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환경개선에 도움주고
독거노인에게 소일거리 제공

풍기읍 한솔아파트에는 135세대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중 노인거주자는 40여 세대 50여명으로 4명당 1명이 노인이다. 매년 5%씩 증가하고 있다.

현관문만 닫아버리면 세상과 단절되는 생활, 눈과 귀가 어두운 독거노인들이 방안에서 어떤 일을 당하거나 사망해도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한솔아파트 고일규(72) 노인회장은 어르신들의 소일거리에 참여하고 공동체가 함께 하는 문화를 형성해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노인일자리창출을 위한 ‘시범경로당’으로 지정받았다.

한솔아파트에서 24년째 슈퍼를 운영하는 고 회장은 주문배달하거나 지나는 길에 이웃에 방문하면서 지켜본 일에 대해 말을 꺼냈다.

“추운겨울에 어쩌다 들리면 난방비가 아까워서 보일러도 가동하지 않고 있어요. 냉방에 전기장판 하나 켜고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어 쓰시고 덜덜 떨며 누워계신 모습이 참 안타까웠어요”

고 회장은 어쩌다 걸려오는 자녀들의 전화를 받지 못할까봐 이불 밑에서 전화기만 꼭 쥐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안쓰러워했다. 그동안 어르신들은 허전하고 무료한 시간을 덜기위해 아파트 주변공터에 퇴비와 거름을 주고 작은 텃밭을 일궈왔다. 이 때문에 모기, 파리가 생기고 악취로 주민들과 마찰이 생겨났다.

이에 얼마 전 시의 지원과 주변의 도움으로 노후 된 회관을 수리해 한솔경로당으로 인가를 받고 어르신들은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 이중 가장 고령자인 박승찬(98) 어르신에게는 아파트에서 매월 5만원을 드리고 회관 옆 청소를 부탁했다. 아파트 쓰레기하차장 개축이후에는 관리 책임자로 임명했다.

고 회장은 “어르신이 관리하고부터는 쓰레기장이 깔끔해지고 주민들도 협조 잘 된다”며 “어르신은 폐지와 재활용품을 분리해 2km 가까운 고물상까지 리어카에 싣고 가서 팔고 약간의 돈을 받으시며 좋아하신다”고 했다.

이렇게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고 회장은 경로당 회원들을 위해 주위의 일자리를 생각해 보았다.

▲ 내 텃밭과 마을공동체
아파트 옆 600여 평에 어르신들의 텃밭이 생겼다. 텃밭이 된 이 땅은 고 회장의 아이디어다. 아파트경로당 노인회원의 공동일터도 되고 아파트 주위를 훼손시켜서 주민들과 분쟁도 없어지겠다는 생각에서 고 회장은 풍기 분회장과 상의해 대한노인회 영주지회에 자문을 받았다. 이후 풍기읍 사회복지과와 시청 사회복지과의 지원으로 땅 주인과 임대계약을 맺고 한솔경로당 공동 텃밭으로 경작하고 있다.

“밭을 갈고 골을 타고 비닐을 씌운 후 개인능력에 따라 2골, 3골 분배했습니다. 1번부터 18번까지 팻말을 만들어 혼선이 없게 했죠. 농자금은 시에서 50만원을 지원해주고 추가비용은 자부담으로 했습니다”

텃밭에 고구마, 땅콩, 참깨, 들깨 등 각종 채소가 심겼다. 먼저 심은 작물에서는 싹을 돋아났다. 술과 담배를 벗 삼던 어르신들은 이제 텃밭으로 나가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전 9시 30분 풍기읍 한솔아파트 어르신들이 아파트 옆 텃밭에서 하나 둘씩 모였다. 이날은 고구마 모종을 심는 날. 일찍 나온 어르신들은 자신이 심은 농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살폈다. 고일규(72) 노인회장과 황태현(67) 아파트회장이 고구마 모종을 가져왔다. 고 회장이 심는 방법을 안내하고 어르신들은 유심히 그 모습을 봐라봤다.

고구마 모종을 심기 전 한쪽에서 자신의 텃밭을 바라보던 한상국(72) 어르신은 “먼저 심은 상추는 내 것이 제일 잘 자랐네. 땅콩 싹도 나고. 허허”하고 웃어보였다. 옆에서 흙을 고르던 정창화(77) 어르신은 상추, 땅콩, 깨를 심었다면서 무료했던 일상에서 재미를 붙일 수 있는 일들이 생겼다고 고마워했다.

고 회장은 “어른들이 방안에만 웅크리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생활하셨으면 좋겠다. 박승찬 어른이 좋은 사례가 된다”며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경로당에 냉장고, 에어콘이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같이 공동 식사하는데 더운 날씨에 식중독이 걱정되고 일하고 시원한 물 한잔이라도 마시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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