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수필가, 시인, 본지논설위원)

「한국 사회에는 인재를 키워주는 풍토가 거의 없다. 다른 사람이 앞서가는 기미라도 보이면 철저하게 견제하고 방해해서 올라가지 못하도록 가로 막는다. 그래야 자기가 올라갈 가능성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친구가 잘 되는 것을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대신 은근히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앞선다. 누군가 먼저 승진하면 “그 자식 그거, 능력도 없으면서 열심히 손바닥 비벼대더니......”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위의 글은 일본인이 본 한국 사람의 심리를 적은 것이다. 한국에서 사업상 26년을 살아온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 라는 사람이 자기네 나라에서 우리를 흉보는 말이 아니고 한국 사람을 향해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펴낸 책 『한국, 한국인 비판』이라는 책에서 밝히고 있는 말이다. 그는 한국인이 친구나 아는 사람이 내 앞에 가는 꼴을 절대 못 보는 사람들이라며 그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예리한 통찰력에 감탄도 나왔고 부끄러운 부분을 들킨 것처럼 난감하면서도 이토록 적나라하게 당사자를 향해 포문을 열 수 있을까 싶어 은근히 부아가 나기도 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우리들의 한 면모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만들어지고 이어져 오는 우리 사회를 정확하게 간파한 그의 말을 전혀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없다.

「어느 학교 동창생들이 행정고시를 통과하고 공무원 사회에 포진해 있다고 하자, 대개 과장급 정도가 되면 능력의 우열이 서서히 판가름 나기 시작한다. 그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많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나머지 동창들은 그 친구가 장관 자리까지 오르도록 혼연일체가 되어 밀어 준다. 그러다가 정말로 그가 장관이라는 지위에 오르게 되면 나머지 친구들은 그날로 모두 사직서를 낸다. 장관이 된 친구가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에 어떤 특혜를 주고 싶어 할지도 모르고, 친구에게 마음 놓고 지시를 내리기가 껄끄러울 것이라는 배려 때문이다. 일본 관료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는 또 그 책에서 자기나라 관료들이 인재를 키우는 모습을 위와 같이 밝히고 있었다. 이 책 외에도 일본인들은 좀 부족하거나 흉이 있는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올라가게 되더라도 그가 그 자리에서 성공하도록 끝까지 돕는 국민성이라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그의 말을 과장(誇張)이라거나 자화자찬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참으로 생각할 바가 많은 것이다. 선거를 통해서 지지하는 자를 위해 학연, 혈연, 지연이 똘똘 뭉쳐 특정인을 선거에서 이기도록 안간 힘을 쓰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이는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르지는 않아 보이긴 한다. 그런데 당선 이후가 문제이다. 일본인의 잣대로 보면 당선 시킨 후에는 공신들이랄까 공로자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공로자들이 주변에 있으면 은혜를 갚기 위해 특혜를 주려고 눈이 흐려지거나 판단을 그르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풍토는 당선자가 공직을 수행하는 동안 보은에 얽매이지 않고 비리를 생산하지 않으며 소신껏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이다. 반대로 당선자의 주변에 공신들이 포진해 있을 경우를 상상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는 한국에서 선거후 당선자 주변에 공신이 남아 당선자를 보은에 얽매이게 한다는 말이나 고위공직자 주변에 학연이나 혈연을 내세우는 세력이 있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선거 후 누가 무슨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우스개로 점을 치는 민심들이 있다는 것은 오랜 세월 당선자 주변에 공신이 맴도는 것을 많이 봐 왔다는 말일 것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도 과거 정권에서 지지하는 자를 당선시키고 측근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깨끗한 모습을 종종 보기는 했다. 그래서 ‘이케하라 마모루’ 의 자기네 자랑은 전적으로 그들만의 것은 아니다.

방금 우리는 대선을 치렀고 대통령의 공신들이 스스로 권력에서 멀어지며 백의종군한다는 기사를 보면서 기대감과 희망을 느낀다. 비단 대선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머지않아 지방 선거, 총선거가 또 기다리고 있고 각 지방에서도 크고 작은 단체의 선출이 있을 것이다.

지지하는 자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고, 또는 가능성이 있는 자를 성심껏 밀어주어 뜻을 이룬 후에는 그의 성공을 빌면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풍토가 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선거의 마무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도약의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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