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면 두전1리(반지미)

▲ 반지미 전경
1589년 단양인 우정옥이 개척한 마을
한우 2천 8백두, 단위마을 중 최대

장수면 반지미 가는 길
두전1리 반지미 마을은 장수면 최북단 옥계천 상류에 위치해 있으며, 활(弓)등 같이 높이 솟은 용암산에 가깝다. 그래서 찾아가는 길이 장수가 아니고 안정면 용암산 방향이다.

서천교에서 풍기방향으로 향한다. 제일고 앞을 지나 나무고개(木峴)를 넘기 전 좌회전하여 명품요양병원 쪽으로 간다.

반지미로로 접어들면 대현사가 보이고 바랑재를 넘으면 반산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반산교회 표석이 보이는데 여기서부터 보이는 마을이 ‘반지미’이다. 지난 19일 반지미에 갔다. 마을 회관에서 우준하 이장, 우성인 단양우씨 종손, 권영후 안동권씨 후손, 윤진해 부녀회장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 단양우씨 세거 400년 내력과 반지미의 지명 유래를 듣고 왔다.

▲ 마을의 역사책 盤山誌
역사 속의 반지미
학사 김응조 선생이 저술(1646년)한 영주지에 의하면 「영천군 두전리(豆田里) 속방(屬坊)은 가라(加羅)[가래], 반지산(盤之山)[반지뫼], 두전(豆田)[모전], 지곡(池谷)[못골], 별태방(別太)[배태], 파지곡(破之谷)[파지], 갈산(葛山)[갈미] 등 7방이다.

이 마을들은 토지가 비옥하지는 않지만 벼슬아치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사람들이 모두 풍류를 즐기고 시를 암송하며 문호마다 효도와 우애를 숭상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반지산(반지뫼)이 오늘의 반지미다.

그 후 1914년 일제(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영천군 두전면’이 ‘영주군 장수면 두전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반지미 마을의 구성
이웃해 있는 띳밭이 ‘열두띳밭’이라 하더니 반지미도 ‘열두반지미’라고 한다. 작은 마을이 많다는 뜻이다. 반지미는 한곳에 ‘집결촌’이라기보다 자연 따라 꾸밈새 없이 곁에서 곁으로 오순도순 자리 잡은 마을이다.

반지미들 중앙을 관류(貫流)하는 용암천(지금은 옥계천이라 부름)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음지마(반산), 양지마, 웃마(금당골)가 있고, 그 서쪽에는 안마, 골밭, 곤방골(坤方谷)이 있다.

마을 회관이 있는 음지마에는 교회, 보건진료소, 단양우씨 종택이 있어 반지미의 중심마을이 됐으며, 반산교 건너 안마는 현재 사람이 제일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본마’라 부른다.

▲ 음지마
지명 유래
영주지(榮州誌)에 보면 조선 중기 때 이 마을의 이름이 ‘반지산방(盤之山坊)’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반지산’은 ‘반지뫼’라고도 불렀으므로 ‘반지뫼’가 ‘반지미’로 변했다.

반지미를 반산(盤山)이라고도 한다. 마을의 역사를 기록한 반산지(盤山誌, 1994)에 보면 「마을을 둘러싼 산의 형맥이 ‘용이 서리고 있는 것 같다’하여 ‘서릴 반(盤)자에 뫼 산(山)자를 써 반산(盤山)이라는 지명이 나왔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용이 서리다’라고 할 때는 서릴 반(蟠)자를 써야 하는데 소반 반(盤)자로 쓴 연유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옛 문헌에는 모두 소반 반(盤)자로 쓰고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내(川)를 용암산에서 발원했다 하여 용암천이라 불렀고, 호산(虎山), 구산(狗山), 나비산, 청룡등(靑龍嶝), 원가천(遠佳川), 망원봉(望月峰) 등 자연(동물)의 형상 따라 이름을 지어 정겨운 느낌이 든다.

▲ 양지마
단양우씨 최대 집성촌
성씨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때이다. 고려의 공신들이 왕으로부터 성을 하사받거나 지방의 토호세력가문이나 관료가문 등이 성을 만들어 가졌다고 한다.

▲ 단양우씨 유허비
단양우씨 또한 고려조에 득성(得性)하게 되었고, 현(玄)을 시조로 관향을 단양(丹陽)으로 한 단일본(單一本)이다.

반지미 단양우씨는 고려말 안동 예안으로 낙남한 역동(易東) 우탁(禹倬)의 후손이다. 시조(玄)의 21세손 정옥(鼎玉)이 임진왜란 전인 1589(기축)년 안동군 월곡면 미질마을에 살다가 안신길처(安身吉處)를 찾아 이곳(골밭)에 삶의 터를 잡으니 427년 전 일이다.

▲ 골밭마
우성인(88) 단양우씨 종손은 “정옥 선조께서 입향하시어 5대까지 외동으로 내려오다가 6대에 와서 3형제를 두었는데 그 후손이 크게 번창하게 됐다”며 “가장 많을 때는 100여호가 사는 지역 최대 집성촌이었으나 도시로 많이 나가고, 지금은 50여호가 산다”고 말했다.

청룡등 볕 좋은 자리에 단양우씨 선조의 묘가 있고, 도로변에는 큼직한 돌에 새긴 유허비가 있다. 단양우씨 초가(草家) 종택은 원래 양지마에 있었으나 1961년 수해로 없어지고, 지금은 음지마에 한옥으로 새로 지었다 한다.

▲ 웃마(금당골)
안동권씨와 전주이씨 세거
반지미는 단양우씨가 마을을 개척한 후 안동권씨 아맹공파 일족(一族)과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일족이 함께 세거해 왔다고 전한다.

반지미 안동권씨는 아맹(啞盲) 권창진(權昌震, 1597-1683)의 후손으로 1600년대 초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안동권씨 후손 권영후(82) 종인은 “우리 안동권문은 단양우씨가 마을을 개척한 후 이어서 입향했다고 전해진다”며 “등잔산 금당골에 터를 잡아 400여년간 세거해 왔다. 1950-60년대에는 20여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5호만 남았다”고 말했다.

반지미 마을 북쪽 호산(虎山, 호랑이)아래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일족이 터를 잡고 세거했다고 한다. 마을 앞산을 구산(狗山, 개)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즉 호랑이 앞에 개가 있어야 마을에 재앙이 없다는 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재미있는 전설이다.

지역 최대 한우 생산지
마을 산속이나 외진 곳에는 대형 축사들이 자리 잡고 있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모두 산속에 숨은 것 같다. 청정하기로 유명한 두전1리 반지미는 우리지역 단위 마을 가운데 가장 많은 한우 사육 지역이다. 한우 두수는 2천 800두로 파악하고 있으며, 마을 총 75가구 중 25가구가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

최동환(60) 두전1리 축산계장은 “반지미가 한우 사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로 알고 있다. 이곳에 축산이 발달한 것은 축산에 적합한 조건(도시인접, 도로교통 등)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며 “겹겹이 야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맑은 물과 공기는 육질 좋은 한우 생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이라고 말했다.

▲ 청룡등
반지미 사람들
우준하 이장은 “반지미는 단양우씨 400년 세거 집성촌으로 지금도 마을 전체의 70%가 단양우씨”라며 “집성촌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번성하는 마을이 극히 드문데 비해 반지미는 특이한 전통마을”이라고 말했다.
우수길(75) 노인회장은 “단양우씨가 반지미에서 크게 번성하게 된 것은 청룡사두형(청룡등)에 선조의 묘를 써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였고, 대대로 문한(文翰, 글 잘 하는 선비)이 이어졌다”며 “청룡등이 명당 중 명당”이라고 말했다.

안마에서 65년을 살았다는 김재석 할머니는 “예전에는 용암천변에 버드나무 숲이 울창했으며, 넓은 들에는 황새와 학이 많이 날아들어 풍광이 좋았다”고 했다.

김수자(82) 할머니는 “예전에 아이들 학교 보낼 때 업어서 도랑을 건넜는데 지금은 뱅기 타고 사는 세상이 됐다”며 “나라가 잘 살아서 다리도 새로 놓고 길도 포장해 주니 참 살기 좋은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마을에 젊은 농업인이 많아 단합이 잘 되고, 마을 행사도 수월하게 잘 처리 한다는 윤진해(51) 부녀회장은 “마을 회관에서는 일년내내 효도행사가 이어지고 있으며, 조상을 섬기고 효를 중시하는 게 마을의 자랑”이라고 했다.

▲ 마을회관
우양하(66) 노인회 총무는 “마을의 젊은 사람은 50-60대 사람들이고, 대부분 70대 이상 노인이 많다. 우리마을은 시내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도시 근교 마을로 벼농사가 발달했고, 생강, 고추, 약초 재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10여년동안 부녀회 임원을 두루 역임했다는 이옥자 전 부녀회장은 “우리 마을은 한 마디로 ‘예와 도덕의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수백년동안 전해오는 전통 제의(祭儀)는 조금 간소화 되었지만 거의 변함이 없다”며 “문화재나 고택이 없어서 그렇지 400년 전통마을”이라고 말했다.

▲ 우수길 노인회장
▲ 우준하 이장

 

 

 

 

 

 

▲ 윤진해 부녀회장
▲ 최동환 축산계장

 

 

 

 

 

 

▲ 권영후 안동권씨 후손
▲ 우성인 단양우씨 종손

 

 

 

 

 

 

▲ 김수자 할머니
▲ 김재석 할머니

 

 

 

 

 

 

▲ 우양하 노인회총무
▲ 이옥자 전 부녀회장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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