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정 할아버지

어머니와 아내 일찍 보내고
자연 벗 삼아 남대리서 생활


나는 1958년 음력으로 7월 15일에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40년 전에 돌아가셔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분명 나의 우상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는 자랑스러운 분이셨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고생이 많으셨던 어머니는 여러 병을 앓으셨는데 그 중에 뇌경색을 앓으셨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여러 병을 앓으시다가 우리 어머니는 결국 47세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 초등 4학년에 남대리로 이사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남대리에 와서 지금까지 쭉 살게 되었다. 학창시절에 나는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축구, 모래자갈 파기 등 밖에서 움직이는 활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건강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체육에 관련 행사에 참여 해 상을 받아오곤 했고, 부석면까지 가서 부대회장 자리를 임명받는 공로패까지 받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유년 시절의 추억은 밀가루로 만든 음식들과 전, 고추장, 밥 등으로 도시락을 싸가서 먹는 것이었다. 우리 시대에는 도시락과 간식은 무척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행복했던 기억은 친구들과 소풍을 가는 것이었다. 계곡이나 도랑으로 가서 물놀이를 하고 친구들끼리 놀면서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작은 추억을 쌓아갈 수 있었던 그런 소풍이었기 때문이다.

▲ 한 때 남대리 떠나 울산서 건설업 종사
남대리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평온하고 좋은 출발이었다. 남대리에 온 후 나는 처음으로 농사라는 것을 배웠고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다. 아내와 결혼을 한 뒤에도 남대리에서 꾸준히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울산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서 건설업에 종사했다.

농사를 짓다가 건설업을 하니 힘든 점이 무엇보다 많아 결국 아내와 나는 3년 만에 다시 남대리로 돌아왔다. 누가 뭐라고 해도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가 가장 편하고 내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에 기분이 좋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힘든 농사일에 지쳤는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아내가 47살에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다. 아내의 죽음으로 나는 허망하고 어찌하면 좋을지 잘 몰랐다. 아내가 내 곁을 떠나고 나서 아내의 빈자리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하니 혼자서 꾸준히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물론 농사가 돈을 잘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먹고 살 돈은 마련할 수 있어서 농사를 꾸준히 지어왔다.

▲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홀로 남은 삶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살았다. 심심할 때면 마을회관에 모여서 이야기꽃도 피우고 사소한 농담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마을회관에 가면 항상 반갑게 맞이해주는 동네 사람들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혼자 살면서 슬픈 것은 내 생일을 나 혼자서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남대리가 워낙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케이크 하나 사러나가기도 힘들다. 나는 아내 없이 혼자 사는 집이 텅 빈 느낌이 들어서 개를 한 마리 키우게 되었다. 아내의 빈자리를 다 채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허전한 느낌이 덜 들것 같았다. 혼자 살아가다 보면 맨날 했던 일을 반복하며 지내거나 오직 티비에 의존해서 살다보니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가족들이 우리 집에 찾아주면 대화 할 사람도 생기고 시끌벅적 한 것이 집이 꽉 찬 것 같아서 좋다. 가족들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좋고, 가족이 최고라는 것을 느끼곤 한다. 내가 사는 남대리는 눈이 많이 내리거나 비가 많이 내릴 때가 많다. 그래서 가족들이 집까지 오기가 힘들 텐데 자주자주 들려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소중하고 고마운 가족들이 나를 찾아주면 최대한 즐겁고 알찬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 남대리에서의 즐거운 삶
허전함을 채우거나 시간을 때우기 위해 나는 낚시를 하기도 한다. 시원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가까운 계곡으로 가서 낚시를 해서 얼큰하고 시원하게 끓인 매운탕을 먹기도 한다. 남대리에 사는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물고기는 밤에 많이 있기 때문에 낮보다는 밤에 미끼를 놓아두고 아침에 보러 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이웃 사람들과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한 잔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즐거운 맛으로 남대리에 사는 것 같다.

요즘은 다리가 다시 말썽을 부리고 있다. 몇 년 전에 포크레인에 부딪힌 다리가 요즘 들어서 더 자주 아프고 쑤신다. 그러나 다리가 자주 아프고 걷는 게 불편할 때도 많지만 힘든 농사를 지으면서 버텨준 나의 다리가 참으로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남대리에서 건강도 챙기고 농사도 지으면서 남은 생을 보낼 것이다. 사람들이 남대리 하면 잘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남대리에서 살아보니 남대리 만큼 좋은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내 뼈를 묻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리: 황채원 전소영 청소년 기자(영주여고 1년)

* 본지는 지역 어르신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은빛 인생’과 함께 10대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꿈을 응원하는 ‘너의 꿈을 응원해’ 라는 코너를 격주로 운영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호응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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