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전 영주교육장, 소백산자락길 위원장)

보호각 설립 이전북지리마애여래좌상의 훼손된 모습

봉화에서 물야 쪽으로 약 4㎞쯤 진행하여 북지분교(폐교)에서 건너다보이는 호골산을 배경으로 지림사(智林寺)라는 명패를 걸고 불사가 한창인 조그만 사찰이 있다.

신라 진덕여왕 시절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지림사는 폐사 후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가 1949년 수월암(水月庵)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암자가 세워져 마애여래좌상을 관리해왔다. 2009년에는 60년 간의 수월암 시절을 접고 원래 이름인 ‘지림사’로 명패를 바꿔달았다.

‘한절’이라는 말은 큰 절이라는 우리말이며, 이 곳에 ‘한절마’라는 마을 이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사찰은 상당한 규모를 갖춘 큰 사찰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사찰 서편에는 봉화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문화유산이 새겨져 있다.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奉化北枝里磨崖如來坐像)』이다.

1947년 6월 수월암 부지정지 중 발견되었다고 하는 이 불상(국보 제201호)은 자연석에 도들새김한 것으로 신체 표현의 부드러운 표현 등으로 미루어 7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벽의 흑운모 화강암이 풍화에 취약해 불상 훼손이 극심한 상태여서 1980년 9월, 국보로 지정한 후 보호각을 설치하여 보존하고는 있으나 지금도 박리현상과 입상분해가 일어나고 변색에 의한 손상도 커 보인다. 흡사 심한 나병을 앓고 있는 환자 모양 같아서 안타깝다.

『북지리마애여래좌상』은 앉은 키만으로도 4m가 넘는 대형 마애불이다. 원래는 자연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 모양의 감실(龕室)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을 1.7m 이상 매우 도드라진 양각으로 거의 조각상에 가깝도록 새겼다. 불상 뒤편의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여,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까지 새기고 있다. 깨지고 닳아버린 세월의 흔적이 역력해 감실의 석벽은 무너졌고, 뒷부분인 광배도 깨어졌으며, 불상도 군데군데 파괴되었지만, 불상의 위용은 여전하다. 위엄스러운 모습과 네모난 넓고 큼직한 얼굴에 흐르는 담담한 미소는 오히려 박진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양쪽 귀는 어깨 위까지 길게 늘어져 있어, 양 눈썹과 눈, 코, 입술 등에 다소 마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에 자비가 넘쳐흐른다. 큰 절의 본존불답게 위엄스럽고 자비스러운 불상미(佛像美)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영주가흥동삼존불좌상(보물 제221호)과 함께 이 시기 영주·봉화 일대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라 불교미술사의 거대한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6세기 초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이래 곳곳에는 수많은 절, 탑이 세워지고 불상들이 조성되었다. 특히 마애불상이 많은 것은 불교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우리조상들은 바위 속에 영험한 신적 존재가 있다고 믿었기에, 그러한 암석신앙과 불교신앙이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우리나라의 마애불 수는 모두 195점으로, 이 가운데 국보가 7점, 보물이 33점이며, 나머지는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북지리마애여래좌상은 전체의 4% 미만에 속하는 우수한 마애불인 셈이다. 즉 석굴암, 남산의 마애석불군, 신선사 마애석불군 등과 나란히 손꼽히는 마애불상군 반열이라는 뜻이다.

또한 “신라 문무왕 13년(673) 의상대사가 이곳 지림사에 유숙하면서 문수산 쪽을 바라보다가 멀리 비치는 서광을 쫓아 그곳에 지금의 축서사를 지었다”는 축서사 창건설화가 전해지는데, 축사사는 부석사보다 3년 먼저 지어진 절이라고 하니, 이곳 지림사는 최소한 부석사, 축서사 보다 더 오래된 사찰로 추측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곳 마애여래좌상 조성이 지림사 창건과 비슷한 시기로 본다면, 이 불상은 대략 1400여 년 전 민초들의 염원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거대 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일반적으로 유명 사찰들이 모두 산중에 깊숙히 위치하는 것과는 달리 지림사는 봉화에서 부석사로 향하는 길목에 나앉아 있어 비교적 접근성도 용이하다. 중생들의 고초를 미리 짐작한 때문일까? 중생을 맞아들이기 위해 미리 산 귀퉁이 나지막한 장소로 내려선 부처의 혜량이 돋보이는 불상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자애로움이 중생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어쩌면 이것 때문에 마애불의 감동이 축소되는 건 아닌지 살짝 두려운 생각마저 일어난다. 얼마쯤 비지땀을 흘려가며 산을 힘들게 오르고서야 만나는 다른 마애불에 비해, 너무 쉽고 가깝게 만나주는 북지리마애여래좌상의 후의를 중생들이 낮추어 볼까 걱정스럽다는 뜻이다.

해질녘 이 불상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의 절정인데…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