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 [153] 풍기인삼 근대사의 중심마을 ‘서부3리’

▲서부3리 전경

고려 때 한림촌, 조선 때 고로촌
1908년 서부3리에 인삼조합 설립

▲풍기인삼조합창립 100주년 기념비

풍기읍 서부3리 가는 길
서부3리는 풍기역 뒤쪽에 있는 마을이다. 영주에서 출발 서부3리로 가려면 풍기의 상징인 나만(남원)다리를 건너야 한다. 예전에는 이 다리를 남천교(南川橋)라 불렀고 근대에 와서 남원천교(南院川橋)가 됐다가 지금은 ‘풍기인삼교’로 개칭됐다. 인삼교를 지나 십자거리-오거리-순흥통로-중앙선 지하차도를 통과 후 좌회전하여 200m쯤 올라가면 풍기인삼농협이 나온다.

여기가 풍기인삼 근대사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서부3리다. 지난달 28일 서부3리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이춘성 이장, 김봉규 노인회장, 김보경 부녀회장, 김기문 철도대책위원장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풍기인삼 근대사 이야기를 듣고 왔다.

▲옛 직조공장 모습

역사 속의 서부3리
풍기는 신라 때 기목진(基木鎭), 고려 때는 기주(基州), 조선 태종 13년(1413)에 기천현(基川縣)이 됐다가 1414년 은풍과 통합하면서 은풍의 풍(豊)자와 기천의 기(基)자를 따 ‘풍기’라 하고 군으로 승격했다. 서부3리 지역은 조선 중기 무렵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풍기군 서부면 고로촌리(古老村里)가 됐다. 1896년(고종33) 조선 말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풍기군 서부면 고로동(古老洞)으로 개칭됐다. 1914년 일제(日帝)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 풍기면 서부동에 편입됐다가 1973년 풍기읍 서부3리, 1980년 영풍군 풍기읍 서부3리, 1995년 영주시 풍기읍 서부3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있다. 이춘성 이장은 “서부3리는 현재 333세대에 600여명이 사는 도농복합마을”이라며 “소규모 아파트와 원룸, 단독주택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림촌 은행나무

지명유래
서부3리는 웃마와 아랫마 그리고 한림촌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로를 기준으로 동쪽을 ‘한림촌’이라 부른다. 옛날 이 마을에 한림학사(寒林學士) 세 사람이 태어났다고 해서 ‘한림촌’이 됐다고 전한다. 한림학사란 고려 때 정4품 고위 관직이다.

조선 때 행정구역은 풍기군 서부면 ‘고로촌리’로 되어 있다. 왜 ‘고로촌’이라 했는지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이 마을 원로들에 의하면 “고려 때 한림촌(翰林村)이 조선에 와서 고로촌(古老村)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한림촌’이나 ‘고로촌’의 뜻이 ‘오랜 경험과 높은 학식을 가진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니 그럴듯한 지명”이라고 했다.

▲참남배기

마을 서쪽에는 남북으로 쭉 뻗은 언덕에 굴참나무숲이 있어 사람들은 이곳을 ‘참남배기’라고 불렀다. 또 참남배기 윗들은 ‘닭밭두들’이라고 불렀는데 그 유래는 그리 크지도 않은 작은 돌이 옹기종기 박혀있는 모습이 닭이 모이를 쪼아 먹는 것 같다하여 ‘닭밭두들’이라 했다 한다. 지금은 평평한 논밭으로 변했다.

▲고 이풍환 선생

풍기인삼과 이풍환 선생
풍기 가삼재배는 500년 전 주세붕 군수로부터 비롯됐고, 풍기 인삼재배는 100년전 구당(求堂) 이풍환(李豊煥) 선생에 의해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하게 됐다. 풍기 사람들은 이풍환 선생을 ‘풍기 근대사의 선구자’라고 말한다.

28일오후 이풍환(1866-1933) 선생의 손자 이용배(81)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은 “저의 조부께서 개성에서 풍기로 이사 올 때 뗏목을 타고 단양까지 와서 등짐 지고 죽령을 넘어오셨다”면서 “조부님께서는1908년 인삼조합 창설, 1908년 풍기초등학교 설립, 1922년 풍기금융조합 설립 등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하셨다”고 말했다. 선생께서는 1866년 개성 인근 천냥고개에서 태어났다. 약관의 나이에 중앙관직으로 진출하여 승훈랑직(정6품) 등을 수행했다. 부친(宗植)이 1883년 영양현감으로 부임하자 개성, 한양, 안동, 영양을 오가면서 풍기를 알게 됐고, 풍기인삼재배의 꿈을 키워오다가 1900년 당시 풍기군 서부면 금계동에 정착했다. 그 후 30여 년간 서부3리에 있는 인삼조합을 거점으로 인삼산업을 이끌고 발전시켰다.

▲1933년 이풍환선생 장례식

1933년 66세를 일기로 작고하니 면민이 뜻을 모아 풍기면장(葬)으로 치루어졌는데 그 장엄한 의식이 풍기초등학교에서 금계리 장지까지 수백여 만장(挽章)으로 길게 행렬을 이루었다고 하니 그분의 고귀한 업적을 짐작할 수 있다.

▲고 송지향 선생

향토사학자 송지향 선생
유계(幽溪) 송지향(宋志香.1928-2004) 선생이 영주영풍향토사를 집필하던 ‘소나무그늘토담집’이 서부3리에 있다. 그곳에 후손(차남 송동호)이 지금도 살고 있다.

선생은 1918년 평북 박천군 동남면 종달골에서 아버지 국훈(國勳)과 연안차씨(延安車氏)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2살 봄(1929) 아버지를 따라 풍기로 이주하여�금계리에 정착했다. 그 후 전구동-금계동 자수고개-구미산골(대강면 용부원리)-금계리-충남 광천을 거쳐 1953년 서부3리에 터를 잡았다.

선생은 타고난 인문학적 감수성으로 문학, 역사 한의학 등을 꾸준히 공부했다. 1939년 20대 초반에 ‘소백산 탐승기’를 비롯한 글들을 조선일보에 게재했다.

1952년(34세) 금계중학교 교사로 초빙되어 18년간 국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1983년 안동향토지, 1987년 영주영풍향토지, 1994년 순흥향토지를 출간한 향토사학자다.

제자 진영일(75.경기도) 씨는 “선생께서는 책을 보시거나 글을 쓰실 때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꼿꼿한 자세를 보이셨다”며 “나는 마음이 흩어질 때마다 선생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고립 위기의 서부3리
서부3리가 신설 중앙선복선철도공사로 인해 시내와 단절·고립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서부3리노인회 김기문(73) 철도대책위원장은 “신설 풍기역 철도구간은 4m 이상 최고 5.8m 까지 성토하여 철로를 건설하기 때문에 서부3리는 조망권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둑에 갇힐 처지가 됐다”며 “이에 대책위원회는 풍기역 구내 전 구간을 교량화해 줄 것과 기존 지하도 2개소에서 1개소를 추가하여 3개소 건설을 요구하였으나 시공사(대림건설) 측이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 국민권익위원회에 호소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윤용구 전 노인회장은 “지금보다 5m 높은 둑을 쌓아 철도를 건설하고 그 위에 방음벽을 설치하면 우리마을은 독안에 갇히는 처지가 된다”며 “풍기읍과 영주시, 언론이 나서서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서부3리 마을사람들

서부3리 사람들
서부3리 회관은 아랫마에 있다. 
이춘성 이장님과 김봉규 노인회장님이 집집마다 전화를 해서 많은 분들이 회관에 모이셨다. 

하성진(67) 노인회총무는 “이거 참고로 보시라”며 집에서 가지고 온 ‘풍기읍지’를 내놓았다. 
참 고맙다. 

김봉규(86) 노인회장은 “좋은 일 하시는데 많이 모이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우리마을 노인들은 인삼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장수하는 노인이 많다. 80세 이상 노인들도 경운기를 몰고 인삼밭 일도 거뜬히 해 낸다”고 소개했다.

김보경(55) 부녀회장은 “마을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대동회(회장 이장)라는 모임이 있어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고 결정한다”며 “김봉규 회장님과 이춘성 이장님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셔서 풍기읍에서 가장 모범마을”이라고 말했다.

김순희 여성노인회장은 “마을에 오래 산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짓고 산다. 
예전에 1950-60년대에는 농사짓는 사람보다 직조공장에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봉임(82) 할머니는 “풍기 인견은 1.4 후퇴 때 이북사람들이 서부리에 정착하여 공장을 차렸는데 베틀 5만대에 6만명이 베를 짜 우리나라 양복 속지의 80%를 생산했다”고 말했다.

신옥선(75) 반장은 “예전 마을모습은 참남배기를 등지고 토담집이 즐비했고, 굴다리에서 북부초등학교로 가는 길에는 돌이 많이 뒹구는 길이었다”면서 “인삼산업 등으로 일자리가 많은 마을”이라고 했다. 

이 마을 정호영(63) 씨는 “참남배기 추억이 많다”며 “단오날은 그네를 뛰며 놀았고, 장수하늘소가 많아 놀잇감으로 가지고 놀았다.
최근 이춘성 이장과 마을 사람들이 참나무를 다시 심어 참남배기 복원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서부3리 사람들>
 

▲이춘성 이장
▲김봉규 노인회장
▲김순희 여노인회장
▲김보경 부녀회장
▲김기문 철도대책위원장
▲윤용규 전 노인회장
▲김봉임 할머니
▲신옥선 씨(반장)
▲하성진 노인회총무
▲정호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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