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자미 시인

양변기 위에서


-김선우


어릴 적 어머니 따라 파밭에 갔다가 모락모락 똥 한 무더기 밭뚝에 누곤 하였는데

어머니 부드러운 애기호박잎으로 밑끔을 닦아주곤 하셨는데 똥무더기 옆에 엉겅퀴꽃 곱다랗게 흔들릴 때면 나는 좀 부끄러웠을라나

따끈하고 몰랑한 그것 한나절 햇살 아래 시남히 식어갈 때쯤 어머니 머릿수건에서도 노릿노릿한 냄새가 풍겼을라나

야아~ 망 좀 보그라 호박넌출 아래 슬그머니 보이던 어머니 엉덩이는 차암 기분을

은근하게도 하였는데 돌아오는 길 알맞게 마른 내 똥 한무더기 밭고랑에 던지며

늬들 것은 다아 거름이어야 하실 땐 어땠을라나 나는 좀 으쓱하기도 했을라나

 

양변기 위에 걸터앉아 모락모락 김나던 그 똥 한무더기 생각하는 저녁, 오늘 내가

먹은 건 도대체 거름이 되질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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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한 편을 읽는 느낌이다. 권정생의 ‘강아지똥’도 생각난다. 잘 쓴 시 한 편 만나는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하루 종일 기분을 좋게 한다.

어린 시절에 대한 순수와 그리움을 ‘똥’을 매개로 불러온 것인데 파밭을 배경으로 어머니와의 추억을 서술한다. 추억과 양변기의 대비는 문명화되고 도시화된 편리의 이기와, 자연과 생명의 순환을 말하기도 한 것이다. 체험적 분할 공유랄까 공감의 동화랄까 마치 내게 있었던 기억처럼 선명하다.

‘알맞게 마른 내 똥 한무더기 밭고랑에 던지며 늬들 것은 다아 거름이어야 하실 땐 어땠을라나 나는 좀 으쓱하기도 했을라나’ 어디서 노릿노릿한 냄새를 맡았을라나 어디서 시꺼먼 똥파리가 먼저 날아들고 밭고랑에는 심지도 않은 참외나 수박이나 토마토 같은 것이 저절로 나서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려 익을 때가 있었다.

소화되지 않은 씨앗이 똥 속에 섞여 나왔다는 것 때문에 아이구 고것 참 맛나긋다 아가 이거 먹어봐라 뚝 따서 어머니가 치맛자락에 슥슥 문질러 내민 노오란 참외 앞에서 잠시 망설였을라나 어린 나는 단맛의 유혹이 좀 더 컸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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