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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禮)를 숭상하는 마을 ‘사례(砂禮)’우리마을탐방[160] 상망동 ‘사례’마을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7.07.28 11:16
  • 호수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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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마을 전경

옛 군(郡)의 중심지 관아·저잣거리가 있던 마을
해방-6.25 무렵 인구 집중으로 주택 밀집 지역

상망동 사례마을의 위치
사례마을은 영주향교(영주여고) 아랫마을이다. 사례는 상망동사무소를 중심으로 동으로 동산교회, 서로는 영주초등학교, 남으로는 하망동우체국, 북으로는 철탄산까지를 말한다.

예전에는 집이 몇 채 없었으나 해방 후 주택 밀집지역이 됐다. 지난 16일 사례마을에 갔다. 이날 사례경로회관에서 조용희 노인회장, 강성욱 부회장, 이우광 사무국장, 신춘자 전 부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사례의 유래와 전설을 들었다.

영주향교

영주의 역사와 ‘사례’
영주는 본래 고구려의 내기군(奈己郡), 통일신라의 내령군(奈靈郡), 고려 때 강주(剛州)-순안(順安)-영주(榮州)로 불렀고,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경상도 영천군(榮川郡.별칭龜城)이 됐다.

조선 중기 무렵 행정구역을 방리(坊里)로 정비할 때 영천군봉향리(奉香里) 사례방(砂禮坊)이라 부르다가 조선 후기(영조무렵) 면리(面里)로 개편하면서 봉향면 사례리가 됐다.

당시 봉향면은 군치의 중심지역으로 망동(보름골), 사례(상망동사무소), 성저(구성주변), 광승(휴천1동사무소), 화천(동창산업-영문사), 원당(하망동사무소), 지천(시청), 마암(경북전문대), 증귀(한정교동편) 등 9개 마을이 있었고, 사례리에 관아(官衙)와 저잣거리가 있었다.

조선말 1896년(고종33) 행정구역을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영천군 봉향면 하망리(下望里)가 되었다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 영주면 하망리에 편입됐다.

그 후 1980년 영주시 하망1동에 편입되었다가 1998년 하망1동이 상망동에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철탄정

사례의 지명유래
안양사 경우 스님은 “예전에 ‘정토사’란 절이 있던 자리에 조선 초 향교를 세워 절(寺)과 예(禮)가 만난 곳이라는 뜻으로 마을이름을 사례(寺禮)라 부른다”고 말했다.

또 영주고을 지명유래편에 보면 「조선 중기 때 사촌(砂村) 권명수(權命守)라는 선비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다 하여 그의 호 사촌(砂村)의 사(砂) 자와 안동권씨 숭조사상 고취를 위한 예(禮)자를 결합하여 사례(砂禮)라 했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

영주향토지 안동권씨 인물편에 찾아보니 권명수(1712-1785)는 「진사 계옥(啓沃.사복재의 6대손.鳳年의 아들)의 후손으로 선(瑄)의 아들이다.

1762년 식년시 진사에 올랐다. 1784년 구호서당을 증축하여 후학을 양성했다」는 등 당대 이름난 ‘유학자요 교육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동권씨 34대손 권영수(78.사례) 씨는 “안동권씨 영주 입향조는 사복재의 2남 요(曜) 선조이고, 요 선조의 5남 경행(景行) 선조의 후손들이 사례에 세거지를 형성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당시 화천에 살던 사촌 선조께서 사례로 이거하여 세거지를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마을 조용희 노인회장은 “신라 때 ‘정토사’란 절이 있어 사례(寺禮)라 부르다가 조선 때 사례(砂禮)로 바꿔 불렀다”며 “역사적으로 볼 때 사례는 예(禮)를 숭상하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영훈정

옛 관아와 저잣거리
영주지(榮州誌)에 보면 「동헌(東軒) 철탄산 아래에 있다」라고 했다. 동헌이란 옛 고을 수령이 집무를 보던 대청을 말한다. 그 동헌이 영주초등학교 본관 자리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쉽다.

동헌 앞에 관아로 들어가는 문루 가학루((駕鶴樓)가 있었다. 1911년 옛 관아 터에 영주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하니 문루가 운동장 가운데에 서 있게 되자 1923년 전성오 군수가 구성산으로 옮기게 됐다.

다른 옛 흔적으로 1467년 군수 정종소(鄭從韶)가 사신을 맞이할 목적으로 건립했던 영훈정(迎薰亭)이 영주초 옆에 남아 있고, 현감 김대현(金大賢)이 세운 유연당(悠然堂)이 시의회 뒤쪽에 있었는데 원당으로 이거했다.

또 예전에 가게와 음식점이 늘어서 있던 저잣거리는 시의회 약간 동쪽 하망동우체국, 백마가구, 중앙분식, 중앙약국 자리까지라고 전해온다. 그러니까 관아와 저잣거리가 모두 사례마을에 속해 있어서 사례는 조선 때 가장 큰 마을이었고, 요지였다고 보면 되겠다.

안양사

철탄산과 철탄정(鐵呑亭)
철탄산은 군(郡)의 진산(鎭山)이다. 봉황산(鳳凰山)의 한줄기가 동남으로 힘차게 달려오다가 군사(郡舍)의 뒤에 우뚝 솟으니 옛적에 전하기를 “말(馬)이 쇠붙이를 물고 달리는 형상과 같다 하여 철탄산(鐵呑山)이라 했다”고 전한다.

영주향교에서 철탄정(鐵呑亭)으로 향했다. 수목에 가려 정자가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등산객이 “철탄정이 숲에 묻혀버려 아쉽다”면서 “많은 시민들이 철탄정의 전망을 살리기 위해 시와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탄정에 오르니 안양사 경우(鏡牛) 스님의 철탄정기가 있다. 기문에 “이 정자는 김진영(金晋榮) 영주시장, 김창언(金昌彦) 도의원, 조용희(趙龍熙) 시의원 등 삼공(三公)의 협력과 시비 지원으로 2002년 1월 준공했다.

정자에 올라 바라보니 영주 큰 천지, 시가지는 별배기듯 주위는 백리”라고 적었다. 사례경로당 조용희(전 시의원) 회장은 “철탄정은 시민들의 피로를 풀어드리고, 활력을 심어주는데 도움이 될 휴식공간”이라며 “시민과 풍월객뿐만 아니라 영주여고를 비롯한 학생들의 면학(勉學)에 도움을 주려고 정자를 세웠다”고 말했다.

사례경로당

영주향교와 안양사
현 안양사(安養寺) 주변 전역은 원래 신라사람 ‘조신의 꿈’의 산실인 정토사(淨土寺)가 있던 자리다.

이 절은 조선 초까지 존속해 오다가 태종 6년 영주군수를 지낸 하륜(河崙)의 상소로 전국 3천 6백여 사찰이 폐사될 때 없어졌다. 그 후 1952년 안경우 스님이 정토사지 일부를 매입한 후 현재까지 연차적으로 중창하고 있는 절이다.

신라 때 정토사 터에 조선 초 세운 영주향교는 1368년(공민왕17) 군수 하륜(河崙)이 처음 건립하였다고 하며, 1433년(세종15) 군수 반저(潘渚)가, 1577년(선조 10) 군수 이희득(李希得)이 각각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향교란 옛날 학교로서 요즘으로 치면 국립대학이라 할 수 있다. 또 향교의 장을 ‘전교(典校)’라 하고 그 밑에 장의(掌議)를 두어 학생 지도를 감독케 했다.

이 마을 강성욱(78) 노인회 부회장은 “옛 영주향교 정문이 경로당 앞 한빛석유 자리에 있었고, 주변 모든 땅이 향교땅이었다”며 “사례는 향교와 관아 그리고 저잣거리를 포함하고 있는 마을로 아전(衙前)과 유생(儒生)과 상민(常民)들이 어우러져 살던 마을”이라고 말했다.

사례마을 사람들

사례마을 사람들
이우광(75) 사무국장은 “사례경로당은 1983년 김태욱 씨를 초대회장을 선출하고, 옛 지명 사례(砂禮)에서 유래하여 ‘사례경로당’이라 칭했다”며 “사례는 안양사의 불심(佛心)과 영주향교의 선비정신이 조화를 이룬 마을로 지극히 예(禮)를 숭상하는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김위순(78) 노인회자문위원은 “사례경로당은 조용희 회장님과 강성욱 부회장님, 이우광 총무님의 깊은 관심으로 쾌적하고 편리한 경로당을 만들어 주셨다”며 “여름엔 무더위 쉼터이고 겨울에는 따뜻한 사랑방”이라고 자랑했다.

사례마을 여성지도자로 활동해 온 신춘자(73) 전 부회장은 “김영춘(78) 씨, 김태선(76) 씨, 서순자(73) 씨 와는 50년 넘게 사례에서 함께 살았다”며 “동성당 점심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마을을 가꾸는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돈버는 일도 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선 씨는 “사례에서만 살다보니 변화를 잘 모르겠다”며 “6.25 무렵 형성됐다는 달동네 모습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폭 1m도 안 되는 좁은 골목이 아직 남아 있어 주택박물관 같다”고 말했다.

팽나무(보호수)

젊을 때 부녀회장을 오래 했다는 최윤이(79) 씨는 “예전에 사례마을 사람들이 한복을 차려 입고 청와대, 국회의사당에 가서 영주를 홍보했다”면서 “사례는 시대별로 영주를 대표해온 마을”이라고 말했다. 경로당에서 나와 강성욱 부회장의 안내로 마을을 둘러봤다.

새마을주택 기와지붕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명물이다. 산업화시대의 작은 집과 좁은 골목이 잘 보존되어 있어 또 하나의 영주명소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강 부회장은 옛 하망1동사무소 앞 팽나무를 가리키며 “여기가 일제 때 사방관리소 자리고, 그 동쪽에 배모양의 집 수용소(監獄)가 있었다”면서 “옛 관아 주변에는 동헌 외에도 서헌(西軒), 아사(衙舍), 문루(門樓), 감옥(監獄) 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팽나무(보호수)
좁은 골목길

<상망동 사례마을 사람들>

조용희 노인회장
강성욱 부회장
우우광 사무국장
권영수 씨
김위순 씨
최윤이 전 부녀회장
신춘자 씨
서순자 씨
김태선 씨
김영춘 씨
안양원 경우 스님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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