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2막으로 웃음 짓는 삶[8] 영주FM 시니어리포터 금동교 씨

2016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전체 82.4년을 산다. 남자는 79.0년, 여자 85.5년이다. 1970년부터 매년 평균수명은 5.5개월씩 늘어나고 있다. 시대는 변화되고 점점 노년의 삶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역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층층시하에 힘겨운 시절 다 이겨내고
여행으로 찾은 즐거움과 이야기 전해


할머니들에게도 꽃 같은 젊은 날이 있었다. 동네친구들과 어울리고 부모의 보호아래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아가던 시절 말이다. 수줍은 새색시 시절도, 작은 아이를 품안에 안고 다니던 시절도, 살아가기 위해 정신없던 날들이 있었다.

금동교(82) 어르신도 그랬다. 여느 어머니들처럼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려면 책 여러 권으로도 부족하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듯이, 금씨 어르신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는 삶을 살아왔다. 젊은 날 자녀를 키우며 가정을 일궜고 노년을 앞두고는 자신만의 삶을 찾아 즐기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달 관내 한 커피숍에서 어르신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들어봤다.

 

▲힘들게 살아온 젊은 날

봉화 상운면이 고향인 어르신은 16세가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가정은 부유했으나 맏딸로 아버지와 동생들을 돌보다보니 결혼시기가 또래보다 늦었다. 23세인 1959년 12월 봉화 내림리(현재 이산면 내림리)로 시집을 갔다. 시조모, 시부모, 시동생들의 층층시하에 아이들까지 4대가 함께 살았다.

“남편이 맏아들이었어요. 막내 시동생이 초등학교 4학년이었죠. 시댁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친정아버지가 선비집안이라고 결혼을 시키신 것 같아요. 시조부께서 글방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제사 때나 명절이면 제자들이 보낸 귀한 생선들이나 물건이 들어왔어요”

어르신이 결혼하기 이전, 암에 걸리셨던 시아버지는 다음해인 5월에 돌아가셨단다. 맏며느리로 시부모님 장례도 치르고 시누이 결혼도 시켰다. 시조모와는 17년을 살았다.

“억울한 소리도 많이 듣고 죽을 마음도 가졌던 적도 여러 번이에요. 거기에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빚쟁이였고요. 직업이 없던 남편이 결혼을 하고 고등학교 행정사무관으로 근무를 시작했는데 빚을 갚느라고 5년여 동안 월급을 구경한 적이 없었죠”

어르신은 힘든 일들을 글로 남겼단다. 이산면에서 종고(현 제일고)까지 출퇴근 하던 남편이 점점 살이 빠지고 몸이 약해지자 시어머니는 결혼 후 2년이 지날 때쯤 시내로 이사를 권했다. 휴천1동에 터를 잡고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고 시누이 결혼에, 학교를 다니는 시동생의 점심을 해주면서 더는 빚을 지기 싫어 아끼고 아꼈다. 그래서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를 여러 번이라고.

“점점 들어갈 돈은 많아지고 집으로 빚쟁이는 수시로 찾아오고 남편 월급은 구경도 못하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요.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빚쟁이들에게 시아버지가 진 빚의 원금을 나눠 갚겠다고 했죠”

다행이도 원금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빚쟁이들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59년부터 64년 4월까지 돈을 갚아나갔다. 생활비는 어르신이 악착같이 이곳저곳에서 일거리를 찾아 삯바느질도 해서 생활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대출로 집을 사서 9식구가 함께 살았다. 그리고 1964년 드디어 결혼 후 처음 남편에게서 월급봉투를 받았다. 6천원이었다.

적극적이고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성격을 알고는 주변에서 보험설계사를 권했다. 잠시 해보자 시작한 일은 높은 실적을 보였다. 성실하게 빚을 갚고 생활력이 강해 일거리를 찾아 나선 어르신에 대한 신뢰로 많은 사람들은 보험을 들어줬다.

“막내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열심히 일해 첫 월급을 3만8천원을 받았어요. 남편보다 많았죠. 그렇게 삼성생명에서 설계사로 21년을 다녔어요. 4,50대를 열정적으로 일했죠”

▲나를 위해 떠나는 여행

어르신은 퇴직하는 남편에게 맞춰 58세에 직장을 나왔다. 열심히 살아온 만큼 함께 남은여생을 즐기기 위해서다. 이때부터 어르신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나는 여행을 좋아해요. 국내는 곳곳을 다녔지만 해외여행은 58세에 처음 떠났죠. 94년도인데 환갑을 맞이한 남편과 함께 15일 동안 중국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때부터 많은 곳을 다녔어요.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았으니 즐겨야죠”

지금까지 어르신은 세계 곳곳을 다녔다. 중국은 5회, 일본 2회, 동남아 전역은 물론이고 북·서유럽, 미 서부와 동부, 15일 동안 대형 크루즈여행도 다녀왔다.

“크루즈여행은 2003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고 혼자 떠난 여행이에요. 한국에서 14명만 갔어요. 미국 배를 탔는데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스웨덴, 에스토니아, 러시아 등에 곳곳을 다녔지요”

어르신은 한복을 입고 크루즈 선장이 해주는 이벤트인 정찬식에 참석해 높게 쌓인 크리스털 잔에 샴페인을 부어보기도 했다. 풍성한 과일과 음식, 좋은 볼거리와 여유롭게 보냈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설레고 들뜬단다.

“그때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기행문을 모두 기록해놨어요. 미국은 사위가 교수가 된 후 초대를 해 뉴욕부터 나이아가라폭포, 미시시피강 등을 여행했어요. 미시시피강을 내려다볼 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해요”

 

▲‘노년의 삶’을 전하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산다”고 말하는 어르신은 영주FM 황금방송국에서 시니어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다. 방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영주시종합사회복지관 부설 은빛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과에 다니고 나서다.

2000년부터 은빛대학교를 다녀 대학원까지 졸업한 어르신은 종합사회복지관에서 방송국에 재학생 4명, 졸업생 3명 추천자 중 홍일점으로 방송에 입문했다.

2011년 시니어리포터로 활동하면서 직접 원고를 작성하고 방송해야했던 어르신에게는 가는 곳마다 기록했던 여행기행문이 좋은 자료로 사용됐다.

“처음 방송을 하면서 노인들도 아직 쓸모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듣는 것도 다양해지고 이석간, 덴동어미 등등 몰랐던 지역의 이야기도 많은 내용을 알게 됐지요. 좋은 일이나 내용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고작성을 위해 자료를 찾거나 어려울 때는 아들에게 요청하기도 한다. 7년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방송을 해온 어르신은 지역민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동안 녹음을 하고 방송은 매주 일요일 오전 8시 FM89.1에서 들을 수 있으며 재방송은 오후 4시이다.

“크고 작은 수술을 많이 해서 장애4급을 받았어요. 60세에 뇌졸중이 와서 지금도 꾸준히 관리하며 서울 삼성병원에서 1년 2회 진찰을 받고 있어요. 앞으로 건강하게 지내서 지금 하는 일도 계속하고 즐겁게 살아가고 싶어요”

김은아/윤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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