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우리나라 팔경은 연원은 중국의 소상팔경이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중국 후난성 둥팅호 남쪽의 소수강(瀟水)과 상강(湘江)이 합류하는 곳에 있는 대표적인 8가지 경치를 말한다.

이른바 산시청람(山市晴嵐)·연사모종(烟寺暮鐘)·원포귀범(遠浦歸帆)·어촌석조(漁村夕照)·소상야우(瀟湘夜雨)·동정추월(洞庭秋月)·평사낙안(平沙落雁)·강천모설(江天暮雪)이 그것인데, 이들은 산속에서 피어나는 푸른 아지랑이, 안개 낀 사찰에서 들어보는 저녁 종소리, 먼 포구에서 귀환하는 돛단배, 어촌의 저녁에 비치는 석양, 소수와 상강의 밤에 뿌리는 비, 호수에 뜬 가을 달, 모래사장에 앉은 기러기, 강가에 내리는 저녁 눈 등 다분히 서정적인 주제를 채택하였으며, 특히 석양, 가을, 밤비, 저녁 등을 주된 모델로 삼았다.

그리고 이 경치들은 시와 그림의 소재로 많이 다루어졌다.

8경을 화제(畵題)로 그림을 그린 북송의 송적(宋迪)이라는 사람 이후 소상팔경은 당대의 화가들에 의해 유행처럼 퍼져나간 연고로 세상의 팔경이 송의 ‘소상팔경도’에서 시작됐다고 이해하게 된다.

영남제일의 희방폭포

국내에서도 고려 중기에 소상팔경도가 전래되어 소상팔경을 예찬하는 그림과 시를 읊었으니 패러디라고나 할까? 점차 한국의 자연을 대상으로 한국팔경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인공정원을 만들고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경승미를 추구했으나 고려 후기 들어 주변의 이름 없는 산수에서 자연미를 발견하고 자부심을 부여해 생명력이 넘치는 한국의 팔경을 탄생시켰다.

관동팔경은 바로 강원도와 경상도에 걸치는 관동지방의 땅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의 표현이고, 단양팔경은 단양 땅에 대한 단양 사람들의 자부심인 것이다. 때문에 팔경문화는 문화적 자부심의 소산이자 자연경관과 인간이 공존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유서 깊은 문화유산인 것이다.

빼어난 미모의 여인을 팔등신 미인이라고 하듯, 당연히 경치도 팔등신 경치가 팔경이 된다.

우리나라 팔경의 대표가 관동팔경, 단양팔경인데, 관동팔경은 강원도와 경북 동해안 일대의 여덟 명승지, 즉 총석정, 청간정, 낙산사, 삼일포, 경포대, 죽서루, 망양정, 월송정 등이며, 단양팔경은 하선암·중선암·상선암·사인암·구담봉·옥순봉·도담삼봉·석문이 그것이다.

예로부터 이것들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대명사처럼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옛 선조들의 풍류와 시선이 곳곳에 남아있다.

특히 고려 말 순흥 출신 안축의 <관동별곡>에서는 총석정·삼일포·낙산사 등의 절경을 노래되어 있고, 조선 선조 때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에서는 관동팔경과 금강산 일대의 산수미를 노래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지역은 그 팔경이라는 얼굴을 활용하여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8경은 단순한 여덟 명승지를 가리키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얼굴로서 지역별로 선택된 자연경관 전부를 뜻한다.

곧 그 고장의 8경은 그 지역 자연경관의 정수를 일컫는다는 말이다. 동양에서 ‘8’이란 숫자는 숫자 돈, 재물, 행운 등을 상징하는 좋은 의미의 숫자란다.

중국인들이 열광하는 8자에는 다방면에 소질 있는 사람을 이르는 ‘팔방미인’을 비롯하여 ‘팔등신’, ‘팔도’, ‘팔선녀’, ‘팔자(八字)’, ‘팔괘(八卦)’, ‘팔학사(八學士)’ ‘팔만대장경’, ‘팔천협’ 등에서 ‘팔대명주’에 이르기까지 8(八)자가 포함된 단어가 무려 3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 팔자도 보통 팔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팔자를 좋아하여 각 고을마다 나름대로의 팔경을 만들었으며 지방마다 그 긍지도 대단하다. 산수의 고장일수록 팔경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 팔자소관이지만 강원도는 유난히 팔경이 많다. 산수미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거의 강원도 급에 해당하는 우리 지방 팔자도 팔경을 많이 찾아내어 우려먹어야할 팔자인데 비해 팔경의 근거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이상하기만 하다.

전국에 100여개의 팔경이 조사된데 비해, 정작 양백지간 명당이라는 우리 지방에 팔경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어째 이상하다는 말이다.

실상 영주에도 10여 년 전 주민 설문을 통해 부석사·소백산·소수서원·무섬마을·희방폭포·죽계구곡·죽령·풍기온천 이렇게 팔경을 선정한 바 있다.

중국의 소상팔경이 시간적으로는 천년 이상, 공간적으로는 한·중·일 삼국, 계층적으로는 왕실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고루 사랑을 받았던 것에 비해 영주팔경은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석고용 팔경이 되고 말았다는 점이 아쉽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