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탐방[129]예술작품을 빛나게 하는 ‘문화당 표구사’

▲ 20여년 역사를 가진 ‘문화당 표구사’는 정화랑 표구사라는 이름으로 지난 1989년 순창병원 골목에서 문을 연 후 지금은 영주우체국 옆으로 자리를 옮겨 ‘문화당 표구사’란 이름으로 우리고장에서 표구 역사를 지키고 있다.
20년을 한결같이 이어온 표구장인
점점 사라지는 표구 명맥이어가

‘글씨와 그림 등의 작품에 비단을 발라 나무와 기타 장식을 써서 족자(簇子), 액자(額子), 병풍(屛風) 만드는 표구’. 과거 표구문화가 번창하던 시절, 전국에 수백개에 이르는 표구사가 있을 정도로 예술가들은 표구를 작품활동의 마무리 단계로 여겼다.

우리고장 또한 20여년 전만해도 10개 표구사가 운영될 정도로 예술가들은 당연히 작품을 표구해 소장하는 것이 기본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현재 몇몇 표구사만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 표구사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 중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표구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문화당 표구사(대표 김민종)이다.

▲ ‘글을 빛나게 한다’란 뜻의 문화당 표구사
20여년 역사를 가진 ‘문화당 표구사’는 정화랑 표구사라는 이름으로 지난 1989년 순창병원 골목에서 문을 연 후 지금은 영주우체국 옆으로 자리를 옮겨 ‘문화당 표구사’란 이름으로 우리고장에서 표구 역사를 지키고 있다.

‘글을 빛나게 한다’란 뜻을 가지고 있는 문화당 표구사 김민종 대표(55)는 “표구일을 시작한 계기는 서예를 시작하면서 였다”며 “군대를 제대하고 서울에서 표구일을 배워 지난 1989년부터 표구일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20년 이상 표구 그리고 병풍, 탁본, 현판 제작 등을 하고 있는 김 대표는 이 분야의 산증인으로 현재 문화당 표구사를 찾아오는 손님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김 대표의 실력은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는 “과거 예술가들의 작품은 당연히 표구를 해 소장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표구는 사양산업으로 접어들며 표구사들도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며 “표구 일이 좋아 시작했지만 점점 표구일로만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지금은 틈틈이 다른 일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처음 표구사의 문을 열 당시만 해도 표구가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은 표구만으로 가족들을 책임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그동안 여기저기 몇 번 옮겨 다니다가 지금의 위치로 옮기게 됐고 상호도 바꿨다”라고 덧붙였다.

▲ 표구뿐만 아니라 탁본 전문가
지난 17일 방문한 문화당 표구사의 문을 열자 한쪽을 차지한 기다란 작업대 위에 김 대표의 손길을 기다리는 작품들이 쌓여 있고 김 대표는 작품에 새로운 생명과 가치를 불어넣는 표구작업이 한창이다.

김 대표는 “과거 그림 그리는 사람, 글 쓰는 사람 등 많은 예술가들이 있었고 당연히 서예나 그림을 표구해 선물하는 것이 흔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모습이 점점 사라졌다”며 안타까워 했다.

특히 김 대표는 “표구는 단순히 그림이나 글씨에 종이와 비단을 붙여서 미적 가치를 더하는 것이지만 표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접(종이나 헝겊 또는 얇은 널조각 따위를 여러 개 겹쳐서 붙이는 것)하는 일”이라며 “배접을 마친 그림이나 글씨를 액자, 병풍 등에 바르고 말리고 다시 비단을 입히는 반복 작업이 끝나면 표구는 완성되고 그로 인해 작품은 한층 더 빛을 낸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 대표는 표구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탁본 전문가로 유명하다. 지난 1999년 영주문화원의 지원을 통해 2년간 지역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며 절 현판, 정자, 비석, 암각화 등 총 1천200점을 손수 탁본해 ‘영주금석문’ 발간에 참여했다.

문화당 표구사
병풍, 액자, 족자, 탁본
전각상담, 어탁, 현판제작
영주2동 470-37
054) 635-6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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