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합창단 창단을 올해엔 꼭 이루어야죠"

"94년도에 한국음악협회 영주지부가 창립되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정말 음악 수준이 상당히 뒤떨어져 있었어요”

한국음악협회 김진동 지부장(44)은 몸집만큼이나 푸근한 그의 성격에 걸맞게 음악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눈이 제법 펑펑 내리는 날, 약속 장소인 영주교향음악원을 찾았다. 이곳이 바로 김진동 지부장이 운영하는 음악학원이자 개인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악보가 눈에 들어온다. “뭣에 쓰일 악보냐?”고 물었더니 “개인지도와 어머니노래교실에 쓰이며 합창단에도 필요한 곡을 선곡 중"에 있단다.

김지부장은 영주읍(현 영주1동) 348번지(구역 앞)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이미 그는 영주에서 서울로 유학(?)을 떠나 운화초등학교(현 예일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된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유년 시절 교회 어린이 성가대에서 활동하며 독창은 맡아 놓고 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으레 저의 독무대는 정해져 있었거든요. 목이 쉴라 하면 교회선생님이 언제 가지고 왔는지 계란을 저에게 주면서 ‘먹으면 아마 좋을거야!’ 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서울중앙중학교 3학년 때, 그는 벌써 서울서문교회에서 중.고등부 학생 성가대 지휘를 했고 대성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남성합창단을 창단, 지휘하는 한편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는 서울. 경기지역 학생신앙운동(SFC) 연합성가대를 지휘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도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멋모르고 학교 다닐 때 열심히 지휘하고 음악 만들고, 그때가 제일 행복 했던 것 같습니다. 음악에 대해서 그나마 조금 눈을 뜨니깐 갈수록 힘들고 무궁무진한 음악세계를 체험하면서 철없던 시절이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지금도 음악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그는 항상 배워야 하고 그것만이 자기를 지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그 후 김 지부장은 안동대 음악과에 입학하여 작곡을 전공하려 했으나 학교 주변 여건이 마땅치 않고 또한 교수들의 권유도 있고 해서 성악으로 전환해 대학을 졸업하고 이어 계명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게 된다.

그는 "어쨌든 저는 안동대 신설 작곡과 제1호인 걸요” 하면서 ‘씩’ 웃는다.
그의 음악공부에 대한 열정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96년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이태리 음악연수코스를 밟게 되어 ‘이태리 로마 국제아카데미’ 지휘과정을 수학하고 이듬해에는 로마 Bracciano 에서 성악과정 Diplom 을 마치게 된다.

“이태리 음악공부(지휘과정) 하러 갔을 때입니다. 저는 저의 소개를 영주시민합창단 지휘자라고 했을 뿐인데 아마 음악원장이자 교수인 그는 저를 대단한 지휘자로 착각하고 단번에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가지고 렛슨을 했었지요. 내심 뜨끔했으나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으로 지휘를 하게 되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잘했다나요.(웃음) 저의 등허리에는 땀이 비 오듯 했고 저는 어떻게 지휘를 했는지 지금도 아찔해요.”

"한번은 또 성악코스로 이태리를 갔을 때였어요. 로마 근교에 있는 Bracciano 도시 축제인 ‘Lago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대단한 축제였거든요. ‘라고페스티벌’은 이태리에서는 ‘호수축제’라고들 해요. 이때 지도교수가 이곳에서 저를 노래하게 했어요. 역시 분위기가 노래를 잘하게 하더군요. 좋은 환경은 그 사람의 기분을 한껏 부풀게 하니깐요."

이후 김 지부장은 기독교 신앙인답게 고향 영주에서 제일 먼저 87년에 ‘사랑의 노래선교단’ 을 창단하여 선교활동에 한동안 주력했다.
또 교회 지휘를 맡아 대학시절 종교음악(기독교 교회음악) 논문으로 졸업한 실력을 아낌없이 내놓는다.

영주음악에 관해서 많은 이들이 선구자 역할을 했다는 얘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말에 “그렇지 않아요. 훌륭한 선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다만 이것저것 창단하여 음악적 분위기를 조성한 것 뿐이지요.”

사실 그는 우리지역에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각종 음악 단체를 만든 것이 사실이다.
그는 90년도 개나리어머니합창단을 재정비, 여성합창단을 창단하게 되고 91년도에는 영주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94년도에 한국음협 영주지부를 창립했고 95년도에는 영주시민합창단을 창단해 영주음악의 기틀을 잡는 한편 이듬해는 영주청소년오케스트라를 창단, 청소년 음악 발전에도 기여하게 된다.
영주시민합창단을 만들게 된 동기를 묻는 말에 그는 “아직 우리지역에는 불행하게도 시립합창단이 없지 않습니까? 이웃 시에는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 졌지요. 그러나 없다고 마냥 있으면 어떻합니까. 시립으로 가는 전초전으로 시민합창단을 창단했습니다.

멀지 않아 그 결실을 보게 될 거라고 생각되고 이제 그 일을 위해서 관계기관과 면밀한 협조가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시립합창단 창단이 올해 한국음협 영주지부 사업 중 가장 획심적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이미 영주예총 산하 7개 각 지부에서 모두 협조해 주기로 약속을 받아놓은 상태란다.
또 그는 올해 음협 영주지부에서 추진하는 사업 중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로 “제41회 경북 도민체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키 위한 “경북음악제”를 꼽았다.

"영주에서 저희 지부가 주관해 열리는데 경북도내 우수한 시립합창단 3팀, 국내 정상급 성악가 2명, 지역 성악가 2명, 국내 정상급 바이올리스트와 반주에는 영주교향악단이 맡게 됩니다."
경북도민체전 준비위원이기도 한 김 지부장은 경북음악제가 우리고장 영주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최근 활동 사항에 대해 말해 달라는 말에 지난해 연말 안동성가합창단에서 연주된 구노의 '장엄미사곡'과 안동지역 교회연합 합창단과 헨델의 '메시아'를 지휘했다고 한다.

올 가을에는 우리지역에서 “교성악 음악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김 지부장은 “이제 우리지역에도 교향악단과 매머드 합창단이 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이 좋아 공부에 열중한 나머지 뒤늦게 결혼한 그는 부인 이미홍(그랜드 피아노학원)씨와의 사이에 아들 현호군(8)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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