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136]부석면 소천4리

소천4리 전경

태소백 정기(精氣) 어린 천혜의 땅 소천
거까뭇재의 전설, 100년 역사 소천장

 

부석면 소천4리 가는 길
영주에서 부석으로 가는 길은 봉화통로 상망교차로에서 보름골-진우-상석-부석으로 가는 길이 있고, 서천교 사거리에서 장수고개-동촌-사천-단산을 거쳐 부석으로 가는 길이 있다.

1930년대 풍기-순흥-단산-부석(소천)으로 가는 신작로가 생기기 전에는 구루마가 다니는 길 밖에 없었다고 하니, 소천은 산중도방(山中道傍)이라 할 수 있다.

지난달 21일 소천4리에 갔다. 부석면 노인회관에서 송준호 이장, 이천수 면노인회장, 박영숙 부녀회장, 남기하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여러 마을사람들을 만나 소천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송준호(46) 이장은 “소천리는 하천을 경계로 1리에서 6리까지 나누어졌다”며 “소천4리는 면소재지를 가로지르는 하천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소천장, 거까뭇재, 동구산 등이 있다”고 말했다.

 

애향부석 표석

역사 속의 소천리

부석면소재지 지역은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순흥도호부 삼부석면(三浮石面)에 속했다. 순흥지에 보면 당시 삼부석면에는 임곡(숲실)·대율곡(한밤실)·방동(부석사 방골), 독유동(獨遊洞.면소마을)·사문단(사그랭이)·호문단(노곡)·마흘천(남대리)·의풍 등 8개 마을이 있었는데 ‘독유동’이 현 면소재지 마을이다.

1896년(고종33년) 조선말에 와서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순흥부가 순흥군으로 격하되면서 삼부석면은 봉양면(鳳陽面)으로 개칭되고, 독유동(면사무소 지역)은 하사문리에 편입된다. 그 후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순흥군의 봉양면(부석사, 임곡리), 용암면(화감, 감곡), 도강면(도탄, 보계)이 ‘부석면’으로 통합됐다.

부석 사과탑

이 때 봉양면의 북지리 일부, 두들마, 봉래동, 상사문리, 하사문리를 통합하여 ‘소천리(韶川里)’를 새로 만들었다. 당시 동명을 ‘소천리’라고 한 것은 소천(두들마)에 저명한 정옥이란 선비가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 후 1980년 영풍군 부석면 소천4리, 1995년 영주시 부석면 소천4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천4리 사람들

지명 유래

소천(韶川)이란 지명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다. 당시 조선총독부가 펴낸 부석면 행정구역 명칭에 보면 「봉래동(蓬萊洞)의 원래 이름이 소천동(韶川洞)이었다」라는 기록에서 조선 후기 두들마·봉래골 지역의 명칭이 소천(韶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영주시사에 보면 「조선 숙종-영조 때 황해감사를 지낸 정옥(鄭玉.1694-1760)이란 선비의 호를 따 마을이름을 우천(牛川)이라 불렀다. 그 후 이곳 선비들이 부석사와 관련하여 ‘봉황은 풍류(風流)를 좋아 한다’고 하여 풍류이름 소(韶.아름다울 소)자를 써 우천을 소천(韶川)으로 개칭했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우천 정옥은 청주인으로 약포(藥圃) 정탁(鄭琢.1526-1605)의 5대손이다.

영주향토지에 보면 「조선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정탁이 소천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청주정씨 부석문중에 따르면 「약포의 맞며느리 하동정씨가 남편이 세상을 따나자 1600년 경 가솔을 거느리고 소천 두들마로 이거하여 세거지지를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부석면노인회관

소천의 산천(山川)

의상(義湘)이 초암사 터에 초막을 짓고 절집 자리를 찾아 소백산 일대를 누볐다. 자개봉 능선을 넘어 봉황산을 바라보던 의상이 무릎을 탁 치며 “아! 여기로다. 고구려의 말발굽과 백제의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땅을 드디어 찾았노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부석의 관문인 거까뭇재에 올라 소천리를 내려다보면 소태백산줄기가 마을을 감싸 안아 병풍을 두른 듯하다. 송준호 이장은 “소천은 소태백 정기(精氣)가 어린 천혜의 땅”이라고 말했다.

순흥지에 보면 「마아령(馬兒嶺)에서 발원한 물과 임곡 왕비골에서 내려온 물이 합쳐진 대율계(大栗溪)는 자개봉(紫蓋峰) 북쪽에서 발원하여 사문촌(沙文村)을 지나 동남으로 흘러 온 사천(斜川)과 독유동 앞 고산(孤山) 북쪽에서 합류한다」라고 했다.

여기서 ‘마아령은 마구령, 대율계는 임곡천, 사천은 낙하암천, 독유동은 면소재지마을, 고산은 지금의 동구산’를 말한다. 이천수 면노인회장은 “소천은 소태백산맥이 철옹성처럼 감싸고 있어 풍수해의 피해가 전혀 없는 축복의 땅”이라고 말했다.

 

거까뭇재 성황당

거까뭇재 성황당

소천4리에 있는 거까뭇재성황당은 영주에 현존하고 있는 33개 성황당 중 건립연대와 성황여신의 화상이 보존된 유일한 성황당이다. 성황당 서쪽 벽상에는 「韶川巨釜峴城隍祠記 光緖五年己卯五月初四日(소천거부현성황사기 광서5년기묘5월초4일)」라고 쓴 기문이 있다.

성황당의 이름은 ‘거부현성황당’이다. 거부현(巨釜峴)이란 이곳 산세가 가마솥을 엎어 놓은 듯하다 하여 클 거(巨)자에 가마 부(釜)자, 재 현(峴)자를 써 ‘거가마재’라 부르다가 발음이 변해 ‘거까뭇재’가 됐다고 한다. 또 기문의 연대가 광서5년 즉 1879년으로 나타나 있어, 그 이전부터 성황당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구산

그 후 2001년 중수기에 보면 「韶川里(소천리) 守護(수호) 巨釜峴城隍女神(거부현성황여신) 김씨존상(金氏尊像) 봉안고유제(奉安告由祭)」란 기록이 있다. 이는 성황신인 ‘김씨부인(金氏婦人)’의 여신화상(女神畵像)이 낡아 화상을 새로 그려 봉안하고 고유제를 지냈다는 내용이다.

면노인회 이정식(75) 사무국장은 “성황제는 정월보름날 자시에 소천3,4리가 합동으로 지낸다”며 “헌관, 축관, 도가 각1명이 장닭, 쇠고기산적, 삼실과, 삼채소, 백설기 등 제물과 맑은술을 올린 후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부석중학교

100년 역사 ‘소천장’

예전에 정월대보름날 거까뭇재성황당에서 성황제를 지낸 후 1·6일 날 첫 장이 섰다. 우리고장에서 5일장이 서기 시작한 것은 1914년 순흥장이 처음이고, 두 번째가 소천장이다. 소천장은 1919년부터 열리기 시작하여 단산, 의풍, 영월 등 산간오지 주민들의 물물교환 장소로 장이섰다.

해방과 6.25를 거치고, 1960-70년대까지 호황을 이루다가 1990년 이후 시골 5일장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소천장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기자가 설을 1주일 앞 둔 지난달 21일 오전 소천장에 갔을 때 장사꾼 10여명이 옷, 채소, 어물, 잡화 등 난전을 펴 놓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각(82.전 원주대덕교회 목사) 용암2리노인회장은 “어릴 적 부석을 ‘삼부석’이라 불렀으며, 어른들이 장 갈 때는 ‘소천장’ 간다는 말을 했다”면서 “당시 소천장에는 바지저고리 입은 사람들이 북적였다”고 말했다.

 

소천4리 사람들

면노인회관에 어르신 10여명이, 그 옆 여성회관에는 할머니 20여명이 모여 성황이다.

권미순(74) 여성회장은 “요즘은 일철이 아니라 회관에 모여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정 나누기를 하고, 건강체조를 하거나 4패로 나누어 화투놀이를 한다”며 하하호호 웃었다. 이보윤(75) 여성총무는 “송준호 이장님을 비롯한 박영숙 부녀회장님, 이천수 노인회장님, 남기하 지도자님께서 후원을 많이 해 주셔서 노인회가 잘 돌아간다”고 말했다.

박영숙(65) 부녀회장은 “어르신들께서 서로서로 화합하고 우애있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면서 “권미순 회장님과 이보윤 총무님께서 적극적이셔서 늘 성황중”이라고 말했다.

어르신들께 “소천의 옛 모습을 말씀해 달라”고 청하니, 이선열(90) 할머니는 “72년 전 18살 때 우곡에서 소천으로 시집왔다”며 “당시 면사무소 쪽 도랑가에 초가집 몇 채 띄엄띄엄 있는 청빈한 마을이었으나, 소천장이 번성하면서 점방과 집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남영자(90) 할머니는 “60-70년 전 소천 5일장에는 마락, 남대, 의풍, 노루목 사람들이 잡곡이나 약초를 가지고 와서 팔고 성냥, 비누, 양말 등을 사갔다”며 “6.25 이후 나온 나이롱양말은 정말 인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남기하(53) 새마을지도자는 “마을 초입에 있는 사과탑은 새천년(2000)을 맞이하여, 20세기 후반 부석에 부(富)를 심어준 사과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며 “부석은 사과농사가 으뜸이고 고추 콩 등 밭농사를 주로 한다”고 말했다. 이천수 회장은 “지금 소천은 소천장의 부활을 위해 유만수 발전협의회장 등 단체장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칭송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부석면 소천4리 마을 사람들>

송준호 이장
이천수 부석면노인회장

 

박영숙 부녀회장
남기하 새마을지도자
권미순 여성노인회장
이보윤 여성노인회총무
이선열 할머니
남영자 할머니
이정식 면노인회총무
김각 용암2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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