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자미 시인

엄마의 런닝구  -배한권

작은 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 만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 한다 한다.
엄마는 새 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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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1987년 경산 부림초등 6학년 학생의 작품인데, 시를 가르치는 분들이나 시를 공부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좋은 시의 예로 들었던 동시이기도 합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시를 쓴 배한권 학생이 궁금해집니다. 지금은 사십대가 되었을 텐데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시는 가족 간의 사랑과 우리시대에 엄마가 그렇듯 검소한 생활과 희생 같은 것을 엿볼 수도 있어 가슴 밑바닥에서 이는 잔잔한 감동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투리를 그대로 살려 쓴 말의 맛이 있습니다. 런닝구가 아마 메리야스나 런닝샤츠였다면 시의 맛이 훨씬 덜 했을 겁니다. 2연의 대지비는 정황상 냉면그릇만한 대접이 아닐까 생각하다가 사전을 찾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대지비는 ‘다래끼’의 방언이라고 합니다. 그럼 다래끼는 뭘까요? 속눈썹의 뿌리에 균이 들어가 눈시울에 생기는 작은 부스럼과 같이 쓰지만 여기선 아가리가 좁고 바닥이 넓은 작은 바구니를 말합니다. 과거 농촌에서 마른 칡 줄기를 엮어 만들었지요. 주로 물건을 보관하거나 옮기는데 쓰였지요. 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 담는 용도로도 쓰였습니다. 잊힌 우리말을 되찾아 쓰는 일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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