자를 따고, 가게 점(店)자에서 ‘점’자를 따 ‘놋점’이라 부르게 됐다. 글로 적을 때는 ‘유점(鍮店)’이라 쓰고, 말할 때는 ‘놋점’이라 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를 옥계(玉溪)라 한다. 구슬 옥(玉)자를 쓴다. ‘옥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내(川)’라는 뜻이다. 이흥제 이장은 “예전에 옥계 주변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그 경관이 장관이었다는 이야기를 선대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김철수(82) 어르신은 “청구리(靑邱里)는 일제 때 생긴 행정구역으로 ‘청두들’에서 유래됐다”며 “청두들은 현 선비촌 자리에 있던 작은 마을”이라고 말했다. 오영자(81) 할머니는 “놋점에는 예전에 옷물탕이 유명했다”며 “마을 안쪽에는 버듬실, 장시공, 재궁골, 샘골, 도장골 등 정겨운 이름들이 많다”고 했다.

옛 순흥부 주변의 점(店,가게)들
순흥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한강이남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고 전해온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즐비했으며, 참나무 숯불에 이(쌀)밥 해 먹었고, 높은 학문으로 문화생활을 즐기며 흥성(興盛)하게 살던 곳이라고 전해온다. 당시 순흥부 주변에는 생필품을 만들어 부에 공급하는 점방(店房)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놋점(鍮店)에서는 놋그릇을 만들어 팔았고, 배점(裵店)에는 배순의 대장간이 있었다. 덕현리 안쪽 점마(店村)에는 사기 굽는 가마가 있었고, 검을 흑(墨,먹)에서 유래한 거묵골(墨谷)에서는 숯으로 먹을 생산하는 공방(工房)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옛 지명을 그대로 쓰고 있어 역사가 됐다.

청구리 입석(靑丘里 立石)
마을 앞에 ‘청구리 입석’이 있다. 표지판에 「입석은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巨石記念物)이다」고 새겼다. 입석은 선사인(先史人)의 숨결이 깃든 성스럽고 신비한 돌기둥이다. 3천여 년 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이 돌을 세우고 다산과 풍요를 기원했다고 한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15호인 입석은 소나무 숲 안쪽에 5m 간격을 두고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이 입석은 각주형(角柱形) 자연석을 세운 것으로 동쪽 큰 입석 아랫부분에 성혈석(性穴石) 1기가 있다. 성혈(性穴)은 바위 표면을 오목하게 파서 만든 원추형 홈인데 별자리, 여성성기 등으로 상징된다.

강신국 어르신은 “예전에 입석 뒤에 당(堂)집이 있었다고 하나 보지는 못했다”며 “지금도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와서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입석은 놋점마을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여근석(청구리 입석)
여근곡(전봇대 +자 끝)

여근석과 여근곡
청구리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선사시대부터라고 한다. 옛 사람들의 자연관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남근석(男根石)과 여근곡(女根谷)의 전설은 현대인들에게는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전국에 남근석과 여근곡에 대한 전설이 여럿 있는데 순흥 청구리에도 있어 매우 흥미롭다. 순흥면 청구리 놋점마을에는 남근석이 있고, 남성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는 여근곡은 윗마을 여근동에 있다. 아랫마을(놋점)에 있는 남근석(男根石)은 윗마을(여근동) 뒷산에 있는 여근곡(女根谷)을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한다. 남근석은 선돌 또는 입석으로도 부르는데 서민층들이 오랫동안 토속신앙으로 받들어 모신 문화다.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마을의 음기를 다스리고 잡스런 질병을 차단해 주며, 이정표 역할도 했다한다.

복숭아 선별작업
김만수 어르신(복숭아)

놋점 복숭아
놋점마을로 가는 길에 우림농원에서 이흥제 이장을 만났다. 복숭아 선별작업이 한창이다.

이 이장은 우림공동선별회 총무다. “순흥에서 생산되는 복숭아는 대부분 동남아로 수출한다”며 “1년에 3억원 정도 수출한다”고 말했다.

놋점마을은 마을 초입에서부터 삼막골, 뒷골, 얕은골, 깊은골, 생골을 지나 막장에 이르기까지 골 전체가 복숭아밭이다. 기자가 깊은골 방향으로 오르다가 김만수(83)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은 “10여 년 전부터 복숭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며 복숭아 2개를 따 주면서 “먹어보라”고 했다.

마을 회관에 모였을 때도 복숭아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금동희 노인회장은 “땅이 메말라 인삼재배 등이 어려웠는데 복숭아 재배를 하면서 농가소득이 높아졌다”고 했다. 취재를 마치고 회관을 떠날 때 권영순 할머니께서 “가다가 먹으라”며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쥐어 주셨다. 집에 와 풀어보니 굵고 잘생긴 복숭아 10개가 담겨 있었다.

놋점마을 사람들
서철, 최금란, 최정희, 정춘자 씨
홍분남, 김옥석, 장석희 할머니
이춘자 씨
이용식 씨

놋점마을 사람들
말복을 지났지만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오후 3시경 마을회관은 시원했다.

방안에서 쉬고 계시다 기자를 만난 김숙자(87)·강옥희(84)·이춘자(69) 할머니는 “어디서 오셨냐?” 묻고는 “여기가 천당”이라며 경로당을 자랑했다. 거실에서는 최정희, 정춘자, 홍분남, 김옥석, 장석희 씨 등 대여섯이 둘러 앉아 민화투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강원도에서 놋점으로 온지 51년 됐다는 금동희(76) 노인회장은 “지금 복숭아 출하기라 한창 바쁘다”며 “마을 전체가 복숭아농사로 전에 비해 소득이 높아졌다. 지금은 30여호가 사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이이자(64) 부녀회장은 “우리 마을은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경로효친’ 으뜸마을”이라며 “설날은 합동 세배를 하고, 어버이날은 물론 철마다 효(孝) 잔치를 한다. 특히 마을에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 중 자식이 없는 분들에 대해 해마다 10월 신위를 모시고 합동제사를 올린다. 노인회장, 이장이 헌관이 되고, 모두 모여 음복을 한다”고 말했다.

봉화 물야가 고향인 권영순(84) 할머니는 “16살에 놋점 파평윤씨家로 시집와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60여년 살았다”며 “예전에는 모두 먹고 살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살기 좋은 나라가 됐다. 1남 4녀를 두었는데 딸들이 잘 한다”고 자랑했다.

봉현 한천이 고향인 남옥남(78) 씨는 “지금 복숭아 따는 작업으로 바쁘지만 한낮에는 무더위 쉼터에서 쉰다”며 “놋점은 사과, 복숭아, 자두를 많이 생산하는 과수원마을”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5년 전 귀촌한 서철·최금란 부부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귀촌하게 되어 행운”이라며 “특히 잠이 편해 날로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에서 8살 때 놋점에 왔다는 이용식(76) 씨는 “이곳에 본격적으로 복숭아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10년쯤 된 것 같다”며 “잘 하면 1마지기에 2천만원 정도 수익을 올린다”고 했다.

이흥제 이장
금동희 노인회장
이이자 부녀회장
강신국 어르신
김철수 어르신
김숙자 어르신
권영순 할머니
강옥희 할머니
오영자 할머니
남옥남 씨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영주시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