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골(단산면 좌석리)
돗밤실 표석(이산면 원리)

단산면 좌석리 돼지골의 ‘돼지의 보은’
이산면 원리의 옛 지명 저율곡-돗밤실

기해년(己亥年) 돼지의 해를 맞아 우리고장에도 돼지 관련 지명(地名)이 있는지 찾아봤다.

단산면 좌석리에 ‘돼지골’이 있다기에 좌석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돼지골? 모르는데”라고 했다. 다음지도에 돼지골이 나오기에 구랍 31일 무작정 좌석으로 갔다. 좌석 삼거리에서 상좌석으로 올라가는 길에 70대 할머니 두 분을 만났다. “돼지골이 어디냐?”고 여쭈니 “상좌석 마을 바로 뒷골”이라고 했다.

상좌석에서 만난 이병직(75) 씨는 “돼지골이란 돼지가 많아 돼지골이지”라며 “예전에 돼지를 키우다보면 늑대가 내려와 몰고 가는 게 일쑤였지”라고 했다.

돼지골로 향했다. 마을 꼭대기 귀틀집 앞에서 정원교(65) 씨를 만났다. 돼지골 내력을 물으니 “예전에 골 입구에 서너집 살았고 집집마다 돼지 한두 마리는 먹였다”며 “골 안으로 들어가면 산돼지가 우글우글하고 마을까지 내려오기도 한다”고 했다.

돼지골은 Y자형 계곡 중간에 돼지머리 모양을 한 낮은 봉우리가 있고 골짝 안으로는 나무껍질이 하얀 자작나무가 무성하다. 100여m 올라갔는데 갑자기 산돼지가 나타날 것 같아 내려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여럿모인 좌석마을회관에 가서 ‘돼지골’ 이야기를 들었다.

좌석에 사는 김태진(72) 씨는 “30여 년 전 책이 나온 돼지골 전설”이라며 “예전에 소백산 형제봉 아래 노부부가 살았다. 귀틀집 옆에 돼지우리를 지어 암수 두 마리를 키웠는데 어느 날 아침에 보니 돼지가 없어졌다. 부부는 늑대가 물어간 줄 알고 슬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돼지 두 마리가 집에 내려와 꿀꿀대다 사라졌다. 그해 겨울 부부는 돼지가 먹을 수 있도록 먹이를 마당에 놔두었더니 밤중에 먹고 가곤했다. 눈이 많이 온 어느 겨울 부부는 돼지골에 올라 ‘돼지가 잘 살고 있나?’ 살피던 중 산비탈을 돼지가 휘저어 놓은 흔적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곳에 더덕이 여러 뿌리 있어 다래끼에 주서 담다가 부부는 깜짝 놀란다. 그 중에 산삼 세 뿌리가 섞여 있는 게 아닌가. 부부는 ‘아! 돼지가 준 것이로구나!’라고 생각하며 기뻐했다. 두 부부는 이 산삼을 먹고 오래오래 장수했다는 이야기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눈 마을 어르신들은 “돼지의 보은 이야기 참 재미있다”며 “예전에 그 돼지가 대를 이어 산돼지가 되어 지금까지 돼지골에 살고 있는 것 아냐? 요즘은 피해를 많이 주는데”라며 웃었다.

이산면 원리의 옛 이름은 ‘돗밤실’ 한자로 ‘저율곡(猪栗谷)’이라 썼다.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 영천군(榮川郡) 산이면(山伊面) 저율곡리(猪栗谷里)에서 나온 지명이다.

‘저율’이란 돼지 저(猪)자에 밤나무 율(栗)을 써 ‘돼지+밤=돼지밤’ 즉 꿀밤이다. 예전에 이곳에 꿀밤나무가 많아 저율곡이란 지명을 얻게 됐다. 돼지를 옛말로 “돋-돛-돗-도 등으로 썼는데 이 마을 표석에는 ‘돗밤실’이라 새겼다.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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