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2막으로 웃음 짓는 삶[6] 음악과 함께 하는 재능봉사자 김영태 씨

2016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전체 82.4년을 산다. 남자는 79.0년, 여자 85.5년이다. 1970년부터 매년 평균수명은 5.5개월씩 늘어나고 있다. 시대는 변화되고 점점 노년의 삶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역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현직에서 일하며 도시락 배달시작
색소폰 배워 재능봉사활동 이어가

어느 날 관내 경로당에서 약간 묵직한 듯 웅장한 색소폰 소리가 울린다. 어느 주말에는 요양시설의 넓은 공용쉼터에서 들린다. 어르신들을 위한 맞춤형 트로트메들리로 울리는 색소폰 소리에 박수갈채가 나온다. 

전문가가 듣기에 잘 다뤄 세련된 느낌의 소리는 아닐지라도 잠깐의 즐거움을 만끽한 어르신들에게는 최고의 연주다.
퇴직 전 색소폰을 배워 퇴직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지역의 소외된 이웃과 만나며 음악으로 재능 기부를 하고 있는 사람. 바로 김영태(66)씨이다. 음악으로 재능기부하기 이전,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나는 철도 안전 관리자
그의 고향은 안동이다. 20대 청년시절에 벽돌판매 사업을 시작한 그는 벽돌 1장에 30~40원가량이던 때 벌이를 늘리기 위해 남은 벽돌로 돈사를 지어 양돈 사업도 시작했다. 돼지 1천 마리 키우며 소득을 올리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사양사업으로 접어들게 되면서 돼지고기는 1근에 500원까지 내려갔다. 트럭 가득 28마리를 실으면 1마리에 1만 원 정도로 30만원도 안됐다.

젊은 나이에 시작한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안정된 일을 찾기 위해 그는 철도공무원시험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큰 어려움 없이 시험에 붙어 1980년 철도시설팀으로 입사했다. 첫 월급으로 7만8천원을 받았다. 진급시험으로 시설장비분야시험을 공부해 진급하고 철도차량운전면허증도 취득해 20여년을 기관사로 근무했다. 2011년 퇴사한 그는 31년을 철도에 몸 담았다.

현직에 있을 때 취득한 철도안전관리자 등의 자격증 덕에 철도퇴직 이후에도 안전관리자로 일할 수 있었다.

“철도안전관리자는 철도관련 공사 시 기본으로 근무해야 해요. 안전관리자 자격은 현직에 있을 때 교육비 80만원을 내고 3주 동안 교육을 받았어요. 교육받고 시험에서 합격해야 자격이 주어지는데 현직에서는 장기간의 교육시간으로 취득이 대부분은 어렵죠”

이 자격증이 있어 그는 퇴직 이후에도 전국에서 진행되는 철도공사와 관련한 일을 담당했다. 안동, 강릉, 대구와 영천 간, 영천과 경주, 부산, 서경주에서 포항, 진주와 광양, 구미와 김천 등지에서 안전관리자로 참여한 것이다.

“공사가 끝이 나면 ‘시운전’을 하는데 일반기관사는 할 수가 없어요. 시설장비운전면허가 있는 사람만 가능하죠. 이는 선로에 대해 모두 알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빠른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이 시운전은 3개월 동안 담당해요”

 


운동도 하며 여가를 즐겼지만 그는 지역을 위한 작은 일이라도 돕고 싶었다. 그래서 영주시자원봉사센터에 등록해 지역봉사활동에 참여한 지가 22년이다.

교대근무였던 그는 쉬는 날에 맞춰 영주시종합사회복지관과 영주장애인복지관에서 10년 넘게 도시락 배달봉사에 참여했다. 집을 방문해 도시락을 전달하면서 지역 곳곳에서 생활하는 어려운 장애인들과 어르신들을 많이 만났다.

“매주 만나던 사람들과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하게 되요. 돌아가셔서요. 도시락 배달이 필요 없어지죠.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나이가 많고 적고 상관없더라고요. 뜻밖의 사고를 겪고 몸이 아프거나 나이가 많으면 노환과 병으로 돌아가시게 되니 자주 만나던 분들의 부고를 접하면 마음이 참 무거워져요”

그는 지역을 돌며 만난 장애인이나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는 마음에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했었다. 그러나 헤어짐으로 인한 무거운 마음으로 도시락 배달을 지속할 수 없었단다.

현재 그는 마을에서 통장님으로 불린다. 휴천2동 18통 통장이 올해로 4년째다. 퇴직전후 바쁘게 일을 할 때는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마을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나선 것은 처음이란다.

올해는 휴천1차 현대아파트 101동과 103동 사이에 있는 팔각정 주변에 소나무 3그루를 심었다. 주민들의 쉼터에 사계절 파란 잎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 주민들 모두의 눈이 즐겁도록 아파트 화단에는 목단 꽃을 심었다.

“가을철에는 낙엽이 많이 모여요. 아파트나 주택마다 쌓이는 낙엽으로 고민이 될 때가 있죠. 경비실에서는 낙엽청소에도 어려움이 있지만 이를 처리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어보였어요. 그래서 해결방안으로 생강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연계해줬어요. 서로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이죠”

 

▲재능 나눔 이웃과 더불어
그의 주된 일상 중 하나가 다른 이들에게 음악으로 전하며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재능 기부하는 색소폰은 2006년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생활체육으로 테니스를 10년을 했고 대회에 나가 상도 받으며 회장도 역임했던 그는 악기연주의 뜻이 맞는 테니스동료와 함께 색소폰을 구입했다. 정말 색소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살고 있는 아파트 인근에 연습소가 있어 그곳에서 1년 정도를 배우고 연습했단다.

“강사 선생님이 기본 음계만을 배워서는 연주가 어렵다며 음계마다 소리를 내는 연습만 하고 노래연주는 못하게 했어요. 그렇게 4개월 정도 연습만 했죠. 이후 샵(#)이 있는 음계연습으로 연주하는 상세한 부분을 배우고 나서 제대로 연주할 수 있도록 지도받았어요”

1년 쯤 지나고 재능기부의 첫 무대에 오를 기회가 생겼다. 장수한방병원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가요음악으로 준비했다. 여러 명이 같이하는 연주를 따라하다 보니 혼자 하는 연주보다는 그래도 덜 긴장됐단다.

그 이후로도 연습을 꾸준히 해오면서 색소폰을 배운지 5년이 지난 뒤에는 산업전기 안현모 대표가 2009년 실버악단을 창단한 영주실버악단에 들어갔다. 창단기념공연을 시민회관에서 열어 개인연주무대에 오르게 됐다. 리어설도 하고 연습도 충분히 해서인지 혼자 오른 무대지만 떨림은 이전보다 적었다고. 그렇게 실버악단에 소속돼 3년간 공연기부에 참여했다. 공연단인 골든아이에도 입단하고 영주소백문화 회원들과 재능기부를 시작해 시민회관에서 5회 공연도 가졌다.

“20여명 전후로 서양악기를 연주하는 음악동호회인 소백풀피리봉사단 회원으로도 활동하면서 사회복지시설도 찾아다니며 봉사했어요. 지금은 물레방아봉사단 단장으로 색소폰 연주 재능기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남을 돕는다는 것이 즐겁다는 그는 어르신들이 많은 경로당도 가지만 장애인, 노인시설을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간다. 그곳에서 몸이 불편해도 음악을 듣고는 같이 춤추며 즐기는 어르신들을 볼 때면 “이것이 행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봉사활동의 보람을 얻는단다.

“이곳저곳을 다니다보면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바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모여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을 시에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곳에서 재능기부로 색소폰을 연주하고 싶습니다”

김은아/윤애옥 기자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