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사람]참 사도의 길을 걷는 권영순 전 교장

‘농사꾼은 육신의 영원한 먹을거리의 농사를 짓고, 스승은 영혼의 인간 농사를 짓는다. 스승과 선생은 다르다. 선생은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스승은 생명의 가치를 깨닫게 참 인간을 기르는 사람이다.’고 말하는 스승이 있다. 그런 참 스승의 길은 어떤 길인가. 여기 참 스승의 길을 걷는, 노령의 나이에 지금도 ‘우리학교 지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소백로171호 15-16) 권영순(權寧淳·77) 전 초등교장. 1957년 안동사범을 졸업한 그는 안동시 풍동초등학교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후 교감 교장을 거쳐 봉화군 물야초등학교 교장을 정년으로 42년간 교직에 봉사했다. 그때는 박봉인 월급을 거의 집에 가져가지 못했다.

가난하게 자라난 때문일까. 학급 어려운 학생을 돕고 학비를 대느라 집에 가져갈 돈이 없었다. 산골 학교에서 일손이 없는 제자 집에는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땔나무를 아침저녁과 토요일 일요일 등짐으로 해주기도 했다.

안동사범 제8회 졸업 50주년 기념집 “반세기(半世紀)”에 ‘그의 교육이념은 노력이면 안되는 게 없다. 성주 지사초등 교사시절 자기반 학생들을 새벽 1시까지 공부시켜 당시 시골학생으로는 꿈도 못 꾸는 경북중, 계성중, 대구중에 많은 합격을 시켜 면민들의 찬사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맹자는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면 먼저 땀과 피와 눈물 3가지를 맛보게 한다. 성공과 실패, 아픔과 치유의 시련을 겪지 않으면 큰사람이 될 수 없다’는 그의 교육철학은 ‘체험의 참 인간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다. 자기가 먼저 농사를 지으며 고통을 실천한다.

그는 스승이 아닌 농군이다. 자신이 일군 과수원 6천 평을 경영했다. ‘똥 장군을 지고 가는 그를 본 내가 어느 날 어느 과수원에 똥 장군을 지고 가던 사람이 혹시 교장선생님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 그는 능청스럽게 ‘내 동생이다’고 대답해 감쪽같이 속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성은 언제나 농군인지 교사인지 모른다.

‘눈물을 흘리는 제자들의 눈물을 끝까지 닦아주는 게 스승이다’는 그는 제자들을 졸업 후에도 돌본다. 성공하는 제자도 있었지만 실패하는 제자도 있었다. 영주시 ‘교학사’서점을 비롯한 두 제자를 끝까지 돌보다가 1995년 빚보증에 의한 제자들의 3억여 원의 부도로 피땀 흘려 이룬 과수원이 은행으로 날아갈 형편이었고, 연쇄반응으로 아들의 젖소농장까지 부도가 났다. 손자 손녀들의 대학 학비까지 떠맡아야 했다. 그래도 꿋꿋하던 그는 과로한 심로 탓으로 2006년 혈압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아들 오성씨가 서울 대학병원까지 3시간 안에 도착하는 바람에 천행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그래서 80노령에 지금은 풍기북부초등학교 ‘우리학교 지킴이’를 하고 있다.

그는 교사시절 제자들 가정에 제자의 장래를 위한 가정통신문을 년 3백통 이상 발송했고, 제자들의 주례를 5백 쌍 이상 섰다. 주례사는 백번해도 간단한 ‘가화만사성’이다.

부인 김을순(77)여사와의 사이에 아들 3형제를 두고 있다. 맏아들 권헌준씨(52)는 학원을 경영하고, 둘째 오성(50)씨는 젖소 농장과 인삼재배를, 셋째 오륜씨(48)는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다복한 가정이다. 요즘 그는 월3백만 원의 공무원연금으로 생활한다. 늘 나라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산다.

그는 “선생이 밥 먹는다고 학생 배가 부를 수 있느냐”며 “스승은 언제나 학생의 입장에서 그 학생이 되어 살아야 한다. 권력과 돈이 있는 집 자녀,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정을 더 주는 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학점을 위주로 하는 서열의 우리 교육은 한참 잘못 되었다”며 “그로 인하여 인간성을 잃어가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고 현 교육을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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