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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칼럼] 사라진 복조리김영애(수필가. 시조시인. 본지논설위원)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3.07 13:04
  • 호수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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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날 아침 찰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럼 깨기를 하지 않았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올해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자란 후에는 부럼 깨기를 하지 않았으니 벌써 몇 년째 부럼을 깨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우리 집에서만 그러할까? 이제 부럼 깨기는 옛날이야기 같아져서 보름날 아침에 깨는가, 전날 저녁에 깨는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었고 찰밥은 또 언제하고 언제 먹느냐가 논쟁거리가 될 정도로 우리의 풍속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희미해져가는 세시풍속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니 지금까지 전해오는 세시풍속이 별로 없다는 말이 맞으며 세배와 윷놀이 오곡밥 먹기 이외의 풍속은 매체를 통해 시청하고 있는 정도가 되었다.

우리의 세시풍속은 철마다 있지만 일 년 중 가장 조용한 겨울철에 많이 있다. 동지, 설날, 보름이 겨울철에 속해 있으며 또 농한기라 이 시기에 여러 가지 풍속도 많이 생겨서 전해 왔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몇몇 풍속이 대체로 겨울철 풍속이다. 그러나 이것마저 희미해 져 가기는 마찬가지다. 농한기를 맞아 모처럼 조용해지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연을 겨울 하늘에 높이 날리는 일, 깡통에 불을 담아 논둑을 태우던 쥐불놀이 같은 것이 이제는 사라져가는 풍속으로 가물가물한 추억 같은 것이 되었다.

이미 완전히 사라진 풍속도 많다. 그 중에 ‘복조리’가 있다. 복조리는 쌀과 돌을 구분해내는 도구로 옛날의 가정에서는 필수품이었다. 모양새가 뜰 수 있게 되어서 복은 건져 올리고 악은 빠뜨린다는 속설이 있어 복조리를 걸어두면 일 년 내내 복이 올 것이라 믿었고 정월 초하룻날은 일 년 치 복조리를 사는 풍습이 있었다. 초하룻날 복조리 사라고 외치며 조리 장사들이 등에 조리를 메고 골목을 다니던 모습이 영화 속 장면처럼 아련하다.

정월 초하루에 복조리가 배달되는 모습도 세월 따라 변해 갔다. 장사들이 조리를 팔던 시대가 끝나고 설날 새벽에 “복조리요!”하고 골목을 뛰어다니면서 담 너머로 조리를 휙휙 던지면서 복조리를 배달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전자의 장사가 생업을 위한 전문 장사라면 이들은 아마추어 용돈벌이 청년들이었다.

이때 복조리 돌리기는 고등학생들의 전유물이 되었는데 그믐날 밤에 집집을 돌면서 담장위에나 대문에 걸어놓고 가기도 했다. 설날 아침에 마당에 나가면 주문하지도 않은 조리가 있었다. 어떤 해는 복조리가 서너 쌍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시대적으로 방법은 달라도 떡국 상을 물리고 나면 어김없이 조리 값을 받으러 오는 건 똑 같았다. 조리 값이 공정가격이 아니고 알아서 주는 대로 받겠다는 것이어서 돈을 건네기가 여간 난처한 게 아니었다.

복을 담는 복조리라 하니 값을 적게 칠 수도 없고 복을 담는 다는 걸 안사겠다고 할 수도 없어서 값을 두고 은근히 밀고 당기는 묘한 기류가 돌기도 했다. 그래도 그들이 정월 초하룻날 친지 외에 찾아 온 첫 손님이니 나름대로 후하게 값을 쳐 보내면서 서로 간에 한바탕 웃음이 일기도 했다. 복을 담는다니 마당에 조리가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게 더 기분 좋은 설날이었다. 

그러다가 초등학생들이 짝을 지어 설날 낮에 ‘복조리 사요’ 하며 찾아와 귀여운 장사를 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설날아침이 되어도 전혀 복조리가 없게 되었다. 적어도 삼사십년은 된 것 같다. 따라서 대문의 입춘첩과 나란히 걸리거나 부엌문, 시렁 위에 복조리가 걸려있던 우리네 풍경도 없어졌다.

생각해 보면 조리가 배달되는 모습도 변해갔지만 조리도 세월 따라 변해 갔다. 산죽으로 투박하게 만들다가 대량화가 되면서 철로, 플라스틱으로 이어지면서 크기와 모양과 재질의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다. 조리의 재료인 산죽의 재배가 줄어들고 무엇보다 우리의 도정기술이 발달하여 돌 없는 쌀이 제공되면서 돌을 이는 조리가 존재이유가 없어진 때문이기도 하겠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의 부엌에 투박하고 정겨운 대나무 복조리는 없어졌고 복조리를 집집마다 돌리던 풍속이나 복조리 값을 놓고 밀고 당기는 설날 한 때의 기분 좋은 실랑이도 사라졌다. 머지않아 복조리를 만드는 산죽(山竹)도, 기능도, 손길마저도 없어질 테니 풍속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말을 절감한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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