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시간 운항 후 기상악화로 배는 멈춰서고 세월호의 악몽이 연상되었다.

영주 파크골프회원 장정일 회원 외 10명은 5월11일 아침 8시40분 영주역발 기차를 타고 11시 30분 동해역에 도착하여 러시아행 DBS크루즈 승선수속 후 14시 동방의 진주 ‘동양의 유럽’이라 불리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향해 출발했다.

이르세니예프 박물관에는 고구려 발해 조선의 관련된 자료가 있었고 고조선에서 고구려 발해에 이르기 까지 한민족의 역사와 긴밀했던 조선후기인 1863년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이주하면서 고려인의 역사가 본격 시작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전후 부터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망명 항일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고려인의 집단으로 거주하는 촌락들도 생겨났다 특히 신한촌은 당시 규모가 가장 큰 한인 주거지로 1916년대 항일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독립운동의 시발점인 블라디보스톡에서는 서울의 거리처럼 자동차 행렬이 많으나 신호등이 거의 없고 보행자의 안전한 보행을 위해 자동차는 조용히 기다리다 운행하는 모습은 일본의 차량통행 모습과도 유사했다.

화려하고 작은 유럽과도 흡사한 블라디보스톡을 떠나 늡지대의 상징인 우스리스크로 버스로 이동 후 러시아 철도여행을 경험하기 위해 우스리스크 기차역에서 지루하게 열차를 기다리는 중 화장실을 이용 하려고하면 열차표가 있어야 만이 용변을 허락하는 화장실문화에 불편하였고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이 세계최고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차창 밖의 풍경은 거의 늪지대의 초원으로 형성되어있고 조금 높은 지대 초원 에는 축사도 없는 작은집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이면 조그만 하고 화려하지 않는 작은 기차역이 있고 기차가 정차하면 시동을 끄고 출발 시 시동을 거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우스리스크에서 110KM를 2시간 30분간 달려서 블라디보스톡에 도착 하여 해지는 모습이 너무나도 화려한 해양공원을 관람했다.

블라디보스톡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침에 독수리공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서있기도 불편한 급경사에 버스를 기차선로 위에 올려서 로프를 이용해 마치 모노레일과 케이블카의 중간 형태의 작은 버스로 만들어진 승차기구를 타고 정상에 도착 모처럼 햇빛이 나는 시간을 이용하여 각자 시내와 항구를 촬영 하느라 신이 난 모습이었다.

우리상품과는 이색적인 러시아 기념품은 현지화폐 루불화로만 구입이 가능하고 털모자 한 개에 우리 돈20만원이상으로 고가였다.

각자 선호하는 기념품을 구입 후 버스는 블라디보스톡 항구에 도착 승선 수속 후 러시아 시간 오후 2시 한국동해항으로 출발 갈 때와는 다르게 최적의 운항조건이었다.

저녁 식사 후 노래자랑 안내방송으로 공연장에서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 관람 으로 승선의 지루함을 달랬다.

동해항에 다음날 오전 10시에 도착 우리는 택시로 묵호어시장으로 이동 회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묵호역에서 영주행기차를 타고 16시 영주도착 여행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황대상 실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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