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영주 톺아보기 시골점빵
시골점빵⓬이산면 두월리 가는 길‘두월수퍼’아름다운 고택과 자연이 어우러졌던 곳, 새로운 터전에서 연 두월리 작은 가게
  • 김은아 기자
  • 승인 2018.04.26 16:52
  • 호수 665
  • 댓글 0

시골마을 학교 앞 가게는 매일 봐도 찾아가서 둘러보고 싶은 아이들의 복작복작한 놀이터다. 그리고 옛날의 작은 시골가게는 학교를 제외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지난 13일 이산면 두월리로 향했다. 영봉로를 따라 월림보건진료소를 지나면 바로 오른쪽에 크지 않은 조립식 건물이 나온다. 월림보건진료소가 보이기 전부터 200m 앞에 ‘두월수퍼’가 있다는 안내판이 나오지만 막상 작은 현대식 건물과 마주하니 시골마을 길가에 위치한 가게가 신기하다.

정석윤 씨

차를 세우고 들어가려니 가게 문이 닫혔다. 문 앞에 붙여놓은 종이에는 “죄송합니다. 주인이 없으면 왼쪽편 ‘인터폰’을 눌러 주세요”라는 문구와 “연락주세요”라며 전화번호 3개가 쓰여 있다. 두 번째 전화번호 걸었다. 전화를 받은 아주머니가 가게 아래 밭에 있으니 잠시 기다리란다. 바로 주인인 정석윤(66)씨이다. 두월수퍼는 남편 지경태(72)씨와 함께 운영하고 아들이 가끔씩 봐줄 때도 있단다.

▲어머니와 월림24시편의점

두월수퍼는 2011년 세워졌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작은 건물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니 나름 알차다. 시내 일반가게만큼 넉넉한 양으로 빽빽하게 쌓아 놓은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최소수량이지만 찾기 쉽게 진열돼 있다.

가게를 소개한다니 정씨는 어머니가 하던 가게에서 15세부터 일을 해왔다고 했다. 옛 두월초등학교 앞 쉼터 근처에 ‘월림24시편의점’을 운영해오다 영주댐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사하면서 가게이름을 ‘두월수퍼’로 변경했다.

“옛날에 친정엄마가 했으니까 오래됐죠. 내가 클 때인 5,60년 전만 해도 담배 값이 풍년초, 파랑새는 6원이었고 봉초담배인 수연이 5원이었어요. 봉초담배는 곰방대에 쑤셔 넣고 피우거나 신문지 같은 종이에 말아 침으로 발라 붙여 입에 물고 피우는 담배에요”

가게에서 팔았던 담배를 떠올리던 정씨는 태양, 거북선, 신탄진, 도라지 등도 많았고 당시 파고다 한 보루가 250원씩 했다면서 백양담배는 18원이었다고 쭉 읊는다. 이후 청자는 200원, 디스도 200원, 88라이트는 700원 할 때가 있었다면서 요새는 담배도 찾는 이가 적단다.

가게손님도 많았지만 학교 앞 식당이 없으니 영주에서 출퇴근하는 학교선생님들의 점심도 해결해 줬다. 인근에서 공사를 많이 하는 관계로 안동, 대구, 마산, 양산, 사천 등에서 온 덤프트럭 등을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도 몇 달씩 밥을 해줬다. 그러다 가끔은 라면을 끓여 달라는 요청에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는데 몰래 담배를 놓아둔 방에 들어가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다. 몇 십 년 전의 일이지만 당시 금액으로 40만원, 60만원씩 몇 번을 잃었다.

“이젠 옛날일이고 누가했는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속상한 마음이 들었죠. 그러다가도 낮에 축 쳐져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어떨 때는 가족을 떠나 멀리 와서 일하는 것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여러 사람들을 겪어보니 돈도 갚지 않고 밤으로 도망하는 사람도 있고 담배고 술이고 말없이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죠”

가게도 보면서 낮과 밤으로 묵과 두부를 만들었다. 일은 힘들어도 먹고 사가는 사람이 많으니 21평의 헌 가게는 물건과 사람들로 북적였다.

▲두월리로 차를 타고 붕붕
두월이 참 좋았다는 정씨는 괴헌고택과 덕산고택이 있고 산자락이 아름다운 시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말한다. 찾는 사람이 많으니 가게에는 물건을 많이 들여놓았다.

“지금은 길도 좋고 차를 타면 금방이지만 옛날에는 꽤 걸렀지요. 촌이다 보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여름에 수박농사를 지으면 경남 함안, 서울, 전라도, 부산이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였죠. 전부 수박을 사러오는 사람들이었어요”

가게하는 어머니를 도와 정씨가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의 밥을 해주고 수확할 노지수박이 없어지면 외지사람들은 8월 10일쯤 봉화군 재산으로 이동한다. 늦게 수확한 수박을 8월 15일경 출하하기 위해서다.

옛날 정씨의 남편은 마을이장으로 마을일도 돌보면서 아내를 도왔다. 밭일을 하는 곳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정씨가 한 밥을 전달하는 일이다.

“국거리 소고기 2근을 사서 무를 넣고 푹 끓여주면 일하는 시골할머니들이 얼마나 맛있게 잘 드시는지요. 여름에는 백김치를 담가 수박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내가면 시원하게 드세요. 남편이 차로 밭에까지 나르니 가능했지 아니면 못했어요”

차가 없었다면 동네일이며 시내로 다니는 일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정씨는 남편이 총각 때부터 20년 넘게 이발소를 운영하다 이장도 하고 지금은 개인택시를 한 지 8년여 됐다고 했다.

“우리 집에 차가 변하는 과정을 보면 나름 살아온 시간이 보이는 것 같아요. 처음엔 세렉스(4륜 트럭)를 타고 무쏘를 타다 팔고 스타렉스를 울산 가서 사오기도 했죠. 이후 프린스를 타고 마을, 시내로 다니다가 이제는 그랜저로 바꿔 개인택시를 하지요”

정씨는 영주, 풍기 등 시내에서도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아 어머니가 지은 월림24시편이점처럼 이산면 두월리는 낮과 밤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던 때가 있었다고 추억했다.

▲시골가게 ‘두월수퍼’에요
두월초등학교 출신인 정씨가 봉화군 상운면 출신의 남편을 만났다. 정씨와 남편이 사는 곳의 거리는 15리가량. 시댁의 종고모부가 친정 큰언니의 시동생이라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았다.

이들 부부는 시내 가서 사는 것보다 시골이 더 좋단다. 이제는 논도 팔고 사과밭도 팔아 조금의 밭에 콩과 나물들을 심는 재미로 산다.

“가게가 잘 될 때는 한번사면 40~50만원씩 사고 양도, 주문도 많으니 물건차가 잘 왔어요. 없는 것이 없었죠. 물건도 가득 채워놓고 맥주, 소주 같은 술은 창고에 쌓아놓았을 정도였죠. 스낵만 40만원씩 샀는데 이젠 장사가 잘 안 되니까 몇 개씩만 가져다 놓고 있어요”

가게를 둘러보니 소화제부터 식초, 간장, 물엿, 설탕, 당원 등이 한 두 개씩 선반에 자리를 차지하고 칫솔, 세제, 호일, 랩, 일회용품부터 차량용품, 건전지 등 다양하다.

석포 인근에 사는 종손들이 지나가다 가게에 들어와서 물건을 사가고 가게 인근이나 마을주민들도 시내에서 사올 수도 있는데 이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한다.

“댐이 들어서 다 없어지고 집도 여럿이었죠. 조용해진 마을에 살다보니 이젠 적응이 되요. 마음이 다 다르니 복작복작하게 살다 조용히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가게하면서 이렇게 살려고요”

가게도 바쁘고 매일 두부를 하며 바빴던 때를 생각하던 정씨는 지난시간을 돌아보니 어떻게 살아왔는지 거짓말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단다. 지금까지 가게에서 두부를 했던 맷돌은 수돗가에 놓여있다. 맷돌은 친정엄마가 옛날부터 사용하던 것이라며 손으로 쓸어보는 정씨는 “이젠 조용해진 가게에서 또 사용할 일이 있을까요”라며 읊조렸다.

김은아 기자  haedum@hanmail.net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김은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