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범선(소설가.본지 논설위원)

▶낙산사 가는 길.
2004년 5월 16일, 오전 8시 10분.
 '안녕하십니까? 3호 차 도우미 황재일 입니다. 지난 번 1차 화엄 도량 해인사를 탐방할 때는 버스 2대에 시민 82명이 갔으나 이번 2차 화엄 도량 낙산사 탐방에는 많은 시민들이 참가를 신청

▲ 낙산사 가는길
했습니다. 경쟁이 치열했지요. 그래서 축제조직위원회에서 차량 한 대를 더 늘려 버스 3대에 123명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낙산사 해수관음전 앞에서 부석사 화엄축제 홍보를 위한 특별 공연이 기획되어 있습니다.'  

버스가 안정 비행장 활주로로 접어들자 3호 차 인솔자 님이 마이크를 잡고 설명을 하신다. 지난번 해인사 탐방이 무척 인기가 높아 이번 낙산사 탐방에서 많은 시민들의 요청으로 버스 한 대를 더 늘렸다는 말씀이다. 이번 기행에는 낯익은 모습들이 많이 참석 하셨다.

문협 관계자와 문우들, 문화재 안내 자원 봉사자들, 예술 단체 회원들, 기타 봉사 단체 소속 회원들이 많이 참석하신 것 같았다. 버스가 중앙 고속도로 접어들자 같이 동행을 한 김 고문이 낙산사까지는 4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필자는 한번도 승용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려 보지 못했다. 고작해야 국도로 안동까지, 북쪽으로는 죽령를 넘어 단양이 몇 번이다. 고속도로를 어떻게 가야 하는 지를 잘 모른다. 어떤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지인들이 놀려댔다.

▲ 관광객들에게 공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조재현씨

영동고속도로 타고 평창을 지나가자 요즘 유행하는 펜션 주택이 즐비하다. 정말 도로 하나는 끝내 준다. 이렇게 도로를 잘 만든 걸 보니 우리나라가 부자인 것 같다고 했더니 동행한 분이 어떤 통계에 의하면 OECD 국가 중 도로 사정이 제일 좋다고 한다.

남북이 아닌 동서 고속도로는 문경에서 영덕으로 가는 도로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동서 고속도로가 내륙에서 우리 고장 영주로 왔더라면 뭐가 좀 되겠는데 말이다.

최치원이 쓴 '법장화상전' 에 의하며 화엄 10찰은 태백산 부석사, 달성에 미리사, 지리산 화엄사, 가야산 해인사와 보광사, 상왕산 보원사, 계룡산 갑사, 금정산 범어사, 우산 국신사, 부아산 청담사로 기록하고 있다.

낙산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 사찰( 강화 보문사,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중 하나로 관음 사찰의 대명사이다. 관세음보살이 머무르는 산을 보타 낙가산이라고 하는데 낙산사는 낙가산의 줄인 말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낙산사를 탐방지로 선정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의상 대사는 화엄의 대가이시다. 화엄에서의 주불은 비로자나불이지만 그분의 스승은 관세음보살이었다. 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얼마나 신앙하였는가는 '백화도량발원문' 에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낙산사는 의상대사가 바닷가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곳으로 유명하다. 바로 해수관음상이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버스는 조계종 3교구 오봉산 낙산사에 도착한다.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에 의상 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도착 12시 25분)
  
▶해수관음상 앞 특별 무대
 

▲ 고르북 예술단의 공연모습

점심 공양을 마치고 낙산사 고경 스님 안내로 해수관음상으로 올라갔다. 해수관음상은 낙산사 5봉 가운데 하나인 신선봉 정상에 모셔진 관음상이며 감로수 병을 받쳐 든 형상으로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모습이다. 이번 낙산사 탐방에는 부석사 화엄축제 홍보를 위한 특별 공연이 기획되어 있다. 관음상 앞에 특별 무대가 만들어졌다.

부석사 화엄축제 현수막이 걸리고 탐방에 참석한 일행들이 관광 온 외지인을 상대로 화엄 축제 안내 홍보물을 나눠주며 선전에 열을 올린다. 축제조직위원회 소속 조재현 님이 오늘 낙산사 해수관음전 앞에서 이렇게 특별 공연을 가지게 된 경위를 관람자들에게 설명하였다.

이어서 남자 셋, 여자 두 명으로 구성된 '고르북 춤단' 의 특별 공연이 시작되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영주 시민 123명은 우리 시를 대표하여 부석사 화엄 축제 홍보를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고르북 춤단' 은 어제 북경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바로 귀국하여 이 공연을 하게 되었다고 단장이 말한다.

▲ 고르예술단의 북울림
 '쿵닥 쿵닥 다다닥..' 누군가 북소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와 같다고 말한다. 힘찬 북소리, 강약의 조화, 큰 동작들, 과연 한국의 춤사위는 세계를 놀라게 하고도 남는다. 공연 팀과 관람객들이 어우러져 춤판이 벌어졌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에릭 딕션이라는 아가씨가 신명이 나 춤판에 뛰어 들자 동행한 샤논이라는 아가씨와 닉이라는 청년이 합세를 한다. ' 영주 부석사 화엄 축제에 오세요.'

▶보타전
보타전에는 7관음상과 32관음응신상, 그리고 백두산 홍송(紅松)으로 조성된 1천 5백 관음상이 봉안되어 있다. 보타전 구경을 마치고 경내에서 쉬고 있는데 같이 동행을 한 아내가 옷소매를 잡아당긴다. 대낮부터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저길 보라고 속삭인다. 보타전 축대 앞에 고경 스님이 난처한 표정으로 법당 보살님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다.

▲ 캐나다에서 왔다는 에릭 딕션
보타전에 상주하는 보살님이 스님에게 큰 소리로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조르르 달려가서 '스님, 주지 스님이 찾아요' 했더니 몹시 불편한 기색으로 내려왔다. 보타전 보살님이 관람객들에게 무리한 불사를 권하자 스님이 편치 않으신 모양이다. 기독교 집안에서 출가한 스님에게 부처님 설법 중에 어떤 경이 가장 마음에 드시느냐 물었더니 천수경이라고 한다. 나도 한번 봐야지.

▶홍련암
고경 스님 안내로 홍련암으로 갔다. 암자 마루 바닥에 담배 갑 크기보다 조금 큰 구멍이 있는데 들여다보면 바다와 부처님이 보인다고 한다. 많은 관람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마루 바닥 구멍 보기가 부처님 보기보다도 더 힘이 든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왔더니 어떤 보살님이 조재현 님에게 마루 바닥 구멍으로 바다를 봤

▲ 답사단을 대상으로 설명중인 고경스님
는데 부처님이 보이지 않더라고 불평을 한다. 조재현 님 대답 ' 홍련암 부처님 전에 엉덩이를 거꾸로 쳐들고 보니 보이겠어요?'


▶원통보전
낙산사 중심 법당에는 동양 최고의 지불(紙佛)로 유명한 관음상이 봉안되어 있다. 후불 탱화로는 아미타극락회도가 걸려 있다. 원통보전을 나와 건물 뒤로 가니 오공환 편집국장이 벽화를 보고 있다. 뒷면 벽화에는 이런 시가 써 있었다.

' 꿈에서 깨어나라 
  
 젊은 얼굴, 예쁜 얼굴

▲ 우리일행을 반갑게 맞아준 낙산사 고경스님

 아름다운 몸은 풀잎에 이슬 같고
 강한 용맹은 한갓 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와 같네.
 잠에서 깨어나서 깊은 잠 깨어나서
 바라본 세상은 왜 이리 밝은가.'

▶ 화엄 사찰 탐방기를 마치고
영주시와 부석사가 주최하고 화엄축제조직위원회와 영주시민신문이 주관한 화엄사찰 탐방에 참석할 기회를 얻어 좋은 구경을 많이 하였다. 평소 여행을 할 기회가 적었던 필자에게 이번 탐방은 좋은 경험이었다. 재직 시절에 필자는 안동 하회탈 복원에 참여한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안동 시민 몇 분이 모여 하회탈의 원형을 복원하자는 데 의기투합하여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회탈 원형 복원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많은 노력을 했다. 지금은 하회 탈춤이 국제 페스티벌로 거국적인 행사가 되었다. 그리고 하회는 영국 여왕까지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처음에는 하회 탈 원형 복원을 위한 시민 몇 분들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 의상대에서 설명중인 고경스님
우리 지역은 유. 불 문화권의 중심지에 있다. 신라 문무왕 9년(669)에 당에서 귀국한 의상대사가 소백산 영지봉, 하추봉에 거주하며 영전사를 창건하고 주석 3년에 부석사를 지으셨다(경상북도 도보 제4519호 참조) 그리고 대사께서는 702년 9월23일 부석사에서 78세로 입적  하셨다. 소위 해동 화엄종의 창시자이며 원교 국사인 대사께서는 당에서 귀국하여 소백산으로 바로 오셨고 부석사에서 열반하셨으며 그동안 화엄 10찰을 창건하셨다.

 우리 지역은 불교문화의 화려 장엄의 극치를 이룬 곳이다. 백두대간의 소백산을 중심으로 해동 화엄종의 발생지이며 유교 문화권의 중심지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시민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소위 조상님들이 금방망이를 물려주셨는데 구리 방망이로 생각하며 살았다. 인접 시가 하회탈을 복원하여 국제적인 행사로 육성할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평범한 시민에 불과한 필자 같은 소시민이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 10찰 중 겨우 화엄사상과 관련된 2찰을 탐방하고 이런 생각이 들 진데, 보다 유능한 우리 시민들이 더 많이 참석했더라면 어떤 아이템들이 나왔을까? 보다 많은 시민들이 이런 행사에 참여하여 견문을 넓히고 우리 지역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도록 우리 시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해동 화엄종의 발생지인 부석사 화엄 축제가 국제적인 행사가 되면 왜, 안 되는가? 부석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을 받으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 단체사진
여기 우리 시가 2000년12월30일에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영주백년사' 의 첫 페이지를 보자,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보수공사(1916-1919)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일제의 강점과 탄압 속에서도 우리 조상들은 해동 화엄종의 발생지인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보수공사를 하는 피땀어린 애착을 보여 왔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무엇을 했는가?

필자가 이번에 탐방한 가야산 해인사와 오봉산 낙산사의 본당은 모두 소실되어 새로 창건한 건물들이었다. 이래도 우리 지역의 불교 문화재가 금방망이가 아니란 말인가? 인접 시는 탈춤 하나로 금방망이를 만들어 '밥 나와라 뚝딱' 하는데 우리는 뭘 했는가?

우리 시가 앞장서서 민의를 모으고 대학은 보다 폭 넓은 연구를 하며 지역 언론들이 열심히 홍보하고 시민들이 합심하면 조상님들이 물려준 보물들을 금방망이로 만들 수가 있지 않을 까.
 
  ▶화엄 사찰 탐방 참가 인원
*. 1차 가야산 해인사 : 2004년 5월 9일. 출발 오전 8시20분, 영주 도착 오후 7시20분
                    참가 시민 : 70명
                   1호 차 인솔자 : 조재현 님(화엄축제조직위)
                   2호 차 인솔자 : 황재일 님(화엄축제조직위)
                   주관 동행 :  오공환 님(영주시민신문 편집국장)
                  
*. 2차 오봉산 낙산사 : 2004년 5월 16일, 출발 오전 8시 10분, 영주 도착 오후 8시5분
                    참가 시민 : 129명                  
                    1호 차 인솔자 : 조재현 님(화엄축제조직위)
                    2호 차 인솔자 : 윤옥식 님( 화엄축제조직위)        
                    3호 차 인솔자 : 황재일 님(화엄축제조직위)
                    사진 촬영 :  이복현 님(영주사협 사무국장)
                    주관 동행 :  오공환 님(영주시민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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