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훈(한국폴리텍대학 영주캠퍼스 산업설비과 교수)

뿌리산업이란 주조, 금형, 용접, 열처리 등 산업생산의 기초공정을 담당하는 산업을 말한다. 3D 업종의 대명사요, 청년들의 취업기피 영역이다. 산업체에 종사하는 분들의 평균연령도 높아 머지않아 이들이 산업현장을 떠나고 나면 산업 자체가 없어질 위험에 노출된 산업이다. 영세한 하청중소기업이 대부분이고, 공해업종이라 지역사회에서도 홀대받는 영역이다. 조만간 우리가 포기할 수밖에 없는 분야로 치부되고 있다.그러나 아니다. 뿌리산업은 전통제조업의 토대이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모든 공산품에 내재되어 최종제품의 품질과 성능은 물론 제품자체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모든 첨단제품도 결국 그 바탕에는 뿌리산업의 경쟁력이 자리잡고 있다. 스위스의 손목시계, 독일의 고급자동차, 이탈리아의 핸드백과 같은 세계적 명품들에는 든든한 뿌리산업의 뒷받침이 있다.

뿌리산업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개도국의 기술추격을 물리치는 데에도 유용한 수단이다. 공정의 특성상 암묵지로 체화되어 몸과 손끝으로 느껴야하는 기술이므로 단기간 내에 기술습득이 어렵고 개도국에서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선진국의 마지막 기술영역이다. 기능올림픽에서 메달을 석권했던 우리의 기능공들이 포진해 있는 곳이다. 하청중소기업 형태로 그것도 저임금 노동자들을 다수 고용하고 있어 서민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꼭 필요한 산업이다. 오늘날 자율주행차, 로봇, 바이오, 드론 등의 신산업이 부상하면서 여기에도 뿌리기술이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시간은 뿌리산업에 불리하게 흐르고 있다.

높은 주력산업 의존도로 인해 최근 수요산업과 동반 정체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성장 둔화 등으로 주력산업의 생산 및 수출 증가율이 과거 대비 감소하고 있다. 뿌리산업 역시 2011년 이후 증가세가 둔화하다 최근 감소하고 있다. 뿌리기업의 주력산업 의존률은 74%다.?/p>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청년층이 뿌리산업에 취업을 기피하면서 타 산업 대비 기능 및 기술인력이 가장 부족한 산업으로 전락했다. 단순노무 형태의 외국인 고용자 수가 많아지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이 원인이다.?/p>

열악한 작업 환경도 큰 문제다. 사실상 3D 업종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의 핵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업종 특성에서 알 수 있듯 작업 공정에서 먼지, 악취, 소음 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는 단순히 작업장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민원으로까지 이어진다.?/p>

주춧돌이 흔들리면 집이 위태로워진다. 뿌리산업의 흔들림은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도 문제점을 파악하고 지난 2013년부터 뿌리산업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에도 ‘제2차 뿌리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뿌리산업 재도약을 위한 방안들을 마련하였다.?/p>

핵심 뿌리기술을 전기차, 로봇, 바이오 등 최신 수요산업 트렌드에 맞도록 개정하여,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고부가가치화를 촉진하며 공정 혁신을 위해 작업환경 개선, 스마트화, 에너지 효율화 등을 통해 작업 현장의 자동화 설비를 효율화 시키고 잠재적 일자리를 실재적 일자리로 바꾸는 선순환 일자리 환경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뿌리산업 기업의 유치 및 육성은 시급한 과제인 만큼 관련 조례를 제정해 타 제조업 유치와 차별화된 파격적인 지원을 실시, 기업을 집적화해야 한다. 기업규모의 영세성이나 가난한 근로자들이 대도시에 거주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 뿌리산업에 특화된 맞춤형의 소규모 산업단지나 친환경의 아파트형 공장을 건립하고 친환경 설비구축을 지원해야한다. 여건상 집단화가 어렵다면 기존 집적지에 대한 입지환경 규제를 완화하여 현재의 위치에서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무등록 공장의 제한적인 양성화와 함께 공동폐수처리시설, 공동연구장비의 보급, 시제품제작지원 등의 공공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경북북부지역은 우리나라 뿌리산업과 철도산업의 메카로서 우리 경제와 산업성장을 견인해 왔으며 영주시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들이 하나의 도시권으로서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면 발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와 더불어 뿌리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우수한 전문 기술인력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한다. 각 부처마다 고질적인 인력난을 해소한다며 우수 기술자 양성기관을 세운다느니 대학 커리큘럼을 바꾸겠다느니 하지만 인재를 끌어들일 만한 확실한 유인책을 마련하는게 급선무다. 정부가 지원금을 쏟아 부어 해마다 전문 인력을 배출한다고 해도 근로현장에서 재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면 결국 소용없는 일이다. 정부가 뿌리산업을 일자리의 보고로 만들겠다면 인재들이 몰릴 수 있도록 주변 환경부터 바꾸는 데 주력해야 한다.

도시외곽에 최적의 입지공간을 갖춘 새로운 단지를 만들고 신성장동력으로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뿌리가 없는 첨단산업, 기반이 없는 신성장동력산업으로는 고용창출과 지역경제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산업화 시기를 통해 어렵게 구축해놓은 우리의 강점을 활용해야 한다. 뿌리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있어야만 또 다른 경제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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