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가흥1동)

내 동생 민희야!
너와 내가 소원해진 지도 일년이 되었구나. 작년 이맘 때의 부끄러운 기억이 되살아나 무슨 말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당시 건강하던 아버지께서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쓰러져 넉 달간 입원해 계시다가 막 퇴원하신 후였지.

전신 마비가 되다시피한 아버지 곁에는 늘 누군가가 보살펴 드려야 했기에 어머니와 우리 형제는 정신적인 충격과 고달픈 간병에 몸과 마음 모두 지쳐 있었을 때였어.

어머니마저 아파서 병원에 가셔야 했던 어느 날 너와 나는 누가 대구에 가서 아버지를 보살필 지에 대해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지.

이 과정에서 너의 사소한 추궁 한 마디가 내 자존심을 건드렸고 나는 이성을 잃을 만큼 화를 내며 공격했어.

넌 처음엔 당황했지만 계속된 나의 공격에 한 술 더 뜬 반격도 만만치 않았어. 그럴수록 분노의 물길은 더 거세어지고 화가 화를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지.

아! 그때 왜 알지 못했을까? 나를 분노케했던 너의 언행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는 것을...그후 한동안 너와 주고 받던 화의 화살이 되살아나 꽂히는 바람에 고통스러웠다.

이전의 우리는 한 번도 싫은 말이 오간 적이 없었는데 단 한 번의 불같은 화로 심한 화상을 입고 말았다.

화는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화상을 입힌다는 것을 화를 먼저 낸 사람의 화상이 더 크고 깊다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다.

화가 누그러저 갈 즈음 차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먼저 손을 내밀 수 없었다. 두 달 후 너가 먼저 찾아옴으로써 냉전은 끝나 보였지만 서로가 마음의 상처와 앙금은 남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때의 갈등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상처를 건드리기 싫어서 깊이 감추어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어 치유하고 진정으로 화해하고 싶다.

민희야! 틱낫한의 "화"를 읽었다. 읽으면서 수없이 가슴을 쳤다. 다 읽고 나서 한참 멍한 상태가 되었다.

요즘도 아무 장이나 펴 보는데 읽을수록 마음에 와 닿는 의미가 깊어진다. 일년 전에 "화"를 읽었더라면 그때 불의 바다에 함부로 뛰어들지는 않았겠지.

너 또한 그책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바다에 끌려 들어가서 같이 허우적대지는 않았겠지. 화의 정체를 알고 화를 순리대로 다스리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사소한 말 한 마디로 인해 둘 다 고통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야 깨닫게 되었지만 너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있던 화의 씨앗이 고통을 일으킨 주요 원인이었어.

쉽게 화를 냈던 것은 나도 모르게 시기 미움 절망 두려움 자존심같은 화의 씨앗에 오랫동안 물을 줬기 때문이었어.

저자는 "화"는 마치 우는 아이와 같다. 무언가 불편하고 고통스러워서 울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어 한다" 라고 정의하면서 어머니가 아기를 돌보듯 화를 품에 안고 달래야 한다. 아기가 왜 우는지 알아야 달랠 수 있듯 화의 뿌리를 먼저 살펴야 한다. 화를 품에 끌어 안은 채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만 해도 화라는 아기는 이내 편안함을 느낀다" 라는 처방을 내린다.

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나에게 화를 내는 사람을 연민의 정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응징의 대상이 아니라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매력은 화를 다스리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의식적인 호흡과 보행이다.

의식적으로 호흡하면 자신과 주위의 모든 것을 자각하게 된단다. 발이 땅에 닿는 그 순간을 자각하고 호흡을 자각하며 걸어 보라고 한다.

그러면 걸으면서 명상하게 되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화에서 평화로 바꾼다는구나.

이 책의 시같기도 하고 잠언같기도한 한 구절 한 구절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깊은 명상의 시간 이었어.

그러나 상처입은 영혼이 위안을 받는 선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는 많이 변했다.

가족에게는 화가 들어있지 않은 음식을 먹게 해주고 지치도록 걷는 일이 즐거워졌다. 무엇보다도 화를 덜 내게 되었다.

화를 참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민희야! 너에게 "화"를 보내줄게. 읽고나서 우리가 그동안 묻어두었던 '화'를 풀어보자. 그리고 아름답게 화내는 법 건강하게 화를 다스리는 법에 대하여 대화를 나눠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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