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영주 톺아보기 우리마을 탐방
봉현사과의 원조(元祖) 오현2리 엄고개(奄峴)우리마을탐방[173] 봉현면 오현2리 ‘엄고개’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7.11.14 15:30
  • 호수 642
  • 댓글 0
엄고개 마을 전경

성주 도씨 마을 개척, 일직 손씨 집성촌
엄고개 ‘이대이’에서 봉현 사과 첫 재배

봉현면 엄고개 가는 길
엄고개는 도솔산 동천사 아랫마을이다. 봉현 남원사거리에서 죽령 방향으로 200m쯤 가다보면 동천사로 가는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700m가량 가서 자동차전용도로 지하차도와 중앙고속도로 지하차도를 연이어 통과하면 동천사가 보이는데 절 아래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마을이 엄고개다.

지난달 29일 엄고개에 갔다. 이날 마을 회관에서 김영진 이장, 신철하 어르신, 김기준 노인회장, 강홍순 부녀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유래와 전설을 듣고 왔다.

봉현사과 시발지 '이대이'

역사 속의 엄고개
오현리 엄고개 지역은 삼국시대 때는 신라의 기목진(基木鎭), 고려 때는 기주(基州), 조선 태종13년(1413) 기천현(基川縣), 1450년 풍기군(豊基郡)에 속했다.

조선 중기 무렵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풍기군 와룡동면(臥龍洞面) 흥인동리(興仁洞里)에 속했다가 조선 후기 1896년(고종33)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풍기군 와룡면(臥龍面) 엄현동(奄峴洞)이 됐다.

1914년 일제(日帝)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 봉현면 오현리에 속했다가 해방 후 오현2리로 분리됐다. 

김영진(61) 이장은 “오현2리는 엄고개를 중심으로 동으로는 자갈모래이, 서로는 독직골에 이르고 있으며, 사과 경작지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사과마을”이라며 “80여 가구 모두 100%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순수 사과마을”이라고 말했다.

멀리서 본 등왕재

지명유래
아주 오랜 옛날(고려시대) 이 마을 주변에 암자가 여럿 있어 암자 암(庵)자 암현(庵峴)이라 불렀다. 그 후(조선시대) 오향골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오향골 뒷산)에 엄나무가 많아 ‘엄고개(엄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말(1896년)에 발간된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보면 풍기군 와룡면 ‘엄현동(奄峴洞)’이라고 나온다.

이 마을 신철하(89.육군대령출신) 어르신은 “일제 때 나온 공문에도 보면 ‘엄현동(奄峴洞)으로 나와 있다”면서 “마을 이름이 시대에 따라 암자 암(庵)자 암현, 엄나무 엄 자 엄현, 또 가릴 엄(奄)자 엄현 등으로 바뀌었다. 왜 가릴 엄(奄)자 엄현(奄峴)이 됐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봉현’이란 지명은 히티재에 있는 봉정지(鳳停地)의 봉(鳳)자와 여현(礪峴.히티재의 옛이름)의 현(峴)자를 조합하여 봉현면(鳳峴面)이라 했고, ‘오현’이란 동명은 오향골(梧香谷)의 오(梧)자와 엄현동(奄峴洞.엄고개)의 현(峴)자를 따 오현리(梧峴里)가 됐다.

100년 수령 사과나무

봉현사과의 원조 엄고개
봉현면은 우리나라 최고의 사과생산지로 알려져 있고, 소득 또한 전국 최상위권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다. 마을 뒷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산도 들도 모두 과수원이고, 마을이 사과숲에 가려 집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사과바다에 조각배가 떠 있는 모습이랄까?’

신철하 어르신들은 “엄고개는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라며 “사과재배도 (100여 년 전) 제일 먼저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일창(73) 노인회총무은 “엄고개를 봉현사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며 “모두 고인이 되셨지만 전해철 어른, 허천 어른, 사제 어른 이 세 분이 봉현 사과 1세대들”이라고 말했다.

김영진(61) 이장은 “봉현사과의 시작은 마을 서북쪽에 있는 세갓산(해발 550m) 우측 ‘이대이’에서 시작됐다”며 “이 곳은 해발 450m에 남향으로 일조량이 풍부하다.

수령 80-100년 되는 아름드리 고목사과나무에서 지금도 사과가 열리고 있다. 지난 봄 과수시험장 연구원들이 현장에 나와 시료를 채취해 갔다.

최적의 토양과 기후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사과재배를 처음 시작한 ‘이대이’란 지명은 ‘긴골짝’이란 뜻을 가진 ‘기댕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여진다. ‘댕이’는 ‘골짝이’라는 뜻이고 ‘기댕이’는 긴 골짝이란 뜻을 가진 순수한 우리말인데 ‘기댕이’가 변해 ‘이대이’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세연(63) 씨는 “우리마을에 사과는 해발이 높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빛깔좋은 꿀사과를 생산한다”며 “사계절 전국 각지로 택배 판매한다”고 말했다. [대표전화 010-2554-4254]

마을 회관

등왕재(登王峴)의 전설
“엄고개에서 홍정골로 넘어가는 고개(동천사 뒤)를 ‘등왕재’라 한다. 또 홍정골 사람은 이 재를 두령재(頭領峴)라고 부른다”고 신철하 어르신이 말했다.

손기호(65) 전 이장은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들었다”며 “전설에 임금이 이 고개에 올랐다 하여 ‘등왕재’라 했는데 지금은 ‘깨금바위’라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기준 노인회장은 “등왕재(登王峴)를 ‘등재’라고도 하는데 고갯마루에는 임금님이 앉았다 간 의자모양의 임금바위도 있다”면서 “등왕재에서 보면 죽령산봉수, 망전산봉수(안정생현), 성내산봉수(장수고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군사요새’”라고 말했다.

풍기지에 보면 「고려 태조 왕건이 남정(南征) 때 죽령을 넘어 기주(基州.풍기의 옛 이름)에 와서 7일을 기다려 견훤(후백제)의 항복문서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 왕건의 가마가 머물렀던 곳을 등항성(登降城)이라고 하는 데 등항성이 두산2리에 있는 ‘마산’이라고 하니 당시 왕건이 등왕재에 올라 적의 동향을 살폈을 것으로 추정된다.

풍기지에 등항성 관련 기록이 다음과 같이 존재하고 있어 등왕재 전설의 근거가 되고 있다. 「등항성 재군서오리 언전고려태조남정시 류우차현칠일 백제항서지 수명주련처왈등항성(登降城 在郡西五里 諺傳高麗太祖南征時 留于此縣七日 百濟降書至 遂名駐輦處曰登降城)」

동천사의 가을

성주도씨가 개척한 마을
성주도씨는 성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다. 고려 창업에 공훈을 세운 도진(都陳)이 정승(政丞)에 오르니 시조가 되었으며, 고려 명종 때 전리상서를 역임한 도순(都順)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엄고개의 성주도씨는 도순의 7세손 영수(永壽)의 후손들로 10세 도천계(都天啓.진사공파) 대에서 예천 용궁에 옮겨 살았는데 그 뒤 도천계의 후손 일부가 풍기로 이거하여 엄고개에 터를 잡았다.

이 마을 도지윤(61.30세손) 씨는 “엄고개 성주도씨는 영수 선조의 후손으로 예천 용궁에서 풍기로 이거하여 엄고개에서 세거한지 오래됐다”며 “언제 이주했는지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다래덤불을 걷어내고 마을을 개척했다는 이야기를 선친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사과 고목

일직손씨 집성촌 
영주의 일직손씨(중시조:孫洪亮.1287-1379)는 11세 손한(孫한)이 1600년경 단산면 동원리 구미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손한의 아들 몽협(夢莢.1611생)은 참봉을 지냈고, 손자 준용(俊龍.1642생)은 형조참의에, 증손자 창도(昌燾)는 호조참판에 증직되어 당시 순흥부를 대표하는 명문가문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 마을 손기호(65.25세손) 씨는 “엄고개 일직손씨는 저의 고조부 석(錫)자 진(晋)자 할아버지(1877졸)께서 1840년경 단산 구미에서 엄고개로 이거해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셨다”며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여 20여 가구가 사는 집성촌을 이루니 ‘엄고개 손씨’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엄고개 사람들

엄고개 사람들
오현2리 경로당은 지난 7월 시설 현대화 공사를 마치고 준공식을 가졌다. 그래서 꽃방 같다.

김기준 노인회장은 “마을의 숙원이던 경로당이 리모델링을 완료하고 새로 문을 열어 기쁘다”며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가 일을 때마다 강홍순 부녀회장을 비롯한 부녀회원님들의 노고가 크다”고 말했다.

강홍순(63) 부녀회장은 “김영진 이장님과 김기준 노인회장님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셔서 늘 마을이 활기차고 화기애애하다”고 말했다. 부녀회 우도해(63) 씨는 “부녀회는 정월대보름 행사부터 어버이날 행사, 면민체육대회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회원(26명) 모두가 합심하여 어르신들을 잘 모신다”고 말했다.

임금바위

권영순(57) 부녀회원은 “가을에 빨간 사과를 보면 참 탐스럽고 이쁘다”면서 “이 사과가 영글기까지 농부의 수많은 손길이 묻어있다”고 말했다.

장분옥(55) 씨는 “멀리서 마을을 바라보면 해발이 높으면서 햇빛을 잘 받고, 또 산비탈의 경사면이 적당하여 사과 재배에 딱 맞는 환경인 것 같다”며 “여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과와 함께 사는 사과마을”이라고 말했다.

<봉현면 오현2리 엄고개사람들>

김영진 이장
김기준 노인회장
강홍순 부녀회장
신철하 어르신
이일창 노인회 총무
손기호 전 이장
김세년 씨
우도해 씨
도지윤 씨
권영순 씨
장분옥 씨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영주시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