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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 확대경[185] 인류무형문화유산을 걸고 남북이 씨름하다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9.01.31 10:00
  • 호수 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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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김홍도의 풍속화첩)

2018년 11월 26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위원회가 제13차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를 열고, 참석한 24개 위원국 만장일치로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남한과 북한 공동으로 등재할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씨름」의 정식 등재 명칭은 『한국의 전통 레슬링, 씨름(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이다. 한국은 2016년 3월, 「씨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이보다 1년 앞선 2015년 3월에 북한도 신청서를 제출했었다. 이로써 한국의 전통민속놀이 「씨름」이 남북 공동 유산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당초 「씨름」은 남북이 각각으로 등재를 신청하였다. 같은 「씨름」을 두고 남북이 서로 샅바를 잡고 씨름한 셈이다. 그러나 그 연행과 전승 양상,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의미가 모두 공통된 것으로 판정한 유네스코라는 심판이 남북의 손을 모두 들어준 것이다.

「씨름」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기예의 하나이다. 두 사람이 샅바나 바지의 허리춤을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를 땅바닥에 쓰러뜨리는 운동경기이다. 「씨름」의 어원이 확실하진 않지만, 민속학자 최상수는 영남지방에서는 서로 버티고 힘을 겨루는 것을 ‘씨룬다’고 하므로 「씨름」은 타동사 ‘씨룬다’가 명사화되어 ‘씨룸’이 되고, 이것이 다시 「씨름」이 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아 힘을 겨루는 것을 ‘팔씨름’이라고 하며, 또 서로 말로써 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을 ‘입씨름’이라고 하는 것에서도 이의 근간을 찾을 수 있다. 아무튼 그 뜻은 한결같이 우리 민족 고유의 신체운동으로, 두 사람이 마주잡거나 달려들어 힘을 겨루고 기술을 부려 상대편을 넘어뜨려 승패를 가리는 놀이라는 뜻이다.

순수 국내산 경기인 「씨름」은 온몸을 움직여 힘과 기술을 겨루는 운동이므로, 체력·기술·투지의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요구되는 격렬한 신체운동이다. 때문에 씨름은 신체를 조화롭게 발달시키고 힘을 기르며, 정확한 판단력과 인내심, 균형감각, 안전능력 및 건전한 사회성을 길러주는 체육적인 효과가 있다고 한다. 특히, 씨름은 다른 투기와는 달리 피부와 피부가 직접 닿는 가운데 서로의 체온이 전달되는 스킨십 운동이므로 서로 정이 통하는 우리 민족의 일맥상통(一脈相通)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씨름」의 연유 역시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4세기경으로 추측되는 고구려 고분에 두 사람이 맞붙어서 씨름하는 모습과 심판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씨름」이 문헌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사』이다. 충혜왕 때 왕이 용사들에게 씨름을 시키고 친히 구경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더구나 “왕이 날마다 아랫사람들과 더불어 씨름을 하니 위아래의 예절이 없었다.”고 적은 기록까지 있다.

조선조에는 「씨름」이 대중화된 것으로 보인다. 김홍도(金弘道)의 풍속도에도 「씨름」이 자주 등장했고, 『세종실록』에는 “두 사신이 목멱산(현 남산)에 올라가 씨름을 하다가 한 사람이 죽었으니, 법에 의하면 마땅히 교수형이지만, 형을 한 등급(等級) 감하고 장례비를 감당하게 명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현종실록』에 “광주의 어느 집 종이 같은 동네의 세현이라는 자와 씨름을 하였는데, 진 것을 분하게 여겨 그를 찔러 죽였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씨름」이 민간들 사이에서도 매우 격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금산(현 金泉)의 단오에는 해마다 원근의 많은 사람들이 직지사(直指寺)에 모여 「씨름」을 했는데, 구경하러 모이는 사람들이 수천이나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당시 「씨름」은 이미 민속놀이로 정착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일제 이전까지는 이른바 「씨름꾼」에 대한 사회적 대우는 뭇 남성들의 선망이었다. 장사(壯士)는 무관으로도 바로 출세했다. 「씨름」 우승자에 대한 상품은 전통적으로 황소 한 마리였다.

한편, 고래의 씨름방법은 승자에게 상대할 사람이 없을 때까지 계속하였는데, 마지막 승자는 마치 개선장군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민속씨름은 한민족 고유 민속놀이로 대한씨름협회에서 통괄하고 있지만, 재미주, 재브라질, 재독일, 재아르헨티나, 재중연변조선족자치주 등에도 지부가 결성되어 함께 즐기고 있다. 북한중앙방송도 “건장한 체격과 투지 슬기와 지혜를 키워주며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근면한 노동생활 과정에 창조되고 발전돼 온 씨름이 세계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소식은 온 겨레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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