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에 발자국 찍어가듯 시를 쓸터...”

경남신문 주최 시조부문 당선

"늘 저의 글을 평가받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9월 중앙시조 백일장(중앙일보사 주관)에, 아주 우연한 기회였는데 "까치노을"로 차상에 당선된 후로 용기를 내게 되었지요."

이재호씨(54), 그는 우리 지역 인이면서 영주철도청 "영철문학"의 회원으로 지난 1월 경남신문사 주최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당히 당선되었다.

"신춘문예 당선! 이런 건 문창(문예창작과) 출신이나 천부적 소질이 있는 분들의 전유물로 여겼는데 나같이 살며 즐기는 뜰에도 찾아 왔으니....."

그는 정말 꿈같은 소식에 너무 기뻐 거실에 들어온 햇살처럼 싱글거리며 설거지하는 아내를 불러 당선작품을 열어놓고 바보처럼 자랑도 하다가 쓸 수 있는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영광과 기쁨을 돌려드렸다고 한다.

이번 작품을 심사한 서벌(한국시조시인협회장), 김남환(한국문인협회시조분과회장)씨는 "천부적인 시적 감수성을 결 바르게 선명히 처리해 냈고 표현 능력이 뛰어났다"고 평하고 "타고난 시적 재능 , 여기에다 솜씨 기르기라는 충분한 과정이 없고는 이 처럼 괄목할 언어의 물건을 성취하기 어렸웠으리라"고 했다.

이재호씨는 현재 "구곡시 동인"(회장 박성철 교수)에도 활동하고 있으며 회원들은 주로 영주 문협인들로 주축되어 매월 첫 토요일에 모여 서로 교류하고 낭독하는데 시만 다루기에 참 좋다고 한다. 벌써 제2호를 발행하는 시집 "까치노을"은 본인이 써낸 시 제목으로 정해졌단다.

'소조'라는 호를 쓰는 의미에 대해서 묻자 그는 "'소조'는 작은 새라는 뜻이지요. 작은 새 그 자체는 비록 작을지라도 큰 숲을 흔들 수 있는 거죠. 숲을 흔드는 새소리, 작아도 숲이 울리는 소리가 있잖아요. 사실 저는 뒤뚱뒤뚱 거렸는데 어쩌다 용케 밟혀졌다고나 할까요. 밟히니깐 눈에 뛰었던 거죠. 뭐!(웃음)" 그는 축하 행사를 다 마다하고 친구들과 조촐한 저녁을 함께 나눈 것으로 번거로움을 대신했다고 한다.

74년도에 철도에 입사했다. 84년부터 기관사로 일하면서 약 20여 년간 주로 농촌을 향해 기차를 몰고 다녔다. 동료 기관사들 중에는 야간 운행을 꺼리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는 낮이면 낮대로 푸른 창공과 뭉게구름을 보며 시를 썼고 밤이면 밤대로 반짝이는 별과 달을 보며 시를 쓰고 늘 여행하는 기분으로 맡은 업무를 즐겁게 했다고 전한다.

"근무가 없는 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죠. 아내는 늘 불만스런 모습으로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어요. 그러나 신춘문예 당선 이후로는 많이 달라졌지요. 원고 청탁도, 저를 찾는 이들도 많아지자 남편이 예사처럼 보이지 않았는가 봐요. 아직은 글을 함부로 내놓지도 다른 곳에 기고도 안 하죠. 좀 더 다듬어야 하니까요."

그는 기독교인(영주대광 교회 집사)답게 상당히 겸손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가 독자들을 포섭할 수 있는 길은 생활에서 쓰여질 수 있어야 한다는 그는 "시 자체가 언어입니다. 키 작은 사람을 가리켜 맨드라미 같은 사람이라고도 표현 할 수 있잖아요." 라며 앞으로 찬송 시를 써 볼 작정이란다.

그런데 신앙이 아직 약해서인지 글이 잘 안 된다며 이미 써 놓은 몇 편의 찬송 시를 소개해 주었고 이번 당선작 "눈길에서"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부인 조영교(49)씨와의 사이에 2남1여가 있는데 자녀들 모두가 문학에 많은 관심이 있고 거실에는 막내아들의 자작시가 걸려 있었다. 거실 한켠에 마련돼 있는 그의 사색하는 장소는 베란다형 작은 꽃밭이였다.


<2003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눈길에서

소죽연기 서슬 퍼런 우윳빛 커튼 너머
잔설이 누더기 되어 걸어가는 산 마을
동그란
하늘 내려와
자갈밭은 은하되고

얼면서 크는 나목 노란 햇살 새끼치자
비루먹은 거랑가 얼음 칼만 번득인다
작은새
서툰 노저어
탱자울 넘나들고

타오르는 불면덩이 이엉으로 엮고 엮어
하얀 밤 눈사람이 끼적이며 부른 이름
오늘은
싸락눈 되어
새가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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