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133]상망동 단운

 

▲ 안단운 전경

경주이씨 우식(雨植) 후손 300년 세거지
단운축산계, 품질관리 전국 우수상 수상

상망동 단운 가는 길
단운마을은 봉화통로 삽재 오르기 직전 좌측 야산 속에 숨은 마을이다.
영주시내 원당로에서 봉화통로로 향한다.

보름골 상망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500여m 쯤 가면 단운교차로가 나타난다. 단운마을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단운(丹雲)마을’ 표석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단운마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단운마을은 가장 안쪽에 안단운이 자리 잡았고, 동쪽으로 거랫단운 서쪽으로 큰 단운 등 세 개 마을로 구성돼 있다.

지난 1일 새해 첫날 단운마을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이욱동 통장, 이우섭 노인회장, 윤인자 부녀회장, 이동화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마을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 단운마을 표석

 

 

역사 속의 단운마을영주는 본래 고구려의 날이군, 신라의 내령군 등으로 불렀고 조선 태종 때 ‘영천군’이 됐다.
단운마을 지역은 1413년(태종 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영천군(榮川郡) 봉향리(奉香里) 망동방(望洞坊)에 속했다.

 

 

영주지에 보면 당시 봉향리에는 망동방(望洞.상망하망), 사례방(여고앞), 성저방(성밑), 광승방(광시), 화천방(동창산업), 원당방(원댕이) 지천방(지천) 등 8개 마을이 있었다. 이 때 ‘단운’이라는 지명은 기록에 없는 것으로 봐서 망동(望洞)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96년(고종33)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망동이 상망동과 하망동으로 분리되면서 단운은 상망동에 편입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천군의 봉향면·망궐면·가흥면을 영주면으로 통합하였고, 단운마을은 영주면 상망동에 편입됐다. 1940년 영주읍 상망동에 속했다가 1980년 영주시로 승격하면서 영주시 상망동 4통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거랫단운 전경

 

 

단운의 지명유래「단운마을」 표석을 보는 순간 ‘마을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마을의 유래를 알고 보니 ‘유서 깊은 마을’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이 마을 이제원(80) 전 노인회장은 “단운은 경주이씨 오랜 세거지지”라며 “선조님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말씀에 의하면 ‘하늘에서 신선이 붉은 구름을 타고 왕수나무 산등성이 옥녀봉에 내려와 마을을 개척했다’하여 붉을 단(丹)자에 구름 운(雲)자를 써 단운(丹雲)이라 했다”고 말했다.

 

 

‘그럼 붉은 구름을 타고 온 신선은 누구일까?’가 궁금하다. 경주이씨 알평 시조가 기원전 117년 지금의 경주 동천동 표암봉(瓢巖奉)에 강림한 신화가 전해 오고 있다. 그래서 붉은 구름타고 내려 온 신선은 ‘단운마을을 개척한 우식(雨植. 30세손) 선조가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게 됐다. 이것은 기자가 마을탐방을 하면서 감으로 얻은 상상이다.

 

▲ 큰단운 축산단지

안단운에 살고 있는 이욱동(50) 통장은 “오늘 새벽 옥녀봉 왕수나무 자리에서 정유년 해맞이를 했다”며 “마을 사람들 모두 모여 ‘조상에 감사하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대동축제를 열었다”고 말했다.

경주이씨 300년 세거지
단운마을은 경주이씨 집성촌이다. 경주이씨는 신라 초 표암공(瓢巖公) 알평(謁平)을 시조로 하고, 소판공(蘇判公) 거명(居明.시조의 36세)을 중시조로 하는 전통 명문거족이다.

단운의 경주이씨는 중시조 거명의 16세손 월성군(月星君)파 지수(之秀)의 후손들이다. 경주이씨 단운 입향 내력은 ‘1485년 문과(병과 2인)에 급제하고, 홍문관 교리와 성균 전적을 지낸 종준(宗準.1454-1498.22세)의 8대손 우식(雨植.1660-1722)이 1680년경 당쟁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안동 금제에서 영천 망동 산속으로 이거하여 몸을 숨기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경주이씨 단운문중 이명호(74) 대표는 “단운은 우식 선조께서 입향하신 후 그 후손들이 300여 년간 세거해 왔다”면서 “처음 터 잡은 곳은 안단운이었으나 자손이 번창하여 거랫단운, 큰단운, 봉화 범바우 등지로 세거지를 넓혀갔다. 1960년경에는 6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며, 지금도 30여세대가 안단운, 거랫단운, 큰단운, 화랑골, 범바우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 마을회관

 

 

단운문중의 인물들경주이씨 단운문중 인물로 이종준과 이홍준을 꼽는다. 용재 이종준은 성종1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의성현령, 사헌부지평, 의정부사인에 올랐으나,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물러났다. 사후 홍문관부제학에 추증됐다. 종준의 아우 홍준(弘準. 미상-1523년)은 1486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현대 인물로는 이용섭(81) 前 농협중앙회영주시지부장, 이동수(66) 연세대 교수, 이준태(63) 대한석탄공사 소장, 이준명(57) 대검찰청 검사, 이원희(58) 중부해경안전본부장 등이 있다. 이우섭(79) 노인회장은 “경주이씨 단운문중은 ‘학문을 중시하라’는 선조님들의 높은 뜻을 받들고 열심히 공부하여, 우리나라 각계각층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안동권씨 단운재사

 

 

단운축산계단운마을은 지역 최대 축산단지 중 하나로 단운마을 축산계(회장 이병수)가 조직되어 있다. 큰단운에는 현대식 시설을 갖춘 축사가 10여 동 있고, 주변 곳곳에 축사가 여럿 보인다.

 

 

이동화(50) 새마을 지도자는 “단운에는 단운사람들로 구성된 축산계가 있다”며 “회원 30명으로 조직된 축산계는 2천여 두의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봉근(65) 전 통장은 “단운축산계가 우수축산단지로 성장·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IMF·소값 파동 등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회원 상호간 소통하면서 잘 참고 견딘 덕분”이라며 “최근에는 축산물품질관리원 품질평가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여 ‘대한민국 최고의 한우 고급육 생산단지’로 이름을 올렸다”고 말했다.

 

▲ 단운경로당 어르신

 

 

합력·화합하는 마을마을회관 앞에 마을을 상징하는 큰 맷돌이 있다. 예전 농경시대 때 연자방아다. 옛 것을 지키려는 의지로 보인다. 이춘근(74) 노인회총무는 “단운은 청년회가 잘 운영되고 있는 게 마을의 자랑”이라며 “해맞이 행사, 정월대보름 윷놀이, 효도관광, 어버이날 행사 등 경로효친을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단운청년회(회장 이병규)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때 4H클럽으로 출범하여 지금까지 전수돼 오고 있다. 이봉근(65) 전 통장은 “단운청년회는 주민화합과 미풍양속 전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2013년 마을회관을 지을 때도 마을사람들과 출향인들이 힘을 모아 자부담 4천 500만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 안단운 큰샘

 

 

단운마을 사람들기자가 단운마을에 처음 간 것은 구랍 30일이었다. 거랫단운 골목길을 지나다가 장작을 패고 계신 이제원 어르신을 만났다. 단운의 지명유래와 경주이씨 입향 내력을 부탁드렸다.

 

 

골목길을 나오다 이제주(67)·김정희(67) 부부를 만났다. 이씨 부부는 “예전에는 30여 호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절반도 안 된다”며 “저기 산 밑에 큰샘이 있었는데 모두 이 샘물을 먹고 살았으며, 시내도 개울도 없는 마을이라 빨래도 샘에서 다 했다”고 말했다. 1일 오후 2시. 마을회관에 많은 분들이 나오셨다.

 

▲ 경주이씨 재사

이제원 어르신께서 마을의 유래를 적어오셨다. 이명호 문중대표는 경주이씨 입향 내력을 설명했다. 윤인자(58)부녀회장은 “정월대보름 마을 정기총회 때는 60여 가구가 모두 모여 잔치를 연다”며 “부녀회와 청년회가 합력하여 어르신들을 모시고 화합의 축제를 연다”고 말했다. 안월봉(83)·정옥자(78) 할머니는 “젊어서 고생한 보람으로 지금은 좋은 집에, 맛있는 음식에 호강하고 산다”며 “통장님, 부녀회장님, 청년회장님 모두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마을회관에서 나와 이봉근(65)씨의 안내로 마을을 둘러봤다. 화랑골에 가서 경주이씨 재사를 둘러봤다. 이씨는 “매년 10월 시제(時祭) 때는 수십명의 후손들이 참제한다”고 했다.
큰 단운 안쪽에 안동권씨 단운재사(경북 문화재자료 제476호)가 있다. 이 재사는 현감공파 재사로 1484년 현감공의 장례 후 건립한 재사라고 한다.

 

▲ 단운축산계

안단운에 가서 큰 샘과 옥녀봉을 둘러봤다. 이명호 대표는 “우식 선조께서 입향 당시 단운마을은 까치구멍 초가집 몇 채 있는 아주 청빈한 마을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마을 조옥란(68)씨는 “옥녀봉 왕수나무는 달 속의 계수나무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단운마을 사람들. 참 인정 많고 친절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상망동 단운 마을 사람들>

이욱동 통장
이우섭 노인회장
윤인자 부녀회장
이동화 새마을지도자
이제원 전 노인회장
이춘근 노인회총무
이명호 경주이씨 문중대표
정옥자 씨
이봉근 전 통장
이제주 씨
김정희 씨
안월봉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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