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소설가·본지논설위원)

어느 나라든 대통령이 국민에게 하는 인사말은 인상적이다. 미국 뉴 프런티어의 기수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봐 달라’고 한 말은 오늘날에도 자주 언급된다. 민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되새겨 볼 말인 것 같다.  

우리의 19대 새 대통령도 홍은동 자택을 나서 광화문 광장에 이르러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고 말했는데 갈망해 온 사회상을 제시하여 우렁찬 박수를 받았다. 귀 따갑게 들은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첫 걸음을 비로소 내딛는가 싶어 기대가 매우 크다.

당연히 지켜져야 할 원칙들이 권력층에 의해 허물어지고 이지러져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누구나 인정하는 정의로운 결과’라는 말이 금방 새 세상이 되기라도 하는 듯 들뜬 감정을 자아낸다.  잠시 입을 굳게 다문 뒤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겠다’고 한 대통령의 말도 두고 볼 일이기는 해도 적잖게 감동적이다. 국민이 무엇을 간절하게 바라는지를 알고 있어 우선은 든든하다. 

대통령이 말한 ‘빈손’은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갈 때에도 가진 것 없이 맨몸뿐인 삶의 보편적인 과정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작은 주먹을 꼭 쥔 채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고고한 울음을 쏟는 신생아도, 생명이 사라져 흉해 보일세라 수의 입힌 차가운 몸도 빈손인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들춘 것은 아닌 것 같다. 현실 정치인으로서 삶의 무상함을 거론할 까닭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겠다’는 말은 아마 대통령으로서 청와대에 들어갈 때 서민이듯 오년 뒤에도 맨손으로 북악산 기슭을 떠나겠다는 맹세일 것이다.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날 때까지 금전적인 부정을 경계하겠다는 다짐이 틀림없다. 누구든 권력의 끈을 잡고 비리를 저지르면 엄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믿는다. 자신은 물론 가족이나 친인척, 지인이 권력에 기대어 치부를 하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보인 것 같다. 

특정인이나 기업에 특혜를 주고 은밀히 대가를 챙기는 고질병 같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단호한 의지라고 믿고 싶다. 당선에 기여한 공로에 연연하여 사적 감정에 이끌린 낙하산 인사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일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 ‘특권은 없다’는 선포가 아닐까 싶다.

청와대 언저리에 부정이 얼씬도 못하도록 매서운 눈으로 밤낮없이 삼엄한 사주 경계를 하겠다는 선언이 분명해 보인다. 어디에 있든 서민으로 남겠다는 말일 것이다.  

역대 대통령치고 청렴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있을까. 권력을 쥔 손을 기업에 내밀면서 은근히 압박하여 거금을 거둔 대통령도 있었던 것 같다. 대통령 자신은 깨끗하다지만 가족이나 친인척이 부정을 자행하여 옥살이를 한 예도 있다.

가족이 수인이 되어 죄 값을 치르는 처지였는데도 대통령은 정말 그 그릇된 소행을 몰랐을까.알면서도 모른 체한 경우도 있을 것 같다. 몰랐다면 무능했고 눈 감아 주었다면 부정을 도운 방조자가 되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대통령이 광장에서 말한 ‘빈손’은 정직과 청렴과 사회정의를 의미한다. ‘빈손’은 대통령의 정치 신념이자 정직과 청렴과 정의를 상징한다. 따져보면 빈손 얘기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나라를 이끌 지도자라면 청렴과 정직은 기본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권력층의 현실을 말해준다.  

그런데 말은 쉽다. 말로야 무슨 일인들 못할까. ‘빈손’의 성패는 실천에 달려 있다. 정권마다 초기에는 온갖 말을 쏟아내어 기대감에 잔뜩 부풀게 했지만 어느 덧 초심은 온 데 간 데 없고 소위 권력형 비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 그 때마다 당사자들은 관례와 무대가성을 내세우면서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    

대통령은 물론 측근부터 뼈를 깎듯 실천적으로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으면 ‘빈손’은 말잔치로 끝난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당한 결과’라는 복음처럼 들리는 말도 솔선하는 실행이 따르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앞섰던 대통령들의 말로 끝났던 전철을 밟을 뿐이다. 

또다시 좌절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대통령을 믿지 않을 것이다. 기대가 컸던 그만큼 실망의 수렁도 깊어 불신할 것이다. 귀가 솔깃한 달콤한 말로 기만한 대통령을 외면하여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빈말하는 대통령을 선택한 우리들 자신마저 미워하여 자괴감에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밝힌 ‘빈손’을 믿는다. 이번에는 말과 행동이 반드시 일치할 것으로 확신한다.올 때 ‘빈손’이듯 떠날 때도 빈손인 대통령에게 우리는 사랑과 갈채를 아낌없이 보낼 것이다.

대통령의 말쑥한 ‘빈손’을 두고두고 기억하면서 자랑스럽게 여겨 존경할 것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국민인 것을 축복으로 생각할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건강과 행복을 손 모아 빌 것이다. 

‘빈손’으로써 나라다운 나라를 이루어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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