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 147] 단산면 옥대3리 ‘금대’

금대마을 전경

천년 수령 은행나무 두 그루, 마을의 역사
봄 향기 좋은 농촌관광코스 10선에 선정

단산면 ‘금대’ 가는 길
금대마을은 백두대간 고치령 가는 길목 첫 번째 마을이다. 영주 서천교사거리에서 회헌로를 따라 순흥·단산 방향으로 가다가 동촌교차로에서 사천·단산방향으로 우회전 한다.

단산면소재지 옥대삼거리에서 고치령 방향으로 700m 가량 올라가면 천년의 풍상을 견뎌 온 은행나무 두 그루를 만나게 된다. 이 마을이 봄 향기 좋은 마을 ‘금대’다.

지난 16일 금대에 갔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홍병창 이장, 박태환 노인회장, 김기수 어르신, 김남숙 부녀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사람들을 만나 금대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마을 표석

 역사 속의 금대 마을
금대마을은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에 속해 있다가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구분할 때 순흥도호부 일부석면(一浮石面) 지곡리(枝谷里.금대)가 됐다.

조선 말 1896년(고종33년)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순흥도호부가 순흥군으로 격하되고, 일부석면이 단산면으로 개칭되면서 경상북도 순흥군 단산면 지곡리가 됐다. 이 무렵 ‘옥대리’가 행정구역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마을 뒷산 능선이 임금님의 허리띠 같다 하여 옥대리(玉帶里)라고 했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을 개편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영주군으로 통폐합하고, 동원면을 단산면에 통합시켰다. 이 때 단산면의 옥대리(원옥대), 지곡리(금대), 성곡리(모산)를 옥대리로 통합했다가 해방 후 1,2,3,4리로 분리했다.

이 마을 김기수(81) 어르신은 “조선말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단산면’이 새로 생겼다”면서 “단산이란 단곡(丹谷)의 단(丹)자와 병산(屛山)의 산(山)자를 조합하여 단산(丹山)이라 했다”고 말했다.

예쁜치매교실 어르신

지명 유래
‘금대(金臺)’는 조선 때 지곡(枝谷)이라 불렀다. 고치령으로 가는 길과 부석으로 가는 갈림길에 있다 하여 분기(分岐)할 지(枝)자를 써 ‘지곡(枝谷)이라 했다고 한다.

또 일제 때는 ‘안안질’이라고도 했다. 장터 지역을 ‘안질’이라 하고 금대를 ‘안안질’이라 한 것은 두 마을이 원래 한 마을이었다는 뜻이다. 안질은 안지(雁池)에서 유래됐다.

이곳의 지형이 ‘기러기가 헤엄치는 모습’과 같다 하여 기러기 안(雁)자에 못 지(池)자를 써 안지(雁池)라 했는데 발음이 변해 ‘안질’이 됐다고 한다. 장터 마을은 일제 무렵에 생겼는데 아호(鵝湖)라고도 했다. 아호는 거위 아(鵝)자에 호수 호(湖)를 쓰는데 안질(雁池)의 별칭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면 ‘금대란 지명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다. 이 마을 박동환(62) 씨는 “전설에 의하면 마을 뒤 두들을 ‘금반형지(金盤形地)의 명당 터’라고 전해온다”며 “예전(조선 말-일제 초)에 마을을 지극히 아끼고 풍요한 마을을 기원했던 (신씨 성을 가진) 선비가 살았는데 그 선비가 ‘금반형지’에서 유래하여 마을 이름을 ‘금대(金臺)’라 했다는 구전이 그럴 듯하다”고 말했다.

500년 동수나무

은행나무의 전설
금대마을에는 마을을 지키는 은행나무 암수 한 쌍이 마주보고 있다. 표석에는 수령 700년(1982년)으로 새겼으나 마을 사람들은 ‘실제 천년이 넘는다’고 말한다.

은행나무 옆에 사는 최우철(70)씨는 “구전에 의하면 이 은행나무가 세 번 다래덤불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오래된 전설이 있다”고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여쭈니 박동환씨는 “옛날 정축지변으로 순흥이 화를 입었을 때 이 마을도 폐허가 됐다는 구전이 있다”며 “나라에 변고가 있어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면 은행나무는 다래덤불 속에 잠기고, 사람이 다시 와서 살기 시작하면 은행나무도 덤불 속에서 나오게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금대녹색농촌체험마을

무안박씨 금대 입향
무안박씨(務安朴氏.시조 박진승)가 금대에 살게 된 것은 29세손 보익(普翼.1805-1893)이 연화동에서 이곳으로 옮겨 터 잡음으로써 시작됐다. 이 마을 박태환(80) 노인회장은 “보익 고조부님의 아버지인 현찬(顯瓚) 할아버지는 원래 봉화 골래에 사셨는데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연화동으로 오시게 됐다.

보익 선조님은 연화동에서 금대로 이거하여 입향조가 되셨다”며 “선조께서 금대로 오신 것은 대략 1830년경으로 추정되어 무안박씨가 금대에 세거한지는 어언 200년이 됐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또 “1960년대까지 10여호가 살았으나 산업화 이후 도시로 나가고 지금은 5집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옥대천 맑은물

금대녹색농촌체험마을
2017년 봄. 단산면 금대마을이 “봄향기 느끼기 좋은 농촌관광코스 10선에 선정됐다”고 떠들썩하다. 또 영주시 진입 관문에 있는 대형스크린에는 “봄향기 느끼기 좋은 금대녹색농촌체험마을에 가보자!”라는 광고가 뜨고 있다. 요즘 금대체험마을로 가는 길은 봄꽃이 지천으로 널려있고, 산천은 모두 연둣빛이다.

김남숙(60) 체험마을위원장을 만났다. “봄향기 좋은 금대마을에 오시면 봄나물캐기 등 봄의 체험과 직접 뜯은 산나물비빔밥 등 봄 음식을 맛볼 수 있다”면서 “마을 앞 냇가에는 벚꽃이 만발한데 흐르는 여울물에 발을 담그면 고향의 봄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조귀순(60) 사무장은 “금대체험마을은 사계절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내손으로 만드는 웰빙강정을 비롯하여 어머니의 맛을 닮은 전통음식, 땀으로 배우는 농촌체험, 소수서원에서 부석사로 가는 역사문화탐방 등 먹거리 체험거리가 수두룩하다”고 소개했다. (체험문의 054-638-2752)

천년수령 은행나무

옥대 처녀와 금대 총각
예전에 옥대 처녀와 금대 총각이 애틋한 사랑을 나누다가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영주시사에 나온다. 금대경로당에서 택호가 옥대댁인 김광순(84) 할머니를 만났다. “옥대에서 금대로 시집오셨냐?”고 여쭈니 “그렇다”고 했다.

‘아, 전설의 주인공을 만났구나’라는 생각에 더 가까이 다가앉아 옛 얘기를 들었다. 할머니는 “당시 23살 옥대 처녀가 한 살 아래 금대 총각을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고 하면서 “예로부터 옥대와 금대는 서로 마주보는 마을인데 혼인한 사례가 여럿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금대 총각 이희성(83.영천이씨) 어르신은 “원래 부석면 소천리에 살았는데 9살 때 아버지를 따라 금대에 와서 살게 됐다”며 “혼인이란 하늘이 정해 준 인연인데 좋은 신부감을 만나러 금대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금대마을 회관

금대마을 사람들
마을 앞에 있는 옥대3리 금대동(金臺洞) 표석에서 100여m 들어가면 느티나무 광장이 나오고 그 옆에 경로당이 있다. 홍병창(62) 이장은 “동수목 느티나무는 동신(洞神)이면서 마을의 역사”라며 “마을 앞을 흐르는 옥대천을 예전에는 아계(鵝溪)라 불렀는데 태소백 물을 담은 유서 깊은 물이며, 한국에서 가장 맑은 물”이라고 자랑했다.

김금향(85) 할머니는 “새댁시절에는 보릿고개를 넘으며 고생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살기 좋은 세상이 됐다”며 “나라가 발전하고 노인이 편안한 세상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금대건강교실 이진철(여.73) 회장은 “13년 전 전국을 돌아다니다 금대마을에 귀촌하게 됐다”며 “단산보건소에서 주2회 예쁜치매예방교육을 해 주셔서 고맙고 감사하다. 장욱현 시장님 만나시거든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해 달라”고 말했다.

전옥단(80) 할머니는 “회관 앞에 있는 느티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동수(洞守)나무”라며 “해마다 정월대보름날 동신제를 지내면서 마을의 단합과 풍년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금반형지의 명당터

한동희(80) 할머니는 “고향자랑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각기 다른 성씨들이 모여 살면서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사는 살기 좋은 금대마을”이라고 말했다.

새마에서 금대로 시집와 지금까지 산다는 박순기(78) 할머니는 “아주 옛날부터 1970년대 초까지 마을에 서당이 있어 한학을 가르쳤다”면서 “금대마을 출향인들은 똑똑하고 공부를 잘 해서 각계각층 지도자에 오른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마을회관에서 나와 최우철 씨와 이희성 어르신댁으로 갔다. 김광순 할머니가 빡빡하게 타 주신 진땡홍삼차를 팥죽 먹듯 마셨다.

두 분은 벽에 걸린 사진을 가리키며 “우리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라며 자랑했다. “이 집터가 좋은 것 같다”고 했더니 “집 앞 문전옥답이 우리 꺼”라며 “모든 게 성황신(동수나무)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단산면 옥대3리 금대마을 사람들>
 

홍병창 이장
박태환 노인회장
김기수 전 노인회장
김금향 할머니
이희성 어르신
김광순 할머니
한동희 할머니
전옥단 할머니
박순기 씨
최우철 씨
김남숙 녹색마을위원장
조귀순 금대마을사무장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