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131]가흥2동 서늘기

▲ 서늘기 마을전경
남원천, 죽계천, 홍교천 세내(三津) 합류
함창김, 청도김, 봉화정 삼성(三姓) 세거지

가흥2동 서늘기 가는 길
영주시내에서 서천교를 건너 곧바로 우회전하여 강변로를 따라 창진동 방향으로 간다. 창진교를 건너면 1천여 마지기 가량 되는 넓은 들이 펼쳐진다. 이어서 창진2건널목을 통과하면 높다란 돌에 「창보←창진동→서늘기」라고 새긴 표석이 보인다.

창진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400m 쯤 가면 왕지산(旺芝山)자락 따라 기다랗게 자리 잡은 마을이 ‘서늘기’다. 80여호에 200여명이 사는 마을이다. 지난 17일 오전 서늘기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이부업 통장, 권태종 노인회장, 김성순 부녀회장, 김대일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 마을 표석
역사 속의 서늘기(三津)
서늘기 지역은 1413년(태종 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영천군(榮川郡) 망궐리(望闕里)에 속했다. 조선 중기(1650년경)에 편집된 영주지에 보면 「망궐리 속방에는 화동방(禾洞坊), 두서방(斗西坊.뒤새), 천서방(川西坊.서천서쪽), 북청방(北廳坊.두서북쪽), 상현방(商峴坊.장수고개), 조와방(助臥坊), 삼진방(三津坊.서늘기), 선암방(仙巖坊.일원남쪽)이 있다」라는 기록으로 볼 때 서늘기(삼진)는 4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마을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조선말 1896년(고종33)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영천군 망궐면 삼진동(三津洞)이 됐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풍기군과 순흥군을 영천군에 합병하여 영주군을 이루었다. 또 영천군의 봉향면·망궐면·가흥면이 영주면으로 통합되고, 망궐면의 창보동(昌保洞)과 삼진동을 창진리로 통합하여 영주면에 편입시켰다. 1940년 영주읍 창진리가 되고, 1980년 영주시로 승격하면서 영주시 가흥2동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서늘기 사람들
지명유래
마을 표석에 ‘창진동’이라고 크게 새겼다. ‘창진’이란 지명은 일제 초(1914년)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창진동이 됐다. 권태종(78) 노인회장은 “당시 지역 유지들이 상의하여 창보동의 창(昌)자와 삼진동의 진(津)자를 따 창진동(昌津洞)이라 했다”고 말했다.

서늘기는 소백의 정기를 담은 세 갈래 물줄기가 모인 곳이다. 소백산 비로봉·도솔봉에서 발원한 남원천과 국망봉·고치재에서 발원한 죽계천 그리고 비로사와 초암사 사이 원적봉에서 발원한 홍교천이 마을 앞에서 합류하여 서천을 이룬다.

▲ 400년 수령 통버드나무
이 마을 김무열(82) 어르신은 “세 물줄기 즉 세(三) 내(川)가 모이는 곳이라 하여 ‘세내기’라 불렀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발음이 변해 ‘서늘기’가 됐다”며 “당시 이 마을 선비들이 ‘세내’의 뜻을 살려 석 삼(三)자에 나루 진(津)자를 써 ‘삼진동(三津洞)이 됐다”고 말했다.

▲ 마을회관
삼성(三姓) 세거지
서늘기는 함창김씨가 마을을 개척하고 청도김씨와 봉화정씨가 입향하여 삼성(三姓)이 집성촌을 이루었다. 서늘기 함창김씨(시조 古露王)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태조 때 가선대부 호조참판을 지낸 삼로공(三路公) 이음(爾音)의 6대손 물암(勿庵) 김융(金隆.1549-1594. 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 증직)의 후손들이다.

후손 김기동(83) 어르신은 “물암 선조는 18세 때에 퇴계 문하에서 공부했고, 임진왜란 때는 소천 노루재 전투에서 창의대장으로 활동하셨다”며 “물암 선조의 후손 일가(一家)가 1600년대 초 이산면 신암에서 서늘기로 이거하여 400여 년간 세거해 왔다”고 말했다.

▲ 창진 건널목
서늘기 청도김씨(시조 金之岱)는 1537년 문과에 급제하여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증직된 병산(병山) 김난상(金鸞祥.1507~1571)의 형 참봉공(參奉公.12세손) 김봉상(金鳳祥.1496-1545)의 후손들이다. 후손 김호창(74)씨는 “참봉공의 6대손 필찬(必燦.18세손)선조께서 1750년경 의성 비안에서 서늘기로 이거하여 300여년간 세거해 왔다”며 “1960년대까지는 30여호가 사는 집성촌이었으나 지금은 10여호만 산다”고 말했다.

서늘기 봉화정씨(시조 鄭公美)는 영주 삼판서고택의 첫 번째 판서인 정운경(4세손)의 셋째 아들 정도복(鄭道復.5세손)의 후손들이다.

정도복(1351-1435)은 형 정도전을 도와 조선을 건국하였으며 벼슬이 한성부판윤에 올랐다. 후손 정병진(79.25세손)씨는 “도복 선조의 고손(高孫)되시는 문호(聞護.9세손) 선조가 한성골에서 상현동(장수고개)으로 이거하여 3천석 부자(富者)가 되셨다”며 “그의 후손 응필(應弼.21세손) 선조가 1800년경 상현에서 서늘기로 이거하여 200여 년간 세거해 왔다”고 말했다.

▲ 노들강변
김호철의 ‘내 고향 삼진동’
서늘기에는 전국한시백일장에서 장원을 휩쓴 한시인 김호철(60)씨가 산다. 어릴 때는 종조부님께 한학의 기초를 닦았고, 15년 전부터 한학자 송홍준(장수 가래)선생으로부터 한시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는 전국한시백일장에서 장원만 15회에 올랐고, 총 200여회나 입상했다고 하니 입이 딱 벌어진다.

이부업 통장은 “마을의 자랑 첫째가 김호철 장원”이라며 자랑했다. 김호철(청도김, 삼진파 25世) 한시인의 애향심이 잘 나타난 ‘내고향 삼진동’을 소개한다.

▲ 왕지산 무동봉
我鄕三津洞吟(아향삼진동음) 내고향 삼진동
兩白之間我鄕成(양백지간아향성) 태백소백산사이에 내 고향이 성했으니
三津洞口廣坪生(삼진동구광평생) 세 개의 냇물 합치는 마을 어구니에는 넓은 들이 생겼구나
靑山擊鼓遊童舞(청산격고유동무) 푸른 산엔 아이가 북을 치며 놀고 있고
流水波紋樂老情(유수파문낙노정) 흐르는 물결 위에 오래도록 정으로써 즐거워하네
古聖修行先祖德(고성수행선조덕) 옛날 성인들의 행적을 닦은 조상님들 덕에
今賢道義後孫明(금현도의후손명) 오늘날 후손들은 어진 도의에 밝도다
舊來天下農者本(구래천하농자본) 예로부터 농자는 하늘아래 근본이라
五穀豊登世世榮(오곡풍등세세영) 해마다 풍년들어 대대손손 영화롭네.

▲ 서늘기들
무동봉과 통버드나무
서늘기 뒷산을 ‘왕지산’이라 하고 제일 높은 봉우리를 무동봉(舞童峰)이라 부른다. 이부업 통장은 “풍기바람이 ‘쌩쌩’ 부는 날도 마을은 포근하다”며 “왕지산이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호철의 한시에는 “靑山擊鼓遊童舞(청산격고유동무), 푸른 산엔 아이가 북을 치며 놀고 있고…”라고 했다. 김 한시인은 “무동봉을 멀리서 보면 아이가 색동옷 입고 춤추는 모습 같다”고 했다.

서늘기들 가운데 통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다. 김대일(64) 지도자는 “400여 년 전 마을 입향조께서 심은 나무로 추정된다”며 “예전에는 정월 보름날 통버드나무에 금줄을 쳤다고 하니 아마도 동신으로 모시고 서낭제를 지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사전 답사 차 서늘기에 갔을 때 김성순(55) 부녀회장과 작업복 차림의 부녀회원들을 만났다. ‘무슨 행사냐?’고 물었더니 김 회장은 “폐비닐 수거작업 가는 길”이라며 “서늘기 부녀회는 월1회 환경정화운동, 지역봉사활동, 경로당봉사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앙선고속전철 공사
서늘기 사람들
노인회관 1층 안방에 들어서니 어르신 30여명이 모이셨다. 여기서 옛 교직 선배 전정자(79) 선생님을 만났다. 그 때 그 시절 초등 여교사 대표로 활동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참 곱고 단정하신 모습 그대로네!’라고 생각했다.

김낙희(81) 노인회총무는 “저는 서늘기가 고향인데 참 풍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이라며 “우리 노인회는 매주 토요일은 남녀회원 50여명이 점심을 함께 먹고 친교활동과 보건활동을 한다”고 했다. 박원낭(88) 할머니는 “예전에는 다리가 없어 통버드나무 쪽으로 나가서 노들강변을 지나 외나무다리를 건너 시내로 갔으며, 빨래는 마을 앞 냇가에 가서 했다”고 말했다.

시댁이 함창김씨인 윤춘금(83) 할머니는 “함창김씨 가문에는 애국지사들이 많다”며 “임진왜란 때 물암 선조께서는 의병대 창의총대장을 하셨고, 일제 때 김우창 선조는 의병장으로, 김복영 선조는 신간회 영주지회장으로 일제에 항거했다”고 말했다.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차를 세우고 다시 한 번 마을을 뒤돌아봤다. 전형적인 구래천하농자본(舊來天下農者本)의 마을이다.

이원식 시민기자

<가흥2동 서늘기 마을 사람들>

▲ 이부업 통장
▲ 권태종 노인회장

▲ 김기동 전 노인회장
▲ 정병진 씨

▲ 김무열 씨
▲ 김대일 새마을지도자

▲ 김성순 부녀회장
▲ 김낙희 노인회총무

▲ 박원낭 할머니
▲ 윤춘금 할머니

▲ 전정자 선생님
▲ 김호철 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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