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우리 시 읽기

허만하(1932~ )

목이 탄다
나는 사막의 일몰을 마신다
피 흘리는 지평선
주삿빛, 보랏빛으로 일렁이는 추억의 바다
이자벨! 수고 많았다. 고향의 어머니에게도 안녕
잘라낸 오른쪽 다리뼈 암종은 내 팔에도 번졌단다
하싯슈로도 지워지지 않는 모진 아픔
나는 한 마리 야수처럼 소리질러 운다
아픔은 슬픔처럼 내 몸의 일부다
나는 모래 위에서 배암처럼 뒹군다
보고 싶다. 초록의 평원이
눈송이처럼 지던 꽃잎이
나의 풍경에 이데올로기는 없다
모래 언덕처럼 무너지는 나의 감수성
화약처럼 터지는 나의 언어
나는 불타는 언어로 내 두눈을 태웠다
절망의 끝이 이렇게도 평화로운 것인지
감은 눈시울로 슬픔을 보기 위하여
나는 은하처럼 사막의 밤하늘에 눕는다
------------------------------------------
허만하는 70을 넘긴 대 시인이면서도
30년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낼 만큼 엄결주의자이다
그에게 있어서 시를 쓴다는 행위는
모래위에서 배암처럼 뒹구는 고통 그 자체이다
불타는 언어로 두 눈을 태우는 화염, 열정 끝에
그가 얻은 절망, 혹은 삶의 예지
절망의 끝이 얼마나 평화로운가를 보기 위해
그는 은하처럼 사막의 밤하늘에 매일 눕는다.
너무 광활하지 않은가?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