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소설가·본지 논설위원)

병영생활이라면 어느 한가진들 수월한 것이 없을 테지만 고강도의 힘든 훈련은 유격, 전투기술에 앞서 공수훈련이다. 하늘을 떠가는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펼치고 내려오는 공정대원을 보면 아름답고 신기하다 못해 직접 뛰어내려 보았으면 하는 호기심이 인다. 공수병들이 꽃송이들처럼 무리지어 곡예를 부리듯 연출하는 광경이 감탄을 자아낸 탓이다. 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공수훈련은 병사들에게 공포의 대명사였다.

사람은 높이 10미터부터 20미터의 사이에서 고소공포심을 가장 많이 느낀다는데 공수훈련의 모형타워 높이가 12미터이다. 어지간히 담 크고 강단 센 병사도 타워 위에 올라서면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불안하고 두려워 쩔쩔맨다. 보조 낙하산을 두 손으로 안은 채 저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허공으로 뛰어내려 죽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타워에서 뛰어내려도 몸을 감싼 로프 때문에 4초 동안은 수직으로 거침없이 낙하한다. 만약 4초가 지나도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으면 보조낙하산의 끈을 당기는 동작을 취해야 한다. 낙하산이 펼쳐지기까지의 4초 동안 ‘일만, 이만, 삼만, 사만’이라고 외치는 구호를 잊어버리면 빨간 모자를 쓴 조교의 호된 기합이 주어진다. 지상이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무서움에 엄습당해 구호는 고사하고 비명을 지르는 전우가 있고, 두 발을 못 떼어 망설이는 병사는 조교 둘이 번쩍 들어 문밖으로 내던질 때도 있다. 50여년 전의 공수훈련은 병사들에게 과장 없이 악명 높은 공포체험이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낙하산을 타고 적지에 침투하는 공수훈련은 네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우선은 뛰어 내릴 모형 비행기의 문 옆으로 줄을 서야 한다. 앞의 전우와 한 몸인 듯 붙어 서야 하는데 교관이 손을 찔러 손이 들어가면 역시 기합감이다.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병사들이 지상에서 흩어지지 않으려면 앞뒤 병사 사이에 공간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낙하산을 타고 무사히 착지하려면 엉덩이 옆과 허벅지 바깥쪽부터 닿도록 몸을 비스듬히 눕히는 동작도 반복한다. 두발로 땅을 내디뎠다가는 무릎이며 관절에 무리를 주고 심지어 골절 부상을 당한다. 공수훈련에는 반드시 전력 질주가 따른다. 낙하산을 신속히 거두어들이고 나면 100미터를 달리는 육상선수처럼 집결지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 대오를 갖추지 못한 군대는 전투를 수행할 수가 없다. 여기 저기 흩어져 착지하고, 게다가 재빨리 모이지 않으면 전투는 차질을 빚는다. 마지막 과정으로 12미터의 모형타워에 올라 몸을 날리는 훈련을 한다.

공수훈련이 두려운 까닭은 타워에서 뛰어내릴 때 느끼는 고소공포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 공기업을 비롯한 금융권의 신입사원 채용비리가 연일 보도된다.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써 부정을 저질러 눈이 현란할 지경이다. 시쳇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은 바로 채용비리에 딱 들어맞는다. 끼리끼리 다 해 먹는다는 말처럼 제 자식은 물론 친인척과 권력층 자녀를 부당한 방법으로 합격시켰는데 어느 시대의 어느 나라에 만연한 부패인가 싶다. 무법천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국민을 만만하게 보는 증거일 것이다. 일자리를 못 구해 애를 태우고 발을 구르는 청년들이 두렵지도 않았는지 속내가 궁금하다. 속된 말로 간이 부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감독기관은 또 무엇을 했는지 대답을 듣고 싶다. 더욱 놀라운 것은 채용비리를 자행한 일부 공기업의 책임자에는 낙하산을 타고 온 인사들도 있다고 한다. 사장뿐만 아니라 이사에 감사까지 낙하산에 실려 오기도 했다는데 임명권자가 일찌감치 부정을 방조한 셈이다. 어제 오늘 듣는 얘기가 아닌데도 사라지지 않아 낙하산 인사는 낙하산을 매단 로프처럼 어지간히 질긴 모양이다.

집권할 수 있도록 이바지한 공로와 공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입은 은혜를 저버릴 수 없어 보은 차원에서 낙하산에 몸을 실어 내려온 사장은 무능하여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직원들이 그의 능력을 불신하여 화합도 능률도 저하될 것이 뻔하다. 낙하산을 타고 온 인사가 경영하여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공기업도 있다고 한다. 천문학적인 부채를 우려하여 공기업 개혁을 독려하면서도 문외한 인사가 책임자로 임명되는 사례를 보면 도무지 믿을 말이 없다. 당국은 ‘평등한 기회’, ‘공정한 경쟁’, ‘정의로운 결과’를 다시금 되새겨 채용비리가 반복되지 않도록 책임을 엄하게 물어 지난 정부와 차별화해야 한다.

낙하산은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안전하게 탈 수 있다. 공포심을 견디고, 착지하면 바람을 가를 듯 달려 집결지에 최단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낙하산은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가 된다. 낙하산 인사는 훈련받지 않은 병사가 낙하산을 이고 만용을 부리듯 비행기에서 뛰어내는 것과 같다. 사람이 다치 듯 국민경제를 병들게 만든다.

후보 시절에 도움을 준 대가로 낙하산을 타려고 기웃거리는 이들이 주변에 있는지 경계해야 한다. 낙하산에 눈독 들이는 사람들은 국민경제를 위해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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