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 달 특집] 생사를 건 전우애

남쪽을 향하여 뛰며 고지를 쳐다보니 아군이 고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신바람나게 뛰었다. 뛰면서 보니 왼쪽발 군화가 박살나서 한쪽만 겨우 붙어서 털럭거려 거추장스러웠다. 할 수 없이 그냥 100미터 쯤 내려오니 폭탄이 떨어져 움푹 패인 웅덩이에 신병 2명이 숨어있었다. 화가 났다. "이 새끼들, 동료들은 지금 목슴을 걸고 싸우는데 너희만 살겠다고 숨어 있느냐, 죽여버리겠다." 하며 총을 들이대니 신병은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용서할테니 빨리 올라가라고하고 내 상처를 보니 여전히 피가 샘물처럼 쏟아져 흐른다. 지혈을 해야겠다. 신병을 보고 탄띠를 풀어 내 다리와 팔에 지혈을 해 달라고 한  후  힘껏 묶었다.

피가 다소 중지된다. 신병을 보고 너희들은 총살감이지만 특별히 용서를 해주니 빨리 올라가서 용감히 싸우라고 하니 오히려 고맙다며 절을 한다. "소대장님 혼자가겠습니까?" 한다. 나는 걱정말라고 하고 신병을 올려보냈다. 내려가야겠다 하고 일어서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대로 푹 주저 앉는다. 깜짝놀라 다시 일어서니 또 주저앉는다. 다리에 힘이없어 일어설 수가 없다. 일어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고 응급처치를 했으나 피는 여전히 조금씩 나오고 있어 주위를 살펴보아도 아군은 보이지 않는다. 그제서야 후회가 된다. 신병을 보내지말고 업고가자고 하였으면 나도 살고 신병도 살 것을.....

  이제는 소용없는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힘만 없을 뿐이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사방을 살폈다. 아무리 소리쳐도 허사였다. 이대로 죽어야 하나. 도로까지만 내려가면 살 것 같았다. 죽더라고 끝까지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침 산이여서 밑으로 굴러도 될 것 같다. 다리를 밑으로 쭉펴고 부상당한 다리를 오른다리 위에 올려놓고 부상당한 팔도 성한 다리 위에 놓고 바른팔로 팔과 다리를 잡고 조금조금 미끄러져 내려간다.

  '됐다'하고 기를쓰고 움직였다. 잡목이 많아 가로걸쳐져 힘이 부친다. 고생고생 내려가니 자질구레한 나무에 걸려 도저히 갈수가 없다. 꿈틀거리면 조금씩 내려가기 마련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꿈틀거렸다. 아무리 움직여도 요동이 없다. 어떻게 된 일인가? 정신을 차려 살펴보니 큰길에 내려온 것이다. 역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피를 많이 흘려서 인지 정신이 흐려진다. 정신을 차려야 산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악물고 정신을 가다듬었지만 흐려진다.

  목이 탄다.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물을 먹어야 살겠다는 생각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살펴보니 비가 많이 온 후라 큰길 옆 도랑에 물이 흐른다. 억지로 기어가 보니 흙물이다. 죽을 지경인데 흙물을 가리겠는가, 엎드려 물을 한모금 물었다. 깜짝 정신이 든다.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 물을 먹으면 죽는다는 생각이 났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물을 뱉아버렸다. 속이 탄다. 또 물을 물었다가 뱉았다. 몇 번 반복을 하니 다소 갈증도 덜하고 정신도 나아진다. 꽝꽝 소리가 들린다.

   살펴보니 적의 포탄이 마구 떨어진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파편 날라오는 소리가 쌩쌩들린다. 십분이라도 더 살고보자. 어떻게 해서라도 생명을 연장하다 보면 살길이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길 옆에 흙이 무너지고 파인 뚝 밑에 억지로 기어들어가 있으니 정신이 왔다갔다 한다. 무엇이 쿡 하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보니 산 위에서 사람이 내리뛰어 내 앞에 선다. 그 사람은 포탄이 많이 떨어지니 주춤하고 섰다. 나는 구세주를 만났다 싶어 그의 바지가랭이를 꼭 잡았다.

  그 사람은 깜짝놀라 돌아본다. 우리중대 위생병이다. 잘 만났다. 나를 살려다오, 나는 걷지를 못한다며 업고 가자고 꽉 매달렸다. 위생병도 뚝 밑에 앉았다. 위생병은 나도 부상을 당해 업을 수가 없다하며 팔을 보인다. 바른팔에 압박붕대를 감았다. 위생병은 내가 가서 차를 보내줄테이니 여기서 기다리라하지만 나는 놓칠까봐 바지를 꼭 쥐고 적의 포탄이 이렇게 많이 떨어지는데 차가 올 수가 있느냐 네가 나를 버리고 가면 나는 여기서 죽고 만다. 끌고가도 가야한다. 전우가 무엇이냐. 죽어도 같이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며 나는 위생병을 놓지 않았다.

 적의 포탄은 회수를 늦추어 드문드문 떨어진다. 위생병은 할 수 없이 나를 붙들고 일어서라 한다. 업을 수가 없으니 옆에 끼고 걸어보자 하며 일으켰다. 일어서서 잡아야 하나 나는 왼쪽 팔 다리가 부상이고, 위성병은 바른팔이 부상이여서 위생병이 왼팔로 내 성한 팔을 끼니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 억지로 끌려가며 길 복판을 지나서 조금씩 끌려가 남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끌려가는데 위생병이 나를 뿌리치며 물러서서 도저히 이렇게 가다가는 적의 포탄에 둘 다 죽는다. 내가 빨리 가서 차를 보낼테니 여기서 기다려라고 하고는 달아난다. 내가 아무리 목이 터저라 소리쳐 불러도 위생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 버린다. 기가 막혔다. 천우신조하여 만났던 전우가 이젠 나를 버리고가니 누가 나를 살려주겠는가. 절망이다.

  몸이 상한 사람도 살기 힘든 전지에서 일어서지도 못하며 피도 많이 흘렸으니 살길이 있겠는가. 그래도 목숨이 붙어있으니 살길이 있을까 하여 포탄을 피할려고 처음 있던 언덕 밑에 가서 은신할려고 돌아보니 거리가 멀어 거기까지 도저히 기어갈 수가 없다. 사방을 살펴보니 먼 산으로 아군이 후퇴를 하는지 달아나는 사람이 보였다. 살려달라고 소리를 쳐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가버린다.
  
아군이 후퇴하면 중공군이 와서 나를 죽일 것이다. 중공군한테 죽느니 차라리 자살을 하리라 결심하고 허리에 찬 비상용 수류탄으로 죽을려고 수류탄을 찾으니 수류탄이 없다. 전신을 만져봐도 없다. 총을 찾아도 총도 없다. 가만히 생각하니 산을 내려올 때 힘이드니 정신없이 나도 모르는 순간 다 버린 것 같다. 죽을 길도 없다. 중공군이 금방 올 것 같다. 숨이 떨어질 때까지 기어가다가 죽는 것이 그래도 상책이라 생각하고 기어갔다.

기어가다가 죽지않으면 중공군에게 잡혀도 할 수 없고 요행이 산다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기어보자고 기었다. 좌측팔과 다리를 다 쓰지 못하여 힘이 없으니 꿈틀거리기만 했지 좀처럼 옮겨지지 않는다. 한참을 꿈틀거리다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고 돌아보니 1미터도 못 간 것 같다. 또 반복하는 중 큰길 가운데서 정신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정신이 희미하게 든다. 하늘을 쳐다보니 해가 중천에 있다. 내가 부상당할 때에는 해뜰 무렵이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10여미터 밖에 못 옮겨졌다. 큰길 복판에 전신에 피투성이 흙투성이가 되어 목숨도 질기구나 아직도 살아있다니, 또 기어보자싶어 다시 꿈틀거렸다.

  꿈틀거리는 동안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무엇인가에 깜짝놀라 눈을 번쩍 뜨고 보니 누가 나의 목 뒤 옷을 잡고 일으킨다. 중공군에게 잡혔구나. 이제는 마지막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데 상대가 말을 한다. 한국말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들고 얼굴을 쳐다보니 아군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바른손으로 그 사람을 잡으며 '살려주시요'하고 애원을 했다. 그 사람은 어디를 부상당했느냐고 묻고 나는 구세주를 만난 심정으로 왼팔과 발을 부상당하여 걷지를 못하며 피를 많이 흘려서 죽게 되었다고 하니 복부에는 상처가 없냐며 나의 상의를 확 걷어 올린다.

  사방을 만지며 확인을 하고는 후송하면 살 수 있겠다 한다. 혹시라도 나를 버릴까 겁이나서 "나는 피를 많이 흘렸으며 정신없이 땅에 뒹굴어 이모양이 되었습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니 그사람은 등을 돌려대고 업히라 한다. 얼마나 반가왔는지 억지로 기어서 등에 매달려 업혔다. 그리고는 이제 살았구나싶어 마음을 놓으니 그만 정신을 잃었다.

  그 사람은 마구 흔들면서 "나는 당신을 살리려고 생사를 걸고 업고 가는데 정신을 잃으면 어떻하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내려놓고 내가 죽이고 가겠다. 중공군한테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며 내려 놓을려고 하여 나는 정신을 차릴 터이니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그 사람을 보니 무더운 여름철인지라 얼굴에 땀이 비 오듯하여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전우애 하나로 죽음을 무릎쓰고 나를 살리겠다고 이렇게 애를 쓰다니.....우리중대 위생병도 날 버리고 갔는데........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생각조차 하기 어렵고 말로 다 기록할 수조차 없다.
그러면서 시간이 또 얼마나 지났는지 나는 또 정신을 잃었다. 그 사람은 나를 세게 흔들고는 조금 쉬어가야겠다며 내려놓는다. 산 밑 으슥한 곳이다. 포탄이 많이 터지니 엄폐지를 찾는 것 같다.

  나는 얼마나 고마운지 이제는 나를 버리고 간다하여도 할 수 없다 그대로 놓아 줄 것 같았다. 동기간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아닌 사람이 자진하여 순전히 전우애로 사지에서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하지 못 할 것만 같다. 이 사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 중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 사람은 나를 흔들며 소리친다."정신차려라, 살았다 차소리가 난다."정신을 바짝 차리고 가까스로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니 우리 중대차였다. 차에는 중대 인사계가 보였다. "내려놓으시오. 저 차가 우리중대 차입니다."고 소리치니 그사람도 반가와 하며, 산기슭에 내려 놓는다. 중대 선임하사는 "이게 누구냐"고 나를 알아보고는 차에 그냥 뛰어내리며" 고참 몇 명 있는 게 다 죽는구나" 하며 나를 업고 온 사람과 같이 나를 들어 차에 싣고 차를 돌리는 것이다. 이제는 살았구나 라는 생각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누가 내 가슴을 치며 이름을 부른다. 차차 까마득히 정신이 들어 눈을 떠 보니 부옇게만 보였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신을 가다듬으니 차차 시야에 안개같은 것이 사라지고 물체가 희미하게 나타났으나 누군지 분간은 할 수 없다.
그 사람은 또 내이름을 부르며 나를 알아보겠느냐 한다.

한참 자세히 보니 뚜렷한 사람이 보인다. 중대 서무계다. 서무계는 내 손을 꼭 잡고"너는 살았다. 후송하여 치료를 받으면 된다"며 위로한다. 목이 말라붙어 말을 할 수가 없다. 부상당한 기억이 난다. 살펴보니 왼팔이 내 배 위에 올려있다. 정신을 잃은 동안 언제 치료를 했는지 붕대가 감겨져 있다.

  전신을 움직이지 못하여 발은 볼 수가 없다. 내 생각으로는 팔은 별 것 아닌 것 같았고 다리가 중상인 줄 알았기에 억지로 "발, 발" 하니 서무계는 알아차리고 발은  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경상이라며 위로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발의 부상이 더 컸던 것이다. 억지로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전방 의무대라 한다. 해가 지고 어두워졌다.

  마치 몇 시간 동안은 죽어있었던 듯했다. 잠시 후 엠브란스에 실려 어디론지 출발하였다. 정신이 혼미한 중에 몸을 세게 흔들어 눈을 떠 보니 천막이 즐비하고 아군 부상병이 살려달라 아우성을 치고 있는 춘천 이동야전 육군병원이다.

  내 옆에 들것 하나를 눟여 간신히 고개를 들어보니 이게 어찌된 인연인가. 우리 소대장이였다. 하도 반가와서 "소대장님"하고 몇 번 소리쳐 부르니 돌아보고 "이게 누구냐, 강 중사 살았구나","소대장님도 살았군요" 우리는 얼싸안고 싶었지만 서로가 움직이지 못하니 반가움과 안타까움에 서로 눈물만 흘리고는 정신이 흐려져 눈을 감고 말았다.
  우리는 후송열차에 실려 마산 수도육군병원에 도착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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