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소수서원 향사례의 집사분정

매년 음력 3월, 9월의 초정일(初丁日)은 전국 대부분 서원의 향사일이다. 대부분의 유교의례가 그렇듯 서원의 향사도 시대 흐름을 비껴갈 수는 없는가보다. 

대개 서원의 경우 한밤중 축시(丑時,새벽 1시˜3시)에 올리던 향사를 지금은 아침 10시 혹은 11시로 변경해 제향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2박 3일에 걸치던 향사 기간도 1박 2일, 또는 당일치기가 되고 말았다. 

이는 시간적 구속이 강한 현대인들을 위한 배려로 볼 수 있겠다. 또 지금까지 비공개로 거행되던 의식을 지금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참관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추세이며, 더구나 그동안 엄격히 금지되었던 여성의 사당참배를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외관뿐만 아니라 내용면에 있어서도 변화의 기미는 뚜렷하다. 

석미례(淅米禮,아홉 번 일어 쌀 씻기)의 경우 강이나 개울에 나가서 거행하던 것을 지금은 수돗가에서 그냥 씻고 만다. 제물에 대한 신성성(神聖性)을 부여하기가 조금 어렵게 된 셈이다. 

시생(豕牲)이라는 돼지 도축도 원래는 살아있는 돼지를 메고 와서 직접 도축하던 것이 지금은 그 행위가 불법도축에 해당한단다. 그래서 내장 등을 제관들의 야화상(夜話床, 밤참)으로 사용하던 풍습도 바뀔 수밖에 없어졌다. 

이처럼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절차와 내용이 많이 변화(간소화)되었다. 그것은 도산, 소수, 도동, 옥산, 병산서원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또한 변화라는 이름으로 변질되어 가는 향사례에 대한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고 한다.

향사례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취사제도(取士制度, 제관추천제)의 경우에도 지금 원형이 보존된 서원이 거의 없다. 

보통은 향내(鄕內)에서 추천을 받은 뒤 공사원(公事員)들의 투표에 의해 선정했다지만, 지금은 추천자체가 아예 사라졌다. 

유교적 가치가 공고했던 시대와는 달리, 일부 유림행사로 치부된 지금의 행사에 손들고 나서는 이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의식의 간소화가 그 질을 전락시키는 장치가 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는 이야기가 많이 흘러나온다.

조선 초기 제사[祀典]는 주로 관에서 주도했다. 그러다보니 백성의 교화를 기치로 내걸고 출발한 서원도 나중에는 교화 보다는 향사 기능만 커지는 기이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서원의 향사로 하여금 한 지역의 문화영웅을 옹립시키려는 욕망으로 변질되기 시작하면서, 향사의 제관 선정에 명망 있는 외부인사 모시기에 기를 쓰는 모습들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점이 관인 양성학교의 성격을 고수한 중국의 서원과도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서원의 본래 취지는 학문연구와 선현제향이다. 서원의 기원은 당나라 말기부터 찾을 수 있지만, 송대 이후 크게 발달하였다. 특히 주자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이후 크게 성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나라에서는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 말 유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는 회헌사(晦軒祠)를 세웠다가, 1543년 교육 기능을 추가하여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으로 승격시켰고, 뒤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滉)의 요청으로 명종(明宗)이 「紹修書院」이라는 친필 편액을 내림으로써 1550년 사액서원(賜額書院)의 효시가 되었다. 

퇴계(退溪) 이황은 그 뒤에도 예안에 역동서원(易東書院) 설립을 주도하는 등, 10여 곳 서원 건립에 참여하거나 서원기(書院記)를 보내 보급을 주도하였다. 이에, 초창기 19개소였던 서원은 선조 당대에 이미 60여개소를 넘겼으며, 그 중 22개소에 사액이 내려졌다. 

숙종 때에는 사액서원만 무려 131개소로 집계된다. 정조 때에는 서원이 모두 417개소에 이르렀으며, 여기에다 사우(祠宇)가 또한 492개소에 달하였다. 합하면 거의 1000개소에 이른다는 말이다. 그중의 절반은 경상도 땅에 있었다고 한다.

이에, 서원을 붕당(朋黨)의 근거지로 판단한 흥선대원군은 선비, 유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서원철폐령을 감행하여, 전국 47개소만 남기고 모든 서원을 훼철하였다. 

47개 서원은, 북한 지역의 11개, 6·25때 소실된 2개소를 제외한 34개소가 현재 남한에 존속하고 있다. 

이들 34개소 중 경상도의 14개소는 대부분은 도학(道學)서원인데 비해, 경기도의 12개 서원은 대부분 충절(忠節)서원이어서 대조된다. 

이들 서원은 대부분 보존이 양호한 상태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본래의 기능을 모두 회복한 건 아니지만, 오늘날 전통문화보존의 중심체로서의 서원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강학활동은 중단되었다지만 제향기능(祭享機能)만으로도 훌륭한 교육적 의미를 갖춘 것으로 평가되며, 엄격한 의례절차를 갖춘 춘추향사(春秋享祀)가 청소년들에게 바람직한 인성교육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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