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분이 참 효자예요"

함박눈이 오거나 종일 비가 내릴 때면 차 한잔을 앞에 놓고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사는 게 심드렁해질 때, 혼자 찾아가도 선조들의 손때 묻은 민속 공예품과 정원에 소나무가 멋스러워 벗이 되어 주는 곳이 제일 고등학교 앞 애너벨리다.

이곳의 주인이 문인협회 회원인 이교철씨(54세)다.

"문협에는 `98년도에 가입했을 거예요. 수필부문인데 제대로 못하지요. 문학 이야기 하니까. 부끄럽습니다만-" 정말 그는 얼굴이 불어지며 쑥스러운 웃음을 웃는다.

그는 71년도에 5급(현9급) 공채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 부석면사무소로 발령을 받아 면서기로 1년 근무를 하고 그 다음엔 줄곧 영주에 있었지요. 영주읍 당시 수도과에 근무를 하다가 시 승격 후 문화계에 주로 근무를 했어요. 퇴직은 사회과 복지계에서 했지요"

그는 지난 99년 3월1일자로 명예 퇴직을 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그의 모친이 병중에 있어 누군가 한 사람은 병든 노모 곁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란다.

"한 1년 정도 앓다 돌아가셨는데 집사람도 공무원이지 말이야. 또 어머님이 대.소변을 못 가리시는데 며느리보다 내가 편하다는데 어떻게, 또 그것 뿐 아니라 그동안 우리 민속품에 관심을 가지면서 구상한 사업도 있고 해서 제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어요"

"저 분이 참 효자예요. 모친 소.대변 다 받아내지. 그 뿐 아니라 자다가 모친이 어떻게 될까봐 1년을 모친 곁에서 잤다니까. 꽃 같은 와이프를 독수공방하게 하고 말이야"

문인협회와 함지회,(민속품수집회) 난우회에서 함께 활동 중인 정옥희씨(삼성 캐피탈근무)의 말에 "효자는 무슨, 본래 그런 말은 하지 마래. 남들이 흉봐"라며 손사래를 친다.

이교철씨가 25년 공무원 생활을 접고 레스카페 애너벨리를 짓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도부터다. "지금 이 땅이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논 1,000평이예요. 논을 성토(땅을 돋음)해서 그 위에 지은 집이예요" 현재 그는 사업 장소인 애너벨리와 가정집이 합해서 100평 규모로 집 두 채가 붙어있다.

애너벨리에는 주인의 취미인 우리 민속품으로 가득하다. 인테리어로 활용하고 있는 함지박, 호롱, 자수, 민화 등이 있고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마루와 문짝도 우리 옛 조상들의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묻은 것들이다.

이교철씨는 레스카페 야외에 국화 분재 전시회를 연 데 이어, 최근에는 실내에 서각전, 한지 공예전을 유치해 지역 예술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주인장께서 우리 것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또 이곳 분위기가 서각(書刻)이나 한지공예 등 우리 색채 짙은 작품을 전시하기에는 딱인 것 같습니다" 서각가 백랑 이정환 선생의 얘기다.

"우리 집 상호 에너벨리는 Adgar Allan Poe의 시죠. 포가 26세에 요절한 그의 아내를 추모하여 쓴 애도 詩지요. 제가 이 시를 좋아했고 또 단편 소설가이자 평론가이고 언론가인 포를 좋아해서 상호를 애너벨리로 지었습니다"

그를 만나고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고교시절 외웠던 포의 시 애너벨리를 떠올려 본다.

아주 오랜 옛날
바닷가 어느 왕국에
애너벨리라는 한 소녀가 살고 있었데요.
나를 사랑하고 나의 사랑을 받는 것
외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