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 달 특집] 생사를 건 전우애

정신없이 중공군과의 전투를 하다보니 야포가 트럭에 매달려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다소 안심이 되었지만 중공군은 아무리 쓰러져도 계속 밀려오고 또 밀려와 우리의 화력으로 감당을 하기가 힘이 들었다. 그때 아군진지 뒤에서 아군의 기관총과 포가 비 오듯이 중공군을 향해 날아갔다. 예비사단이 우리 진지 뒤 능선에 진지를 구축하였다가 아군화력이 약하여 지원사격한 것이다.
 
 집중사격을 하여 중공군을 물리친 것이다. 우리 부대는 적과 아군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 보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현실이었다. 적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중공군의 뒤를 쫓아 진격을 하였다.

  우리의 힘으로 아군의 큰 화력인 야포 20여 문을 적의 손에 빼앗길 것을 완전히 막았으며 중공군도 물리쳤다. 물론 예비사단의 힘이 큰 작용을 했지만 내 힘도 한몫을 한 것이다.

  수색중대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전투만 명령받고 공격 또는 탈환해야만 했다. 군인들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지만 특히 수색중대는 명령을 받아 특별한 행동과 작전을 해야만 한다. 계속 적진지 탈환과 모든 전투에 선봉에 서서 진격하다 보니 밤이 되었다.

  중대원이 모인 것이 김 상사와 2등중사 필자 포함 2명 총 인원 25명이고 무전기 1대가 있었다. 무전으로 전투병령이 내렸다.

현 전선을 사수하기 위하여 전방 개활지 옆 동입고지로 가서 사수하라, 우측 높은 봉에는 21연대가 사수하기 위하여 곧 도착한다. 좌측 개활지 건너 고지는 10연대가 곧 도착한다. 동입고지에 도착하면 우리는 21연대 병력과 연결배치한다. 좌측은 10연대와 개활지까지 연결배치한다. 배치 후 보고하라는 전투명령이다.

  우리는 약 30분 후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에다 수목이 우거진 산속이라 지척을 분별할 수 없었다. 선임하사는 필자를 보고 중공군이 공격을 하여 큰일이다. 결사적으로 싸워서 이 고지를 사수해야 한다. 개인호를 파서 사주경계를 해야한다. 고지 중앙에 구덩이가 하나 있었다. 거기를 중대본부로 하고 사격을 하면서 한 사람씩 호를 파게 하였다. 임시 조치로 두 사람씩 들어가 앉을 정도로 파서 그 속에 들어가 사격을 하니 어느 정도 엄폐가 되었다. 한참 교전을 하니 적이 사격을 중지하고 올라오지 않는다. 고지 밑 개활지가 거리는 500여미터밖에 되지 않아 중공군의 말소리가 왁자지껄하고 들려온다. 무슨소리를 하는지 알아 들을 수 없어 더 궁금하였다.

  공격을 하지 않으니 경계를 철저히 해야 한다. 한 구덩이에 2명씩 배치하여 놓고 적이 코밑에 있으니 졸지 말고 감시 잘 하라 하여 놓고 본부에 선임하사, 김 중사, 필자와 고참 셋이서 모여 계획을 연구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졸음이 와 고개가 쓰러지니 선임하사가 정신차려라 하여 깜짝놀라 정신이 번쩍들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선임하사와 김 중사도 고개가 푹 쓰러진다. 등을 탁 쳐 깨웠다. 우리가 이렇게 졸음이 오는데 신병들도 졸지 않을까 하여 벌떡 일어서 돌아가니 신병들도 사람이라 총을 놓고 코를 곤다. 소리를 지르면 중공군이 들을까봐 주먹으로 턱을 탁 치면 깜짝놀라 눈을 번쩍 뜬다. "이 자식들 적이 올라오는데 졸고 있으면 죽는다. 너 하나 죽는 것은 고사하고 전 중대원이 몰살한다."
 
신병은 눈을 똑바로 뜨고 "알았습니다. 정신차리겠습니다." 하지만 둘러보니 전부 졸고 있다. 모두 깨워놓고 본부에 가면 다른 사람이 또 돌면서 깨우고, 금방 깨워놓은 사병들은 한 바퀴를 돌아가면 또 졸고 있다. 미칠 지경이다. 셋이서 계속 전우들을 잠을 못자도록 재촉했다.

  밤이 어찌 그렇게 긴지 조급함과 당황은 견딜 수 없다. 본부로 무전을 치니 날이 샐 때까지 그 고지를 사수해야 된다. 안절부절하던 중 동쪽이 뿌옇게 보인다. 날이 새는 모양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아군포가 우리 진지에 마구 떨어진다. 본부로 무전을 치니 무전이 불통이다. 할 수없이 후퇴를 할 수밖에 없다. 선임하사가 후퇴명령을 내렸다.   

  박격포는 사정 없이 떨어지고 뒤로는 강 기슭 절벽 밑으로 한 사람 지나갈 만한 길 뿐이다. 마구 뛰어 절벽 밑까지 가니 절벽 밑에 자그마한 굴 같은 움푹한 곳이 있다. 포탄을 피하기 위하여 전원이 들어갔으나 뒤에 중공군이 나올 터이니 필자와 김 중사 둘이 앞에서 바위를 의지하고 감시를 하였다. 신병에게 맡길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고참이 25명의 생명을 맡은 것이다. 포탄은 비 오듯 퍼붓는다. 가슴을 조리고 얼마쯤 있으니 포탄이 중지되고 드문드문 떨어진다.

   나가 볼려고 하는 차 물체가 나타나 숨어보니 중공군 2명이 살금살금 다가온다.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한 사람씩 맡았다. 총으로 중공군을 향해 "손들어"하고 고함을 치고 중공군을 생포하여 굴로 데려와서 말이 통하지 않아 한자를 써 가며 신문하니 중공군 1개사단 병력이 개활지로 나온다는 자백을 받았다. 큰일이다. 계속 무전은 불통이고 적의 병력은 많이 나온다니 할 수 없이 후퇴할 수밖에 없다. 포가 중지되면 적이 밀려온다. 의논 끝에 후퇴하기로 결정하고 선임하사가 후퇴명령을 내렸다.

  중공군 두 명을 생포하여 결사적으로 뛰어 후퇴하는 도중 중공군은 우리를 발견하고 사격을 마구한다. 포로병들은 중공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안끌려갈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끌고 나오느라 1명은 전사하고 3명은 부상을 입어 업고 붙들고 구사일생으로 안전지대까지 도착하여 부상병은 후송하고 포로병 2명은 사단으로 이송시켰다. 그리고 나니 병력이 부족하여 중대행동이 불가능하였다.

  상부지시로 병력보충을 받기 위하여 잠시 전선을 물러나야 한다는 중대장님의 명령에 한 십리쯤 떨어진 후방 개활지로 물러났다. 집결하여 인원점검을 하여 보니 중대장1명, 소대장1명, 선임하사1명, 2등중사2명, 신병18명 전 중대원이 23명이였다. 오후 5시 가량 되었을까 보충병력이 왔다.

신병을 보충받아 완전 중대편성을 하고보니 소대장 이하 분대장까지 직책을 맡을 사람이 없다. 선임하사는 없애고 일 소대는 유 중위, 2소대는 김 상사, 3소대는 할 수 없이 본인이 맡고 총 선임하사는 김 중사가 맡고 분대장은 신병중학교를 나온 똘똘한 놈을 선출하였다. 중대 편성을 마치고 나니 우리 중대는 많은 전투를 겪어 많이 피로하였다. 특히 신병은 전투경험이 없으니 여기서 3일간 휴식 겸 신병들의 전투교육을 시키라는 명을 받아 각 소대장들은 지금부터 소대별로 전투교육에 들어간다. 교육은 생명의 연장이다. 교육을 잘 받으면 살 것이요, 못 받으면 죽는다. 신병들은 명심하라. 중대장 명령이었다. 소대별로 모여 신병에게 수색중대 임무와 행동전투경험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해가 질 무렵 저녁식사가 준비되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 정식으로 식사를 한 것이 고향 집에라도 온 기분이다.

  지긋지긋한 총소리도 까마득히 들리고 반찬도 몇 가지 놓고 밥을 편안히 먹어본 것이 언제이던가,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오늘 저녁은 보초만 철저히 서고 편히 쉬도록 하라"는 중대장님 명령이 내렸다. 오랜만에 다리 뻗고 편히 자보자는 생각으로 분대장들에게 "보초 잘 세우고 감시 잘 해라. 방심은 금물이다" 하고 편히 누웠다. 막 잠들려고 하는데 각 소대장들은 중대본부로 집합하라는 명령에 뛰어가 보니 고참은 다 모였다.

  중대장의 기분이 좋지 않다. 중대장이 침묵을 깨고 "팔자에 없는 3일간의 휴식인가 하였더니 또 전투명령이 내렸다.

  전방 6사단 CP가 중공군에게 빼앗겼다. 6사단 CP 뒷고지에서 지금 아군과 중공군이 육박전을 벌렸다. 이 고지를 우리 수색중대가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할 수 없다. 목적지까지 약4km 우리가 출발하면 전면은 적진이다.

  전세가 불리하니 우리가 목적지를 도착하기 전에 적과 충돌할지 모르며 전선에는 아군과 중공군이 혼전 중이니 도중에 사람을 만나도 무조건 사살하여서는 안 된다. 일단 수화를 하여 보고 사살하라. 우리는 다 같이 용감하게 싸워 휴전 조인전에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밀어올려 8사단 50수색중대의 이름이나 후세에 남기자" 하니 모두 눈물이 돌았다. 우리 고참 다섯 사람이 손을 굳게 잡고 서로의 성공을 빌었다. 5분 내로 전투준비하고 집합하라는 중대장님의 명령을 따라 간단한 점검을 마치고 적진을 향하여 출발했다.

  도로를 중심으로 2열종대로 개인거리를 확보하여 적진을 향해 진격했다.달도 없는 탐캄한 밤이라 2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발자국소리를 죽여가며 기어가기 시작했다. 앞에 아군이 있다하니 무조건 발사도 못하고 인기척이 나면 암호하고 수화를 함과 동시에 옆으로 세 바퀴 굴러 답이 없으면 사살한다. 아군을 만나면 뒤로 보내고 적은 사살한다. 전진하여 목적지 6사단 CP까지 도착하니 새벽이다. 열 횡대로 배치하여 올라간다. 고지 중부까지 올라가니 아군은 별로 없고 중공군만 있었다.

  고지 상봉이 별로 높지는 않았다. 돌격대비를 마치고 먼동이 뿌옇게 틀 때 "돌격앞으로"하는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쏘며, 찌르며 마구 치밀었다. 죽이고 죽고 하며 8부 능선쯤 올라가니 영봉에 중공군이 호를 파놓고 호로 들어가 수류탄을 마구 던진다. 날이 밝았다. 건너편 산에서 중공군이 기관총으로 사격을 한다.

직사화기를 피하여 올라가니 수류탄이 수없이 날아와 터지고 한마디로 진퇴양난이다. 신병들은 겁에 질려 그 자리에 엎드려 있으니 사상자가 부지기수다.

  중대장은 권총을 빼들고 "올라가라" 올라가면 산다. 후퇴하면 죽는다" 하고 호통을 친다. 중공군은 호 속에서 머리를 감추고 보지 않고 수류탄만 마구 던진다. 보지 않고 던지니 떨어지는 거리는 일정하다. 빨리 올라가 적의 호 밑에 가 엎드리면 절대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병들은 겁을 먹고 수류탄이 떨어지는 지점에 엎드렸으니 쓰러지기만 한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중대장은 계속 소대장들에게 신병들을 빨리 몰아 올려라 안 올라가면 너희들을 내가 쏘겠다고 호통을 치고, 소대장들은 돌아다니며 신병들이 엎드려 있는 것을 몰아 올리기 시작했다. 김 중사는 적 직사기관총에 머리를 맞아 쓰러진다. 악이 받쳐 올랐다. 그걸 본 유 중위는 신병들을 살려야 한다. 적 수류탄이 날아오는 것을 피해가며 신병들을 총 개머리판으로 엉덩이를 찌르며 "적의 호 밑에까지 올라가면 산다.올라가라" 소리쳐도 엉덩이만 들었다 놓을 뿐이요 꼼짝도 않는다.

  보다 못한 소대장 유 중위가 칼빈 M2를 들고 적의 호 밑으로 뛰어 올라가며 "내가 올라가도 안올라오면 너희들이 적탄에 죽는 것을 보느냐 내가 너희들을 죽이겠다" 며 뛰어 올라갔다. 기가막혔다. 나는 사정없이 몰아 올리며 소리 쳤다. 소대장이 혼자 올라갔는데 너희들이 안 올라가면 죽이겠다고 고함을 치니 한두 사람씩 올라가기 시작한다. "보라" 올라가니 산다. 수류탄은 점점 더 많이 떨어진다. 손으로 던지는 물체라 속도가 늦다. 얼마든지 동작만 빠르면 피할 수 있다. 요리조리 수류탄을 피해가면서 신병들을 발로 차며 호통을 치니 신병들은 많이 올라간다. 힘이 났다. 살았구나. 수류탄이 날아오는 것을 피해가면서 진격하는데 중공군 방망이수류탄이 내 정명으로 날아온다.'피해야 겠다' 하고 뒤로 확 물러서는데 내 뒤에 신병하나가 엎드려 있는 것을 못 보고 걸려서 거꾸로 넘어졌다.

  그 순간 내 앞에 신병이 물러서다 내 한테 걸려 또 넘어졌다. 수류탄은 내 좌측 발 옆에 떨어졌다. 이게 터지면 우리 3명은 다죽는다. 집어 던져야 산다. 생각과 동시 상체를 들며 좌측손이 갔다. "꽝"하고 손이 가는 동시에 폭발하고 말았다.'끝이다'하고 눈을 감았는데 정신이 말짱했다. 눈을 떠 보니 죽지는 않았구나 싶어 벌떡 일어섰다. 부상이었다. 엄폐지로 굴러 몸을 살펴보니 좌측팔에 시커먼 피가 이어 나온다. 발을 보니 발에도 피가 샘물같이 펑펑 나온다. 이 정도면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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