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11일 집사람과 소백산 상월봉에 등산가기로 하였다. 도시락과 오랜지와 오이를 준비하여 오전 10시 30분 집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출발하였다. 웃기내를 지나 순흥면 사무소를 거쳐 덕현2리 점마 마을에 도착하니 11시였다. 점마 마을은 열한집에 40여명이 살고 있는 조그만한 산골마을이다. 산비탈과 골골마다 사과꽃이 활짝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꽃향기가 우리 부부를 맞이하였다.

3일전에 비가내려 마을 앞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제법 크게들렸다. 석천폭포골은  석천폭포를 비롯하여 작은 폭포마다 특색이 있기 때문에 사진촬영의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젔다.
상월봉을 향하여 올라가면서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 곳마다  나뭇가지와 넝쿨을 해치고 들어가 살펴보고 사진촬영을 하였다. 30분이면 도착하던 석천폭포까지 1시간이 걸렸다.


찬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지 뒤로 보이는 하얀 물보라가 우렁찬 소리로 산천을 뒤 흔든다. 일순간 깜짝 놀랬으나 산이 나를 맞이하는데 반가움에 겨워 포효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비탈길을 타고 내려가니 석천 폭포가 나타났다. 시원한 골바람이 이마를 간지럽히며 미끄러진다. 올라올 때 흘린 땀방울이 이마에서 멈추며 한기를 토해 낸다.
석천폭포 앞에 섰다. 마치 나의 정수리를 노리고 달려드는 마적 같이 물기둥은 나를 향해 공격태세를 취하는 것 같았다.

순간 눈앞이 아득해짐과 동시에 망막을 닫았다. 그러나 거센 흐름은 바닥에서 튀어올라 방울방울 분수를 만들었다. 치솟음과 내리쏟음의 조화. 순리와 비순리의 조화. 그렇다. 자연은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는 일차원적인 순리만을 따르진 않는 것이다. 오직 모든 것의 '조화'만이 나를 이렇게 압도하는 아름다운 힘인 것이다.

물의 흐름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바윗돌에 부서지며   튀어올라 물보라가 되고, 계곡안을 바람으로 가득 채우며 다시 개울을 따라 흘러 내려간다. 폭포앞 넓은 바위에 앉아 있으니 세속에서 찌들린 것들이 가슴 한구석에 뭉쳐있다가 가볍게 풀려 속이 시원하다. 이러한 것을 느끼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폭포를 찾는가 보다.

맑은 계류를 옆에 끼고 물소리와 새소리, 뭇 곤충의 소리를 들어면서 상월봉으로 오른다. 석천골 상류는 큰 화강암 바위가 군데군데 물길을 막아 이곳저곳 깊은 소(담)가 형성되어 시원함을 더해주는 곳이다. 10여분 올라가니 등산로 오른쪽에 큰 화강암 바위가 오랜세월 계류의 흐름으로 잘 다듬어 졌고, 그러면서 삼단폭포를 이루고 있다. 두 개의 담을 자세히 살펴 보면 에메랄드 빛을 발하는 맑은 물에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있을 듯 싶다. 물속이 다 들여다 보여 선녀탕이라 명명을 하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여기서 몇장의 사진을 촬영후 걸음을 재촉하여 5분쯤 올라가니 등산로 오른쪽에 폭포 하나가 발길을 붙잡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가 정면에 서니 흰 물줄기가 소복으로 단장한 여인이 승무 (僧舞)를 추는 자태이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법고의 울림만큼이나 강렬해서 지상의 모든 미물(微物)들까지 일깨우는 힘을 지니고 있다. 버선코에서 부터 장삼의 끝자락까지 연결된 힘이 허공으로 폭발하며 웅장한 형상을 그려낸다.
그래서 필자는 이 폭포를 승무폭포라 명명하고 싶다.

보통때는 이곳까지 오는데 1시간이면 충분한데 두시간 10분이 걸렸다. 승무폭포 위쪽에 큰 바위가 있어 쉬어가기로 하였다. 가지고온 과일과 물을 마시고 오늘의 절경을 이야기하면서 오늘 붙인 폭포의 이름 " 삼단폭포.승무폭로, 선녀탕"의 이름이 영원히 남도록 소백산 상월봉 산행기를 쓰기로 하였다. 이 산행코스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필자가 속해있는 철탄 산악회에서 많이 찾는 등산로이다.

이 등산로에는 폭류와 폭포가 많이 있다. 고개 돌리면 산경이 눈을 감싸고, 휘파람이라도 불면 곳곳에서 물소리가 화음을 맞춰준다. 어디 그 뿐이랴? 낙엽이 쌓여 부토가된 흙을 밟고  산을 오르면 피로를 감소시켜준다. 이 등산로는 이러한 것을 다 만족시켜 주고 있다. 또 상수리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전나무, 소나무 등이 숲의 터널을 이루어 여름에 등반하기에 적합하다. 정상으로 올라 갈수록 짙어지는 수림에 갑갑할 정도로 시야가 트이지 않는 것이 흠이나 정작 상월봉과 국망봉에서 확트인 대조망을 즐기는 맛에 시장기 역할을 할 뿐이다.

이 능선길은 봄에는 진달래꽃, 철쭉꽃, 산 벚꽃 이팝나무 꽃 등의 향기를 즐길 수 있다. 여름앤 무성한 관목숲을 이루고 있어서 길을 벗어날 수도 없지만 일단 길을 잃어버리면 찾기도 어렵다. 계곡 길을 올라가면 수서식물과 맑은 계류와 조화를 이루면서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치는 식물들의 삶을 볼 수 있다.

1960년대 까지 소나무 숲으로 둘러 쌓여 봄이면 향기 많은 소백산 취나물을 채취하고, 여름이면 약초를 채취하였다, 가을이면 송이의 생산량이 다른지역 보다 월등히 많아 소득이 순흥면 타 농촌지역보다 많았다고 한다.  60년대 말에  소나무 벌목으로 취나물과 약초, 송이의 생산량이 급감하여 소득이 줄어 마을사람들이 타 지역으로 이주를 하고 20%의 주민들만 점마마을에 살고 있다.

가파른 길을 한참 오르다보니 이마에는 구슬땀이 샘솟듯 하고 온몸에 땀 범벅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이곳 등산로는 산판 당시 내었던 차로이기 때문 넓고 길이 좋았다. 그런데 작년 장마로 오르막 등산로가 600m 정도 유실되어 많은 불편을 주고 있다.

이곳 800m고지에는 20여호의 주민들이 산나물, 약초, 송이채취, 콩재배를 하고, 한가구당 3마리 이상의 한우를 방목하여 점마마을 보다 소득이 높아 부유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박대통 집권시 강제 이주시켰다. 이곳에 아직 집터와 논밭의 흔적이 남아있다. 산판한 곳과 집터 와 전지에 소나무와 전나무를 다시 심어 30년 이상 되었으니 아름드리 소나무와 전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상존하고 있다.

집사람이 이마에 땀방울 닦으면서 잠깐 쉬어 가자고 하였다. 옛 집터가 있었던 곳이라 넓고 소나무의 노란 갈비가 두텁게 쌓여 쉼터로 안성마춤이다. 쉬면서 먹는 물 한잔은 생명수요. 오랜지와 간식을 먹는 재미야 말로 산행을 좋아 하는 자만이 느끼는 별미(別味)이다.

다시 오르막길을 숨을 몰아쉬면서 오르다 보니 오른쪽 화강암 덩이가 줄비하게 깔린 너덜지대(돌이 많이 깔린 비탈)가 나타난다. 큰 바위  밑에서 물소리가 들려온다. 이 바위의 모양이 각양각색이고 바위위에 잡목들이 자라고, 다래 넝쿨이 감싸고, 물끼가 있는 바위에는 이끼들과 고비들(고사리과의 식물)이 볼만했다. 고사리보다 훨씬 키가 큰 고비들은 이끼낀 바위들과 고목들 사이의 습한 땅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성장률이 좋아 원시적인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이 골짜기를 메우고 있는 각종 나무들이 생존전에서의 패잔병들은 고사목이 되고 노장의 근엄한 자태는 태고적 분위기를 연상하게된다.

 너덜지대를 지나 20분을 올라가니 산 능선이 나타나고 20m이상의 큰 입석바위가 나타났다. 이 바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준엄하게 생긴 사람의 형상이다. 이 바위를 신선 바위라 한다. 그리고 이 능선을 대기재라 한다. 이고개에서 우측으로 가면 단산 좌석쪽 마당재로 가고 앞쪽으로 가면 신선봉으로 가고, 왼쪽 가파른 고개길이 상월봉, 국망봉으로 가는 등산로이다.

 대기재(신선바위)에 오후 2시에 도착하였다.  점심 시간이 지나 허기가 졌다. 도시락을 열어보니 작년 김장 김치와 집 텃밭에서 재배한 풋고추, 상치, 쑥갓, 집사람이 담근 된장이 쌈장으로 나왔다. 산악회에서 먹는 점심은 한식 뷔페처럼 반찬이 다양하나 오늘은 쌈밥 정식이다. 작년 김장김치가 입에들어 가니 새콤한 맛이 입맛을 돋꾸어 준다. 집 사람이 상추, 쑷갓, 풋고추 한 조각과 된장을 넣고 쌓서 입에다 넣어주는 이 맛을 무엇에다 비하랴.산천을 끼고,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 세상 어느 대주의 왕도 부럽지 않은 마음이다. 서로 쌈밥을 주고 받다 보니 도시락에 밥은 온데 간데 없다. 반주로 가져온 소주 두 잔을 드니, 집 사람도 한 잔 거든다. 앞에 서있는 신선 바위가 부러운 듯 옆 눈으로 처다 보는 것 같았다. 술기운이 전신을 파고들어 집 사람의 얼굴은 20대 새 색시의 얼굴로 변했다. 이상 무엇이 부러우랴! 우리 부부의 애정이 오늘 같이 오래 간직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본다.

신선 바위에서 5분간 오르막 길을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자작나무 숲에 아주 큰 바위가 보인다. 아프리카나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코불소가 신선 바위 쪽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50m 가파른 오르막 길을 올라와 평원지대 도착하면 왼쪽은 전나무 군락이고 오른쪽은 상수리나무 군락을하고 있는데 왼쪽으로 두 개의 큰 바위를 보면 큰곰이 상월봉으로 올라가는 자태이고 하나는 초암사 쪽을 향하여 서있는 네분의 승려가  탐.진.취를 버리고 숙연히 초암사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들 바위를 코불소 바위, 곰바위, 부처바위라 명명하고자 한다.

점마에서 소백산 상월봉 까지 보통때는 3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하나 오늘은 5시간이 걸렸다. 상월봉 정상에서 올라오니 조금전 까지만 하여도 갑갑할 정도의 숲의 터널을 지나 오다가 사방이 확트여 이 세상의 모든 허물과 욕망, 탐심, 진심 모든 것이 한꺼번에 날려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 만이 이 기쁨을 맛볼 것이다. 그리고 국망봉의 정상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다 못해 한기를 느끼게 한다. 아직은 진달래 꽃이 수줍게 입꼬리만 올려주는 계절이다.

오늘 날씨가 맑아 영주쪽을 바라보니 풍기,  영주, 소수, 부석의 시가지를 다 볼 수 있었고, 충북 영춘쪽의 신선봉과 영월쪽의 행제봉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겹겹이 쌓인 산의 준령을 너무나 많이 거느리고 있다. 소백산  연화봉(1394.4m),  비로봉(1439.5m), 국망봉(1420.8m) 에이어  상월봉(1394.m)   높이는 국망봉보다 낮으나 정상에서 가장 많은 골(산계곡)과 능선,또 마을을 거느리고 있어 내가 제일 종아 하는 산이 상월봉이다.

상월봉과 국망봉 사이에 진달래가 지고나면 5월 중순부터 연이어 철쭉과 원추리 에델바이스 등이 잇달아 피어 야생화 군락이 형성되어 8월초에는 뭇 야생화가 만개되어  그 넓은 평원이 야생화 천국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높은 곳에 넓은 평원이 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이 평원에서 상월봉을 처다보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상월불상을 볼 수 있다. 상월불이 숲으로 자비의 장삼자락을 펼쳐든 것 같기에 이 넓은 평원을 "천상 화원"이라 칭하여도 손색이 없다.  상월봉을 찾는 등산객들은 상월불이 있는 천상화원에서 놀다가 가니 어찌 건강하지 않을 것이며 가정의 평화, 행운이 없으리오.
나무관세음보살!
끝까지 읽어 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8월 산행에서는 국망봉까지 산행기를 써볼까 생각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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