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보존과 활용이 주된 관심사이다. 개항기 이후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근대시기에 만들어진 우리의 근대문화유산은 당시의 생생한 물질문화를 잘 대변하고 근대라는 역사적 전환기의 구체적 표상이라는 점에서 큰 가치와 그 중요성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소중한 근대문화유산이 산업화와 도시개발의 영향 하에서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멸실돼 왔다.

이에 따라 본지는 영주지역의 근대문화유산의 가치와 그 중요성을 분석하고 지역 근대문화유산자원의 구체적인 보존과 창조적 활용방안을 국내외 선진사례를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사라져가는 영주지역 근대문화유산
2. 문화예술공간으로 태어난 등록문화제
3. 원형보존으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근대문화유산
4. 프랑스의 근대문화유산 정책
5. 신축보다 리노베이션을 택한 ‘라 빌레뜨’
6. 영국의 근대문화유산 정책과 활용
7. 근대문화유산의 창조적 활용방안

옛 대구상업학교 본관

건물의 역사성과 스토리 적극 발굴하고
사익보다 공공성 추구해야

한때 도시의 랜드마크로 우리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지만 낡고 오래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철거된 건축물이 많다.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건축물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이대로 무관심 속에 그냥 둔다면 도시 개발과 도시 재정비라는 미명 하에 결국 철거돼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릴지 모를 일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영주시가 근대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조사를 진행 중이고 한때 영주의 번화가로 전성기를 누렸던 후생시장 내 건물들이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철도교통의 요충지로서 철도의 고장이라는 명성까지 얻었던 만큼 무관심으로 방치되고 있는 역사와 철도시설물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도 필요한 시점이다.

건축물들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공간에 존재해왔고 선조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이며 귀중한 유산이다. 건축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며 침묵으로 숨 쉬고 얘기하는 생명체이다. 스토리가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관광상품이 될수 있다.

옛 대구상업학교 내부

◆건물 외관, 내부구조 원형보존 전용 활용사례 = 2009년부터 대구문화재단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옛 대구상업학교 본관은 1923년 일제가 대구지역의 실업인 양성을 위해 건립했다.

대구시 중구 대봉로에 위치한 이 건물은 대구상업교육의 요람으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대구시의 랜드마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42년 일제의 압제 속에서 당시 이 학교 학생들이 태극단(太極團)을 결성해 항일 투쟁을 벌였던 장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06년 초고층(43층) 아파트가 건설될 당시 철거될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지역사회의 반대로 겨우 살아남았다. 지금은 비록 고층 아파트로 둘려 쌓여 건물조차 잘 보이지 않지만 아파트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1층 귀퉁이에는 선사시대부터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대봉동마을유적전시관도 자리잡고 있다.

‘一’자형의 붉은 벽돌쌓기 2층 건물로 현재 사무실로 전용하기 위해 내부 칸막이벽, 창호, 마감재 등이 일부 변경됐지만 건물 외관형태와 내부구조는 상당부분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정면 중앙의 돌출된 포치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형태이며, 평면은 편복도식의 교사로 정면 중앙의 포치와 연결된 중앙의 계단 홀을 중심으로 좌우에 교실을 뒀다.

계단실 배면에 부 출입구를 두어 건물 배면으로도 출입할 수 있게 했다. 당시의 건축적 상황과 서양건축의 유입과정을 살필 수 있는 건축사 연구의 자료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 48호로 지정돼 있다.

옛 신촌역

◆ 철도관련 시설물-옛 신촌역사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옛 신촌역사는 일제강점기 용산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철도의 부속역사로 건축됐다. 1921년에 건축된 기차역사 중 현재까지 원형이 훼손되지 않고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역사이다.

1925년 세워진 옛 서울역의 건물보다 5년이나 앞선 것으로, 등록문화재 제 136호로 지정돼 있다. 도시개발의 논리대로라면 헐려도 벌써 헐려 나갔을법한 작은 역사가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의 중심부에 옛모습 그대로 떡하니 서 있다. 역사 안으로 들어서면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느낌이 들 정도다.

학계에서는 1920~30년대의 목재지붕틀, 창호, 굴뚝 등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이 시기 철도역사의 전형적인 맞배지붕에 삼각형의 박공을 강조한 지붕, 대합실과 역무실로 크게 양분되는 평면 등이 잘 표현돼 있어 건축적 보존가치가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옛 신촌역 내부

분단 이후 신촌역는 문산·파주 방면에서 서울 간을 왕래하는 이용객에 의해서 매일 사용됐지만 2004년 대형쇼핑몰과 함께 신촌 민자역사가 새롭게 건립되면서 해체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학계와 시민단체의 반대 속에 철도역사로서의 보존가치와 역사적 중요성이 인정돼 등록문화재로 등록 보존하기로 결정되면서 살아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위치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는 대합실만 현 위치에 보존하고 대합실 좌측의 역무실을 해체해 대합실의 우측으로 이전했다. 등록문화재로서는 처음으로 건물의 일부를 이전하는 보존방식을 택한 것이다.

현재 이 건물은 서대문구청이 서울시관광협회에 위탁해 ‘신촌관광안내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인근에 이화여대와 연세대 등 대학캠퍼스가 있는데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번화가가 있어 외국 관광객들의 유입이 많기 때문이다.

대합실 안에는 옛 신촌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는 사진자료가 전시돼 있고 한쪽에는 영어, 일본, 중국어 등으로 만들어진 서울시관광홍보책자가 비치돼 있다.

근무중인 안내원 김현주씨는 “내외국인의 관광, 교통, 쇼핑 음식점 안내에서부터 외국교환학생들의 생활불편사항까지 해결해 주고 있다”며 “상업성으로 운영하기보다는 공공성 측면이 더 크다”고 말했다.

승일교

◆ 철도관련 시설물- 철원 월정리역과 승일교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월정리역은 서울-원산간 경원선에 속한 간이역이다. 1924년 문을 열 당시 역전에 300여 명이 살았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비무장지대 남쪽 한계선에 가장 가까이 있는 마지막 기차역이어서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민통선 출입을 위한 국방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역사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폭격으로 파괴됐다가 1980년대 말에 복원됐다. 원래 경원선은 일제강점 이후 일본인들에 의해서 조선인을 강제동원하고 당시 러시아의 10월 혁명으로 추방된 러시아인들을 고용해 1914년 8월 강원도에서 제일 먼저 부설된 산업철도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승일공원

당시 이 역에서 마지막으로 운행했던 객차의 잔해와 유엔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인민군 화물열차의 잔해가 남아있어 분단의 상징이 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열차는 달리고 싶다’란 문구가 적혀 있다. 월정리역은 제2땅굴·철원 노동당사 등과 함께 전쟁안보관련 문화유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철원군 갈말읍 내대리와 동송읍 장흥리 경계에 위치한 승일교는 총길이 120m, 높이 35m, 너비 8m로 만들어졌으며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는 별칭이 있다.

북한 정권하인 1948년 8월에 장흥리부터 공사를 시작해 절반정도 추진한 상태에서 6·25전쟁으로 중단됐지만 수복이후 1958년 우리정부가 약간 다른 특색의 공법으로 나머지 구간을 마무리 했다. 결과적으로는 기초 공사와 교각 공사는 북한이 하고 상판 공사 및 마무리 공사는 한국이 시행한 남북합작의 다리라는 역사성을 갖고 있다.

3개의 교각 위에 아치형을 이루고 있는 콘크리트 다리로서 시공자와 완성자가 다른 까닭에 양쪽의 아치 모양 또한 약간 다르다. 북한이 만든 다리는 둥글고, 한국 측에서 만든 것은 둥근 네모 형태를 띠고 있다. 다리의 이름이 ‘승일교’라고 지어진 것에 대한 각종 설도 많다.

김일성(金日成) 시절에 만들기 시작해 이승만(李承晩) 시절에 완성했다고 해서 이승만의 ‘승(承)’ 자와 김일성의 ‘일(日)’ 자를 따서 지었다는 설과 6·25전쟁 때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승일(朴昇日) 대령의 이름을 땄다는 설이 그것이다. 현재는 후자의 설이 정설로 인식되고 있다.

승일교 위 상판

1999년에 8월 11일 바로 옆에 한탄대교가 개설되면서 현재 승일교는 차량통행이 금지됐으며, 일대는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듯한 공원으로 만들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 1,2코스가 이곳 승일교에서 시작된다.

철원 월정리역
월정리역 철마

 

서현제 발헹인/오공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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