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현장]순흥 토박이 농군 권오상씨

“손자의 모공편에 지피지기(知彼知己)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한다는 병법의 기본을 알리는 말이죠. 이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돼는 말입니다”

순흥면 지동2리 431번지에 살고 있는 권오상(63)씨가 하는 말이다. 그는 군 생활 3년을 제외한 60년의 세월동안 고향 순흥땅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이 이웃과 더불어 곰처럼(?) 살아온 전형적인 농부다.

“1974년 결혼을 하고 900평의 논을 물려받으면서 살림을 따로 냈습니다. 그땐 세상에 겁나는 일이 없었어요”

마을에서 최고의 일꾼으로 50명이 모내기를 해도 자신은 언제나 써레질하는 상일꾼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권씨는 25살이 되던 75년도에 순흥 남부지역에서 가장 먼저 경운기를 사면서 인근 주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며 당시의 무용담을 늘어 놓았다.

“노선버스도 별로 없던 시절이라 5일마다 다가오는 영주 장에 갈 땐 짐이 많았어요. 쌀 한 가마에 200원가량의 운임을 받았는데 그땐 돈이 됐어요. 장에서 돌아올 땐 앉고 서고 적재함에 사람이 가득했지요. 40년도 안 되는 세월 저편이지만 돌아보면 그때가 사람 냄새나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었어요”

소작도 하고 품팔이도 했었다는 권씨는 이름표처럼 따르는 가난을 떨치기 위해 건설노동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 1년 만에 300만원을 모아 단숨에 중산층에 올랐다며 웃었다. 그는 복이 적은 사람은 노력을 더 해야 남들처럼 살 수 있다며 60년 그의 철학을 비치기도 했다.

쌀농사 45마지기(1만 3천 500평)와 5천여 평의 과수원을 경작하고 있는 권씨는 일손 분산을 위해 지난해 텃밭 1천500평에 복숭아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영농규모에 따라 농기계를 장만하다 보니 기계가 많아졌다는 권씨 집에는 대형트랙터와 콤바인, 승용이양기와 SS기(승용분무기 겸 운반용수래), 건조기, 대 소형 트럭 등 농기계들이 대형 창고에 가득하다. 불편을 느낄 때 마다 장만한 기계가 2억 원이 훌쩍 넘으면서 가게를 옥죄고 있다는 게 권씨의 하소연이다.

“지난해는 사과 농사를 접었어요. 4월말에 서리가 오면서 엉망이 됐어요. 늦게 핀 꽃에서 겨우 300만원을 건져 약값에 보탰는데 다행히 비가 많이 와도 벼농사는 잘 됐습니다. 300평당 평균 쌀 여섯 가마씩 나왔으니까요. 요즘 쌀 판돈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수원에 쓸 거름 생산을 위해 25마리의 소를 30여 년째 기르다 최근 들어 12마리로 줄였다는 권씨는 한미 FTA협정으로 소 농사는 끝이 났다고 잘라 말했다.

“구제역 전까지는 10여 년간 소값이 좋았어요. 아~송아지 한 마리에 330만원씩 받고 팔았으니까요. 쌍둥이도 몇 번 낳았는데 송아지 두 마리에 660만원 받았습니다. 참 재미있었지요. 6.25직후에 미국 놈 믿지 마라 일본 놈 일어난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지요. 근 60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 그 말이 실감나네요”

“돈에도 귀가 있고 눈이 있어요. 애들이 학교 다니며 돈이 많이 들어갈 땐 손대는(투자하는)곳 마다 돈이 쏟아졌는데 돈 쓸 곳이 별로 없는 요즘 와서는 벌이는 일마다 돈이 안돼요” 부인 김위숙(61)씨가 거드는 말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알고 장점과 특기를 찾으면 인생 100년이 무난하다는 권씨는 더불어 가는 세상에는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그만이 지닌 특기가 있기 때문에 누구나 할 일이 있고 세상에는 쓸모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음에도 자기분수 모르는 채 눈만 높은 젊은이들의 사고가 걱정스럽다고 했다.

맏딸 화숙(38)씨를 시작으로 2남 2녀를 둔 권 씨는 위로 3남매는 모두 출가해 잘 살고 있지만 막내 기범(32)씨는 1급 지체장애자로 장애학교에 의존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있듯이 평범하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축복입니다. 신체가 건강할 땐 고마운 줄 모르지만 팔 한쪽이라도 다치고 나면 건강할 때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지요. 간사한 것이 세상이고 사람입니다”

살아온 60년의 세월만큼 권씨의 진실함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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