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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고치령(古峙嶺) 아래 첫 마을 ‘연화동(蓮花洞)’우리마을탐방[236] 단산면 좌석리 ‘연화동(蓮花洞)’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2.28 11:07
  • 호수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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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에서 유래한 마을 연화동
고요한 산수에 안개와 노을이 고운 연하동(煙霞洞)

연화동 전경
100년 고가(최연수家)

연화동 가는 길
연화동은 백두대간 소백산 구역 첫 마을로 고치령(古峙嶺) 남쪽에 있다. 단산면 옥대삼거리에서 고치령 방향(영단로)으로 향한다. 금대-모산-단산저수지를 지나면 좌석에 이른다. 좌석삼거리에서 우측 고치령 방향으로 1km 가량 올라가면 연화동으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좌회전하여 개울가 숲길을 따라 500m쯤 들어가면 ‘삼락정사’ 표지석이 보이고, 300여m 더 올라가면 ‘연화동천(蓮花洞天)’ 마을표석이 나타난다. 지난 10일 좌석에 사는 김태진 씨 안내로 연화동에 가서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정산선생문집

역사 속의 연화동
백두대간 고치령·마구령 지역에 있는 단산면·부석면은 삼국시대 때 고구려의 이벌지현(伊伐支縣)에 속했다. 통일신라 때 인풍현(隣豊縣)으로 고쳐 급산군(옛 순흥)에 예속시켰다. 인풍현은 조선 초(1413년) 행정구역 정비 때 순흥도호부 1부석면(단산), 2부석면(용암), 3부석면(소천)으로 분할 개편되었는데 연화동은 1부석면(一浮石面) 좌석리(坐席里)에 속했다.

조선말 1896년(고종33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순흥부가 순흥군으로 격하되고, 1부석면이 단산면(丹山面)으로 개칭되면서 연화동은 순흥군 단산면 삼거리(三巨里)에 편입됐다. 그 후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개편 때 영주군 단산면 좌석리(鳥作里+三巨里+坐席里)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명유래
‘연화동’에 대한 최초의 문헌기록은 정산(貞山) 김동진(金東鎭,1866-1952,선성김) 선생의 문집 속 연화동팔영(蓮華洞八詠)에 ‘연화동’이 나온다. 1984년에 출간된 경북지명유래총람(경북교위)에 「연애골(蓮愛谷)·연화동(蓮花洞)은 좌석리 북서쪽 깊숙한 골짜기에 위치한다. 이곳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묘터에서 유래하여 연화동이 됐다. 이곳 지형이 마치 연못에 뜬 연꽃과 같다하여 얻은 지명이다」고 기록했다.

또 2010년에 발간된 영주시사(榮州市史)에 「연화부수에서 유래하여 연화동이 됐다」고 기록했다. 마을 가운데 1995년 5월에 세운 마을표석에 「연화동천(蓮花洞天) 향우회(鄕友會) 乙亥 五月」이라 쓰고, 그 아래 심상호(沈相昊) 외 39명의 이름을 새겼다. 동천(洞天)이란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신선이 사는 마을’이란 뜻이다. 마을 원로들에 의하면 “조선말 경주최씨 문중이 명당자리를 수소문하던 중 ‘연화부수형’ 명당을 발견하고 여기에 묘를 쓰니 후손이 크게 번성했다”면서 “영주 초대 최석홍(崔錫洪,1909-?) 국회의원이 연화부수 후손”이라고 말했다.

마을의 형성
이 마을 한영수(83) 어르신은 “선대는 원래 황해도 곡산에 살았는데 당시 ‘풍기로 가야 산다’는 풍문이 떠돌자 증조부님께서 1890년대 후반(정감록파 1진) 십승지를 찾아 풍기 용천동에 정착하셨다가 얼마 후 연화동에 입향하셨다는 이야기를 선친께 들었다”고 말했다.

연화동 출신 정운교(61) 씨는 “저의 선대는 경기도에 살았는데 증조부께서 정감록 예언을 믿고 병화불입지지(兵火不入之地, 난리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땅)를 찾아 연화동에 오셨다”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족보상 생몰년대로 볼 때 1890년대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위 두 가문의 입향 내력으로 볼 때 1890년대 후반 정감록파에 의해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정산(貞山) 선생의 연화동팔영
정산 김동진 선생은 구한말 영주를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독립운동의 선구자이다. 일제 때 한적하고 산수 수려한 연화동에 영남의 선비들이 모여 시를 지어 읊고 산채밥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오고 있다. 정산문집에 실린 연화동팔영(蓮華洞八詠) 중 ‘연하동’ 시를 소개한다.

연화동 서폭포
연화동 동폭포

연하동(煙霞洞) 「蓮華峯下兩三家(연하봉하양삼가), 연화봉 아래 두 세집이/翠壁屛環碧澗涯(취벽병환벽간애), 산골 물가에 푸른 병풍 둘렀네/爲說濂翁猶未敢(위설염옹유미감), 염옹이 즐기는 것 같지는 않으나/洞門不妨換煙霞(동문불방환연하), 고을 거리에 연하가 해롭지 않구나」 정산 선생의 팔영에는 연하동 외 가성간(加省澗), 성심대(性心臺), 상반암(上盤巖), 하반암(下盤巖), 동폭포(東瀑布), 서폭포(西瀑布) 등이 실려 있다. 이 마을 출신 한상덕(57)씨는 “예전에 김 학사(정산 김동진)와 영남의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지은 시를 애련당(愛蓮堂) 정자에 걸어놓고 감상하면서 마을사람들과 산채비빔밥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온다”고 말했다.

연화동펜션

아름다운 풍경 속 연화동펜션
연화동천 표석 앞에서 100여m 더 올라가면 연화동펜션(대표 황우성)이 보인다. 소백산 국립공원 백두대간에 위치한 연화동펜션은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아름다운 경관으로운무와 별무리를 감상 할 수 있다. 자연을 지극히도 아끼고 사랑하는 황우성(65)씨가 20여 년간 가꾼 9만여 평의 숲과 계곡 그리고 연화동펜션은 소백산이 간직한 보물로 각광받고 있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하수 같다는 연화동폭포. 장쾌하게 쏟아지는 폭포와 마주하면 가슴이 뻥 뚫어지는 시원함을 느낀다”며 “폭포샤워, 산림욕, 물놀이, 송이따기, 산나물캐기 등 계절별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연화동펜션 010-4533-4488]

삼락정사(三樂精舍)
산내들와이너리

삼락정사(三樂精舍)
지난 12일 오전 삼락정사에서 김기진(73) 시인을 만났다. 그는 “복바위 초가집에 공부방을 마련한지 33년 됐다”고 했다. 삼락(三樂)이란 ‘의식주가 풍부한 것’이라는 김 시인 책상 옆에는 논어(論語)를 필사한 두루마리 한지가 가슴 높이 만큼 쌓였다. 불교공부에 심취한 김 시인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은인은 김대호 전 단산면장님”이라며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다 몇 번이나 울컥했다. 그래서 김 시인의 삼락은 군자의 삼락과 다르다.

아름다운 연화동의 자연 풍광을 혼자보기 아까워 황토펜션을 지었다는 김 시인은 “이곳은 원시 그대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며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눈과 귀를 씻고 마음을 맑게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황토펜션 서편에는 김 시인과 부인 강금자(66) 씨가 정성을 다해 만드는 ‘산내들와이너리’가 있다. 시음장 입구에 「한국와인협회 선정 한국와인 대상」이라고 새긴 현판이 붙어 있다.

부인 강 씨는 “영주서는 알아주는 사람이 드물지만 서울·부산 등 와인 전문매장에선 인기가 짱”이라며 “해발 600m 고지에서 생산된 포도에다 프랑스 정통양조기법으로 빚은 와인을 소비자들이 알아준다”고 말했다. 1층 양조실에는 30여개 스텐용기에 수만 병분 와인이 숙성되고 있고, 2층 시음장엔 산내들와신 수백 병이 진열돼 있다.[산내들와이너리 010-6479-2434]

죽통폭포

연화동 사람들
연화동펜션으로 들어가는 입새에 김상호(71)·전택근(70)씨 부부가 산다. 서울에 살다 퇴직하고 2000년 연화동으로 귀촌했다는 김씨 부부는 산지를 개발해 3천여 평 과수원을 조성, 성공한 귀촌 사례로 손꼽는다. 김씨 부부는 “이곳에 오긴 했으나 집을 지을 터가 없어 ‘떠날까?…?’ 망설이고 있을 때 황우성 사장님께서 ‘살기위해 왔다가 그냥가면 체면이 아니지’라며 땅 57평을 증여해 주셔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며 무한한 감사의 뜻을 표했다.

펜션 북편 언덕 위에 이분기(85) 할머니가 산다. 벽에 팔순잔치 때 팔남매와 기념 촬영한 사진이 걸려 있다. 이 할머니는 “봉화 문단에 살았는데 ‘심덕 좋은 신랑감이 있다’고 친척이 중매를 해 여기로 시집 온지 65년이 됐다”며 “펜션 황 사장님이 자주 와서 안부를 묻기도 하고, 명절마다 과분한 선물을 챙겨주시니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펜션 서편에서 김옥분(82) 할머니와 정성규(55)씨를 만났다.

김 할머니는 “6.25 이후 연화동에 최고 34가구까지 살았다”며 “귀틀집에 새강(억새)을 엮어 지붕을 덮고 살았다”고 말했다. 장성규 씨는 서폭포를 안내해 주면서 “예전에 웃연화동에도 사람이 살았는데 6.25 전(1948) 소개령 때 아래로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부친께 들었다”며 “연화동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했는데 6.25 후 모두 벌채돼 아쉽다”고 했다. 동폭포에 갔다 내려오는 길에 김형옥(76) 할머니 댁에 들렸다.

김 할머니는 “양평이 고향인데 풍기 직물공장에서 일하려고 좌석 이모집에 왔다가 17살 때 연화동으로 시집왔다”면서 “산전을 일구어 감자, 좁쌀, 옥수수로 연명하며 살았다”고 말했다. 황우성 사장은 “김기진 시인과 여러분들이 추진 중인 마을 진입 도로가 조기에 완성되기를 기대하며, 동폭포와 서푹포, 죽통폭포까지 도로가 이어지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분기 할머니
한영수 어르신
김옥분 할머니
김형옥 할머니
김기진 시인
김상호 씨
전택근 씨
강금자 씨
한상덕 씨
정성규 씨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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