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현면 유전2리(버드래미)

▲ 유전2리 전경
400여년전 상산김씨가 개척한 마을
참 살기 좋은 귀농·귀촌 으뜸 마을

봉현면 유전2리 가는 길
▲ 마을 표석
영주시내에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죽령방향으로 향한다. 풍기에서 내려 오현회전교차로에서 풍기 IC방향으로 우회전한다. IC 삼거리를 지나 히티재 방향으로 올라가노라면 국내 최대 사과 주산지답게 산천이 모두 사과나무다.

히티재를 넘어 조금 내려가면 유전리 ‘꽃피는 산골광장’이 나온다. 해마다 사과꽃 필 때면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광장에서 남동쪽으로 난 시골길을 따라 100m 쯤 가다가 작은 시내를 건너면 유전2리 ‘짤뜨매기마을’이고, 여기서 300m 가량 더 올라가면 ‘버드래미마을’이다.

지난 12일 버드래미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이창희 이장, 여창대 노인회장, 김진동 전 노인회장, 김순도 할머니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살기좋은 버드래미마을 이야기를 듣고 왔다.

역사속의 유음리(柳陰里)
조선 때(1849년경) 발간된 풍기군지에 보면 이 지역은 풍기군 노좌리면(魯佐里面)에 속했다. 당시 노좌리면에는 유음리(柳陰里), 이전리(泥田里), 대촌리(大村里), 하촌리(下村里)가 있었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통합하여 영주군이라 하고, 노좌리면과 와룡동면을 합하여 봉현면이라 했으며, 유음리와 이전리를 합하여 ‘유전리’라 칭했다. 1945년 해방 후 유음리는 유전2리, 이전리는 유전1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버드래미
지명유래
‘버드래미’는 마을 입구에 큰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어 ‘버들내’ 또는 ‘버드레이’로 부르다가 ‘버드래미’로 굳어진 듯 하며, 국립지리원에도 ‘버드래미’로 등록되어 있다.

버드래미는 ‘버들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버드’는 ‘버들’이고 ‘래미’는 우리말에서 귀엽다, 예쁘다는 뜻으로 쓰였던 순수한 우리말이다. 즉 버드래미는 버드나무숲이 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이다. 조선 중기에 와서 행정구역을 정비할 때 마을 선비들이 ‘버드래미’에 한자어를 붙였는데, 버들 유(柳)자에 그늘 음(陰)자를 써 유음리(柳陰里)라 칭했다.

지금의 유전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유음리의 유(柳)자와 이전리를 전(田)자를 따 유전리가 됐다.

이 마을 원로 김진동(82) 어르신은 “어릴 적 마을 앞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았는데 여러 차례 하천 정비공사로 버드나무가 없어져 아쉽다”며 “예전에 큰 버드나무가 있어 여름철이면 인근 마을의 힘센 장사들이 모여 씨름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짤뜨매기
버드래미 아랫마을을 ‘짤뜨매기’라고 부른다. 마을 뒷산이 보름달처럼 둥글어서 ‘달뜨는 고개’라 하여 ‘달뜨매기’라 부르다가 발음이 변해 ‘짤뜨매기’가 됐다고 전해진다.

우리말에서 ‘매기’란 ‘고개’라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달뜨매기는 달뜨는 고개이고, 한자로는 월현(月峴)이 된다.

김옥석(80) 어르신은 “진밭 쪽에서 ‘짤뜨매기’를 바라보면 뒷산의 형상이 둥근달처럼 보여 풍광이 멋지다”고 말했다.

▲ 호두나무숲
상산김씨가 개척한 마을
현재 이 마을에는 여러 성씨가 살고 있지만 상산김씨가 마을을 개척했다고 전해진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상산김씨 후손 김상전(52)씨는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며 “400여년전 저희 선조 할아버지께서 마을을 개척하여 지금까지 세거해 왔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연세가 제일 높으신 김순도(87) 할머니는 “예전에 시어른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라며 “상산김씨가 이곳에 터를 잡을 때 ‘히티재에서부터 용암산 자락을 두루 살펴보니 소쿠리형 명당터가 있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며, 다래덤불을 걷어내고 통나무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고 말했다.

윤화식(75)씨는 “마을 주변에 수백년 묵은 묘가 10여기 산재해 있는데 모두 상산김씨의 묘”라며 “상산김씨가 마을을 개척하여 수백년간 세거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 미륵당
유전리 미륵당
아주 옛날부터 동리 입구에 미륵불(彌勒佛)이 있었다. 1940년경 황해도에서 십승지를 찾아 이 마을에 정착한 임달호라는 사람이 마을 사람들과 힘을 모아 당(堂)을 짓고 미륵(彌勒)을 안치하니 미륵불은 마을의 수호신이 됐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대보름날 미륵을 서낭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미륵이란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다. 마을 사람들은 이 미륵이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준다고 믿었다.

이 미륵불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논의를 하던 중 2002년 애석하게도 이 미륵불을 도난당하고 말았다. 백방으로 찾아 나섰으나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깝게 여기던 중 2008년 참살기좋은마을 가꾸기 사업과 연계하여 동민들의 뜻을 모아 미륵당을 복원하게 됐다. 마을 원로 김진동 어르신은 “6·25 때 노좌를 비롯한 인근마을들이 모두 폭격과 방화의 피해가 컸으나 버드래미는 안전했다”며 “모두 ‘미륵신 효험’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보살상 1기와 문인상 2기가 옛 돌미륵을 대신하고 있다.

권기훈(66)씨는 “도난당한 미륵은 제주도 돌하루방 같기도 했는데 귀가 큰 게 특징이었다”고 말했다.

▲ 동수나무(느티나무)
버드래미의 민속신앙
이 마을 김봉호(83) 할머니는 “버드래미 사람들은 정월대보름날 산신을 할배신으로 미륵당을 할매신으로 모시고 서낭제를 올렸다”고 말했다.

정월 초 칠일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흠이 없는 사람으로 제관 3명과 도가(都家)를 정한다. 정월 13일이 되면 샘을 치고, 골목에는 붉은 흙을 뿌린다. 도가와 제관댁에 금줄을 쳐 잡신을 물리쳤다. 제관 3명과 도가의 부부는 3일간 매일 목욕재계하고 몸과 마음을 경건히 했다. 남자들이 장을 봐오면 도가에서 제수를 정성껏 마련한다. 제수는 포와 삼실과(대추, 방, 감)와 백설기, 미역국이며, 메(밥)는 미륵당 앞에서 뚝배기에 밥을 지어서 뚝배기 채 제상에 올린다. 이 마을 서인수(68)씨는 “정월 14일밤 12시(子時)가 되면 제관 3명은 마을 뒷산(동소나무)으로 가서 산신제를 올리고, 도가집 부부는 미륵당으로 가서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당시 도가 부인으로 미륵당 제사를 지냈다는 김순도 할머니는 “산신제 제관의 독축 소리가 들리면 미륵당에서도 밥을 해서 뚝배기 채 올리고 제사를 지냈다. 당시 축문은 ‘예로부터 인심 좋고 살기 좋은 이 마을에 더 많은 풍요와 더욱 큰 행운을 내려 주소서’라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정월대보름날 낮에는 마을 사람들이 도가에 모여 농악놀이와 윷놀이를 하면서 마을의 화합과 풍년을 기원하는 한마당 굿판을 벌였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지금도 ‘초하루 보름날 산신께 제사를 올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 마을 회관
버드래미 사람들
기자가 유전2리에 갔던날 마을회관에서는 ‘사과 생산 현황’이란 주제로 마을 간담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과작목반 회원들은 “우리마을을 비롯한 봉현면 전 지역이 사과 주산지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며 “사과 과잉 생산에 대한 문제, 지구 온난화에 대한 문제 등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창희(55) 이장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사과재배지가 북상하고 있다”며 “이에 대비하여 강원도 양구에 4천여평의 사과재배지를 마련하고 과수원을 조성하고 있다. 최근 들어 ‘양구사과 맛좋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관에서 나와 여창대 노인회장과 권기훈씨의 안내로 마을을 한 바퀴 둘러 봤다. 명두바위 약수터, 미륵당, 소나무숲, 상산김씨 묘소, 골목길을 둘러보면서 마을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회관으로 갔다. 쉼터에 나오신 할머니 여러분과 옛날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옥회(83)·권오명(81) 할머니는 “마을의 옛 모습은 초가집들이 경사지에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물은 박샘물을 버지기로 여다 먹었다. 그리고 빨래는 명두바위샘 옆 연못(물이 솟아오름)에 가서 했다”고 말했다.

여창대 노인회장은 “우리마을은 ‘살기좋은마을’이라고 소문이 나서 이사 오는 사람이 많다”며 “예전에 64호가 살다가 21호로 줄더니, 귀농·귀촌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지금은 47호로 늘어나 귀농·귀촌 으뜸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 여창대 노인회장
▲ 이창희 이장

 

 

 

 

 

 

▲ 김옥석 어르신
▲ 김진동 전 노인회장

 

 

 

 

 

 

▲ 최옥회 할머니
▲ 김봉호 할머니

 

 

 

 

 

 

▲ 윤화식 어르신
▲ 권오명 할머니

 

 

 

 

 

 

▲ 권기훈 씨
▲ 서인수 씨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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